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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 Jan 19. 2021

재독의 기쁨

섬에 있는 서점을 다시 읽고서!

누군가 좋아하는 소설을 고르라고 말하면 - 특히 그 사람이 독서모임이나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주저없이 - 이 책을 추천했다. 딱 한 번 읽었지만 이 책을 가지고 토론을 했기 때문에 그런지 오랫동안 기억에 남고 너무나도 좋아던 책이다. 그러나 다시 읽을 시간에 다른 책을 읽지 싶기도 했다. 그러나 재독이 결정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간혹 너무 좋았던 책인데 시간이 지나고나면 별로인 책도 있기 마련이라 어쩌면 첫사랑처럼 남겨두는 것도 좋았겠다 싶을까봐 두려움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정~~말 좋았다. 처음보다 좋았다. 처음처럼 설렜다.





(내가 3-4년 만에 찾아간) 앨리스 섬에는 아내를 잃고 방황하는 남자 에이제이가 있었다. 그는 섬에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어느날 어밀리아라는 출판사직원이 그를 찾아온다. [못다핀 꽃]을 추천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직원에게도 못됐게 구는 에이제이. 술을 진탕 먹고 아내 생각에 난동을 피우다가 자기의 하나남은 재산, 고서 <테멀레인>을 붙들고 잠이 든다.

깨보니 집은 정리 돼 있고, 에이제이의 금고는 활짝 열려있으며 <테멀레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에이제이는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하고 돌아왔다 . 그런데 서점에 왠 파마머리 아기가 와 있는 것 아닌가. (엄마는 없고 메모만 남긴 채)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3-4년 전이고, 그 때는 주로 사랑으로 이룬 가정, 아름다운 부모 혹은 독서모임의 필요성(?) 쯤으로 소감을 마무리 지었다. 그런데 지금은 좀 다르다. 문장 하나하나가 얼마나 위트있는지, 구성이 얼마나 참신한지, 이 책 자체가 얼마나 감동적인 서점인지 다시 깨달았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13개로 이루어진 챕터 사이에는 주인공 에이제이가 딸 마야에게 전하는 편지가 들어가 있다. 그것은 에이제이가 좋아하는 단편집에 대한 리뷰임과 동시에 작가가 될 딸에게 주는 유서같은 개념이다. 처음에 독자는 눈치채지 못한다. 책이 끝나야만 알게 된다. 그리고 두 번 읽으면? 문장 하나하나에 자주 코끝이 찡하다.


부서질 것 같은 한 영혼이 버림받은 영혼을 만나고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완성된다.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고 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까지의 사이에 마야라는 생명이 잉태된다. 가슴으로 낳은 그 아이는 에이제이 뿐만 아니라 섬 전체를 변화시키는 천사가 되었다. 관광객이 오는 시즌을 제외하고는 파리만 날리던 서점에 독서모임이 생기고, 어린이들이 와서 책을 읽는 변화가.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여기에 거론되는 많은 고전들을 다 읽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몇년이 지나서 이 책을 읽으니 그래도 내가 읽은 책이 꽤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다. 그렇지만 에이제이를 보낼 준비가 아직 나도 안됐다. 그래서 결말을 알지만 알고보면서도 여전히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또 한 사람, 경찰관 렘비에이스. 그의 성품, 그의 따뜻한 마음이 가진 활약상을 그때는 주의깊게 보지 못했다.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줄거리를 흡수하는데 급급해 결말만을 향해 달려가기 때문인데 이번에는 차곡차곡 읽다보니 그 전에는 주변인물에만 치우쳤던 렘비에이스에 대해서도 다시 보게 됐다.

다만  이즈메이와 바람둥이 남편의 헤어짐이 꼭 교통사고여야만 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굳이 따지자면 소설의 가장 악인(?)인데 아무런 책임소지 없이 교통사고로 죽어버린 것은 , 그래서 비로소 이즈메이가 사랑을 획득한 것은 나쁜 놈은 제대로 된 벌과 갱생이 있기를 바라는 나의 사고와는 대체로 멀기 때문에 그 점은 별로였다. (뭐 그건 작가가 선택한 플롯일 뿐이겠지만)



 아까도 말했지만 이 책 자체가 하나의 서점이다. 글을 쓰고 싶어하는 딸에게 아버지가 권해주는 사랑의 책들도,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책들도 소개되고 있다. 작가 개브리얼 제빈이 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책은 [비바 제인]만 읽어둔 상태인데 다른 책들도 다 읽어보고 싶다.





때로는 적절한 시기가 되기 전까진
책이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 법이죠.



적절한 시기가 되었으니 이 책을 아직 맛보지 못한 사람들은 꼭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나처럼 3-4년의 텀을 주고 한 번 더 읽는 것도 추천한다. 나도 아이들에게 서점 같은 책 한권을 남겨주고 싶다!


올해는 내가 정한 재독의 해이다. 한 달에 한 권은 재독해보려고 하는데 가능할지는.

하여튼 오늘 재독의 기쁨에 흠뻑 빠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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