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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 Oct 16. 2020

신 백탑파를 꿈꾸다

우여곡절 독서모임 진행기 1


엄마도 일을 가져야 한다는 말에 200% 이상 동의하는 바이다. 그 일이 비단 돈을 벌어오는 일이 아니라 무언가 생산적인 취미여도 괜찮다. 그곳에서는 누구 엄마가 아니라 내 이름 석 자로 우뚝 선다. 누구누구 씨가 되고, 무슨 무슨 선생님이 된다. 우리는 회원들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어떤 사람은 와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부담스럽다고 하기도 한다. 누굴 가르쳐서가 아니라 먼저 선(先) 자에 날 생(生) 자를 써서 그냥 먼저 났다는 뜻이다. 물리적 탄생이 먼저일 수도 있고, 어떤 것을 앎에 있어서 먼저일 수도 있고.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고 하지 않은가. 나는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참 좋아한다. 실제로 오랫동안 불리기도 했고.



독서모임에서 나는 총무 선생님이었다. 회장님은 그냥 회장님이었는데 반해 나는 희한하게 총무 선생님인 게 재밌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는 내 이름을 넣어 정겹게 불러주었다. ) 1년여 동안 진행은 회장님이 했다. 회장님은 당시 문화재 해설사를 역임하고 계셨는데 지금도 하고 계실지는 모르겠다. 요즘 서로 통 연락을 못했네.

우리의 방식은 돌아가면서 느낌을 이야기하고 한 바퀴를 다 돌면 각자 말하고 싶은 바를 덧붙여서 말하면 되었다. 어떤 날은 시간이 모자라고 어떤 날은 시간이 남았다. 점점 결석자가 사라졌다. 한번 왔다가 아예 안 오는 사람은 있어도 가끔 오는 사람은 없었다. 어떻게든 읽고 와서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그런 사람이 늘어날수록 너무 뿌듯하고 좋았다. 나는 총무여서 돈을 어떻게 운용할까 고민했다. (회비는 두 달에 만 원이었고, 처음 온 사람은 받지 않았다. 그가 독서모임에 계속 나온다면 세 번째 모임에 만 원을 내면 되었다.) 한 번 왔던 분들을 정착시키기 위해서 따로 문자를 보냈다. 한 번은 어떤 회원이 가입한 지 육칠 개월이 지난 후에 그런 말을 했다.


"나는 독서모임에 나가겠다고 등록을 해놓고도 선뜻 나가려는 마음이 안 생겼어요. 그래서 안 나오려고 했어요. 청주에 이사 와서 아는 사람도 없고, 우울증을 심하게 앓던 때라 부정적인 생각만 들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총무 선생님이 문자를 보내서 '꼭 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해주는데 그 '꼭' 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 했어요. 나도 필요한 사람이구나, 나도 꼭 가야 하는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그때 나는 콧날이 시큰했다. 6개월 동안 부정적인 말만 내뱉던 분이 그즈음에는 웃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으며, 책을 이해해 보려 하는 보다 긍정적인 발언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분은 어린 아들을 잃고 평생 남편을 원망하면서 살았다. 남편만 원망한 게 아니라 하나뿐인 큰 딸에게도 올찬 사랑을 주지 못해서 마음 아파하는 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큰 아이까지 고교를 자퇴하여서 늘 사회적 잣대에 화가 나 있는 분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부정적인 말만 쏟아내시고 모든 책이 다 별로라고 하셔서 기피했었다. 그렇지만 그분도 서서히 열리고, 나도 깨어지기 시작했다. 독서모임은 혼자는 못 간다. 무조건 더불어 가야 한다. (1년이 지나 그분은 우리 모임의 회장이 되었다)


우리는 그 사이 많은 책을 토론했다. 2주에 한 번씩 모여서 읽은 책을 가지고 이야기를 했다. 가볍게 소비할 수 있는 에세이에서부터 역사책, 사회과학 책 등 인문학서도 읽었고 한국문학 중심의 소설도 끼워서 읽었다. 한 달에 두 권을 읽기 때문에 한 권은 인문학서, 한 권은 문학으로 읽으려고 했다. 시간이 지나니 책이 쌓이고 아는 게 늘었다. 말하고 싶어 졌다. 한 가지 책을 읽으면 곁가지로 읽고 싶은 책들이 늘어났다.


나는 주로 소설을 말할 때 방방 날랐다. 특히, 한국소설은 더 그랬다. 그건 내 전공과 평소에 좋아하던 스타일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바닥은 금방 드러났다. 그냥 십오륙 년 전 기억으로 매번 우려먹는 식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그대로는 안됐다. 나는 책을 더 읽어야만 했다.


그러다가 간서치를 만났다. 솔직히 이덕무가 누군지 몰랐다. 안소영의 [책만 보는 바보] (보림)라는 책을 읽고 나서 이덕무와 백탑파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됐다. SBS 드라마 <무사 백동수>의 백동수가 등장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독서회 회원 중에 절반은 이덕무와 백탑파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모르는 게 창피했다. 집에 와서는 조선시대 문인들을 찾아보았다. 몇 년 후에 한정주의 [시의 온도] (다산초당)에서 이덕무의 글을 읽을 땐 시대적 배경은 물론 이덕무 개인의 감정 상태에 대해서도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었다. 다 [책만 보는 바보]를 읽고 토론했기 때문이라고 굳세게 믿는다. 그 책이 선정되지 않았고, 그때 그렇게 재밌게 읽지 않았더라면 이덕무의 시를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 후 독서모임을 가지고 꿈을 꾸기 시작했다.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었으면. 같은 책을 읽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고, 서로 글을 써서 궤짝에 넣어두고 그 사람이 없어도 와서 꺼내 읽고. 서로를 천거하고, 서로를 그리워하고, 아끼고 돕기로.

그렇게 우리들은 슬기로운 문턱을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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