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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 Oct 16. 2020

'책 먹는 여우'와 '책은 도끼다'

좌충우돌 독서모임 입성기 3


세 번째 모임을 하기까지 내게 주어진 시간은 단 2주. 이번에는 꼭 완독을 하고 가리라 마음을 먹고 두 번째 선정도서인 [책은 도끼다]를 읽기 시작했다. 한때 무척이나 핫했던 이 책은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광고인 박웅현 씨가 쓴 서평집이다. 솔직히 지금이야 좀 더 유명한 사람이었다면 '나도 이런 서평집을 출간해보리'라고 생각을 할 정도로 다독을 하지만 그때는 2주에 한 권도 겨우 읽어내던 때였으므로 그 책은 대단히 위대해 보였다.

일단 책 속에 들어가 있는 모든 책들을 다 읽어제 끼고 싶었다. 왜 이렇게 안 읽은 책이 많은지. 특히 저자가 '당연히 읽었겠지.'라는 눈빛으로 독자에게 자기의 책 감상을 쏟아낼 땐 내가 뭔가 크게 잘못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태 뭐했지. 아직까지 이 책도 안 읽어보고.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심령 골수를 쪼개고도 남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책은 내 독서 인생에 있어서 어른 독서의 하늘을 개벽하게 해주는 번개 같은 책이었다. 아동용 책만 읽던 나의 골수를 반으로 쪼개고 어른 책에 입문하게 해주는 진짜로 도끼 같은 책이었다. 그 책이 엄청나게 대단하다고 추켜세우는 게 아니라 진짜로 내가 원하는 독서의 길로 들어서게 해주는 트리거가 됐다는 그런 말이다.


논술과외를 8 했다. 8 동안 소그룹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처음  친구들에게  번째로 읽히는 책이 프랜치스카 비어만의 [ 먹는 여우]라는 동화책이다.  이름을 걸고 독서 논술을 지도하면서  책을 가장 먼저 읽히는 이유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독서의 이유와 방법이 소금과 후추로 은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여우는 책을 먹길 좋아한다. 여우는 서점에서 책을 사서 소금과 후추를 쳐서 먹는다. 어느 날 돈이 떨어지고 집안의 가구를 저당 잡혀 책을 사 먹지만 것도 시원찮아 도서관에서 훔쳐먹다가 걸린다. 전단지처럼 질이 낮은 종이를 먹다가 탈이 나기도 한다. 결국 할머니의 복면을 빌려 쓰고 서점을 털어서 나오다가 붙잡혀 징역에 간다. 결국 그는 책이 너무 먹고 싶어서 스스로 책을 만든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돼서 잘 먹고 잘 산다.



소금과 후추는 독서의 확장이다.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배경지식은 필수다. 독자의 이해도와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비문학 책이어도 하나의 텍스트만으로 완벽한 독서가 되긴 드물다. 내가 [책은 도끼다]를 읽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궁금해졌다면, 결국 그걸 꺼내 읽었다면 나는 소금과 후추를 쳤다. 내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니체의 사상이 궁금해졌다면, 그래서 어떤 철학책을 펼쳐 들었다면 제대로 양념이 먹혀든 것이다.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쳤지만 선생은 실천이 없었다. 결국 나는 실천의 길로 안내되었다. 여우가 도끼가 되고, 박웅현 씨는 토르가 되고 뭐 그런 거지.


그 후로 나는 읽는 족족 감명받았다. 참 잘도 감명받는 스타일이다. 남의 결혼식 가서 줄줄 우는 하객이 바로 나였다. 어찌나 감정의 진폭이 큰지. 금방 웃다가 금방 울었다. 남편은 나의 감정 기복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말이나 왔으니 고백하자면 당시에 나는 우울증에 가까웠던 것 같다. 약 먹어 본 적 없고,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매사에 화가 들어차 있었다.


논술과외는 희한하게도 공부를 못하는 친구들은 잘 오질 않았다. 적어도 중상위권 친구들이 오곤 했으니까 공부에 썩 관심이 없는 내 아들이랑 자연스럽게 비교가 됐다. 같은 책을 읽혀도 대답하는 게 달랐다. 심지어 아들은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우격다짐으로 읽혀도 건성건성 읽기 일쑤였고, 학생들에게는 절대 안 그러면서 허리에 손을 꺾어 얹고 '줄거리부터 말해봐.' 하기 일쑤였다. 남편은 내가 독서 버릇을 잡겠다고 애를 잡는 것을 보고 여러 번 만류했다. '크면 읽겠지, 책이 재미없나 보지.' 등등. 그래 이제 네 차례구나. 남편이 한 마디 거들면 아들은 자유함을 얻고 나는 바로 시선을 남편에게 꽂고 잔소리 폭격을 시작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당신이 먼저 책을 읽었어봐. 쟤가 저래? 애들이 책 한자도 안 읽는 거 그거 당신 탓이야, 알아?"


허리에 손은 여전히 빳빳하게 올려진 채였다. 가끔 검지 손가락을 곧추 세워 허공을 찌르기도 했다.

혼자 쓸데없는 이상을 만들어 놓고 현실의 괴리 앞에 감정의 널을 뛰었다. 애를 정신없이 혼내다가도 기껏 잠든 아이를 쓰다듬고 끌어안고 법석을 떨었다. 남편이 친구를 만나 늦게 들어오면 삐쳐서 3박 4일 말을 안 했다. 남편은 이리저리 달래 보다가 지쳐서 관두었다. 나는 사는 게 재미가 없었다. 매일매일이 억울해 미칠 것 같았다. 내가 꿈도 못 펴보고 주저앉은 게 모두 남편과 아이 탓인 것만 같았다.


그랬던 내가 책을 읽으면서 좀 바뀌었다. 일단 잔소리할 시간이 줄었다. 내 일을 하느라 바빴다. 읽어야지, 줄 쳐야지, 정보 검색해야지, 필사해야지. 종이 뎅- 울리는 문장은 잘 보이는 데다가 한 번 더 적기도 했다. 메신저 프로필에 적어두기도 했다. 책은 한 권이었지만 모르는 단어를 찾느라, 어려운 사조를 이해하느라, 언급하고 있는 다른 책 구매하느라, 저자의 이력을 탐문하느라 바빴다.


집안일도 좀 미루었다. 설거지가 좀 쌓여도 읽었다. 아이에게만 초점을 맞추던 모든 일과가 내가 스스로 나의 책에 초점을 맞추는 시간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독서 모임에 가서 더 많이 말하고 싶었다. 내가 깨달은 점이 맞는지 말하고 싶었고, 남들이 뭔가를 궁금해할 때 조리 있게 끼어들고 싶었다. 나름 문학 전공자 아닌가. 그야말로 창피하지 않으려고 죽어라 읽었다. 그렇게 지적 허영이 조금씩 차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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