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박 Jan 19. 2021

그 자리에 내가 있어볼까?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를 읽고나서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오고가는 모든 길에도 있고
사람들이 주고받는 모든 말에도 있고
수상하면 다시 보고 의심나면 신고하는이웃집 아저씨의 거동에도 있다.

김남주,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에서






이쪽에서 저쪽을 바라보는 기분이란 때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쪽의 사람은 저쪽의 그 무엇도 온전히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저쪽이 내게 말을 건네주면 나는 그 말을 믿거나 그것을 바탕으로 이해하거나 그도 아니면 믿지 않거나 , 이해하지 않거나 못하거나.

목소리를 내어주지 않는 경우에는 더 심각해서 오해와 불신은 켜켜이 쌓이기 마련이다. 우스꽝스러운 것은 이쪽은 언제든 저쪽이 될 수도 있으며 나 역시 그쪽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니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나도 언젠가 '그' 가 될 수 있으므로.


이 영구적인 불완전성으로 인해 '단 한번도 공을 잡아보지 못한 외야수'의 삶은 부조리하다.p.95

저자는 주로 부재의 시작을 바라본다. 없는 자, 있는데 이름이 세지 않은 자, 분명히 있어야 함에도 무시당하는 자들이 어찌하여 고통 가운데 사는지 이야기한다. 우리 사회가 왜 그들을 저쪽으로 몰아두는지 , 왜 그러면 안되는지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외야수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는데 야알못(야구를 알지 못하는 자)이지만 이해가 확 되었다. 다른 사람이 너무 잘해서 기회조차 없는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올 기회를 위해 집중해야 하는 삶.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고 있지 않나. 그런게 삶이지.


평소에는 별다르게 생각하지 못하던 이런 날카로운 시각들에서 나는 시인 심보선이 사회학자라는 사실을 복기한다. 소설이 배합을 잘 맞춘 과일차라면 시는 즙만 짜놓은 엑기스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니 시가 엑기스가 아니라 작가의 시선이 엑기스다. 탄산수를 부어 에이드를 만들지, 끓인 물을 넣어 차로 만들지, 종이컵에 담을지 머그에 담을지, 다기에 담을지를 작가가 결정하는 거다. 엑기스를 그냥 먹으면 영 맛이 별로다. 목구멍으로 넘길 때 올라오는 풍미가 만족스럽지 못할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따뜻한 물에 풀고, 탄산에 녹이고, 잘 구운 빵에다가 바르면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멋진 디저트가 된다.


문제는 이 디저트를 먹는데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 희한하게 심보선 시인의 글을 읽을수록 앉은자리가 따끔거린다. 감사하지, 주어진 삶에 감사하긴 하는데 거기서 끝이다. 부모 잘 만나서, 운이 좋아서 , 별다른 노력없이 주어진 모든 자리를 감사할 줄만 알았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는데 눈길을 주지 못했다. 물론 투덜거리는 것 보다야 낫겠지. 허나 그것이 죄책감이 돼서 엉덩이가 따끔거린다. 나의 풍경이 환하고 밝으면 다인가, 내 우편과 좌편에는 누가 있는가, 그곳도 그리 밝은가.



이 책의 부제는 '그날 그 자리에 있을 사람에게' 다. 있었던 사람이 되지 못했다면 있을 사람이라도 되자.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며 살고 있는 삶이라면 타자의 삶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 되자. 시인이 바라보는 세상이 다소 부조리하다면 조리있게 굴러가도록 같이 소리쳐 주기라도 하자. '나지막한 돌 하나 (p.258)가 되자.'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러나 생각은 먼 과거에만 머물지 않았다. 불과 몇 년 전에 일어난 사건조차 우리는 망각해버린다. 유사한 사건이 다시 일어나면 우리는 비로소 분노하고 책임을 묻는다. p.262

시인은 용산참사를 이야기하지만 나는 근래의 기사들을 떠올린다. 사랑의 부재와 인간으로서의 상실사이에서 죽어간 처참한 어린 영혼을 떠올린다. 몇 년이 지나면 잊혀져버리겠지. 강력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흐지부지 끝나버리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겠지. 그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면 우리는 또 분노할까, 또 움직이다 말아버릴까.



세상에는 싸우기위해 글쓰기를 그만두는 사람도 있지만 싸우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p.283

요즘 명사의 산문들을 읽으면서 그들은 과거의 어떤 것을 말했지만 현대의 그 무엇을 발견하는 나를 만난다. 이것은 좋은 버릇이다. 남의 글을 읽는 것에 대한 무한한 기쁨을 올해도 만끽 중이다. 다만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읽은 자로서의 발걸음을 떼길 바라본다.



우리는 우리대로 일이 있다. 일터에서 사람을 사람답게 대접하기. 조직과 집단에 앞서 '사람이 먼저' 라는 원칙을 잊지 않기. 그간 쌓인 서로의 억하심정을 헤아리고 풀기 위해 노력하기.
우리의 현장은 결국 삶이니까.p.267

나는 심보선 시인을 잘 몰랐다. 이 한권의 산문집으로 다 알았다고 하긴 어렵다. 하지만 책을 덮은 지금은 그의 시가 너무도 궁금해졌다. 세상으로부터 내가 듣지 못한 세밀한 음성을 나도 듣고 싶어졌다. 안락이 두 귀를 막아서고, 편리가 시력을 잃게 한 지금, 내 앞에 것만 중요한 줄 알고, 팔이 안으로 굽는 게 당연하지 않냐며 강짜놓던 내가 부끄러웠다.

움직일 생각 않는 자, 펜을 놓아라!




매거진의 이전글 좋아하는 글을 쓰고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