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해서 출근하는 아줌마의 단상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이랑 상하이 치킨 스낵랩 주세요."
일찍 출근하는 날의 아침 식사는 굶기를 먹다시피*한다. 아침은 너무 바쁘다. 점심시간까지 참으려면 참을 수야 있지만 배가 너무 고픈 채로 점심밥을 먹으면 항상 남긴다. 짜증도 나고. 아침에 뭔가 요기를 하고 난 날은 서너 시간 후 밥때에 위장이 알아서 먹을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 반면, 기상 후 공복으로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면 위장은 부지불식간에 밀어닥친 음식물을 소화하지 못한다. 그래서 뭐라도 먹으려고 한다. 그나마도 시간이 남아야 사든지 싸든지해서 출근길에 함께 할 수 있다. 시간이 부족하면 그마저도 불가능.
조금 일찍 일어나면 먹을 수 있잖냐고? 뭐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일찍 자지 못하다 보니 늘 피곤하다. 내게 자유시간은 너무 짧다. 애들은 빨리 자야 10시 30분. 그제야 책 좀 볼까? 싶으면 여기저기 작은 폭탄이 밤밤 터진 것 같이 어지러운 거실이 눈에 들어온다. 딸아이가 머리에 감아 놨다가 풀어놓은, 그래서 똬리를 틀고 있는 젖은 수건, 아무렇게나 널브러뜨려놓은 가방은 기본이다. 안 먹는다고 내내 말했는데도 친정엄마가 끝내 부려 놓고 간 고구마 상자는 오늘따라 왜 이리 거실로 진출해 있나. 결국 소파에서 일어나서 빨래 정리, 식탁에 아무렇게나 올려 둔 컵 정리 - 가족은 네 명인데 식탁 위에 컵은 왜 열 개 가까이 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다 보면 설거지도 해야 하고, 요 며칠 바빠서 닦지 못한 피아노 위 먼지도 보이고. 이것저것 조금 해치우고 나면 또 12시가 다 된다. 오늘도 다 갔네. 두 페이지만 읽고 자자 결심을 해도 금방 한시를 향해 달리는 시곗바늘. 어, 밤에만 빨리 가는 거 아냐? 그때야 허겁지겁 자러 가 보지만 아, 쌀을 안 안쳤네. 다시 일어나서 부랴부랴 쌀을 씻어 밥솥에 앉히고 예약 버튼을 누른다.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얼른 조리 혹은 요리를 하고, 어느 정도 익을 때쯤 바로 아들을 깨운다. 중학생 아들은 학교를 워낙 일찍 가기 때문에 바로 깨우지 않으면 잔소리로 저글링을 한다. 아들이 머리를 감고 교복을 몸에 꿰어 맞추는 동안 나는 얼른 식탁을 세팅한다. 아들이 7시 40분에 집에서 나가면 바로 둘째를 차례! 등교시간 8시 30분 안에 나도 출근 준비를 마쳐야 한다. 밥 먹을 시간이 있는 게 이상하지. 그 사이에 나는 슈퍼우먼이 돼서 대강의 설거지를 마치고 세탁기에 빨랫감을 순식간에 넣고 돌린다. 누가 날 본다면 빨리 감기 한 비디오테이프처럼 보일 것이다.
가지 못할 급박한 일이 없다면 8시 50분엔 맥도널드 DT에 도착해 주문이 가능하다. 가까운 곳에 있으니 대만족.
그날도 그렇게 커피와 스낵랩을 사서 먹으면서 출발했다. 출근거리는 자동차로 40분. 25Km 정도 됐다. 그동안에 나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가자마자 사용해야 하는 노트북을 부팅해두고, 잔뜩 납작해진 앞머리 볼륨도 좀 세운다. 신호대기 중에 하는 일인데 산만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겐 이 40분이 여유 아닌 여유인 걸. 차라리 수도권에 살아서 운전 대신 지하철을 이용하면 어떨까 싶기도 하지만 출근시간 지옥철을 겨우 텔레비전에서만 보는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아무튼 나는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스낵랩에 감사하면서 가뜩이나 큰 입을 좀 더 쩍 벌렸다. 그러면서 불현듯 옆을 보았다.
한 중년 여성이 투명한 유리창으로 그대로 보였다. 그녀는 승합차를 몰고 있었다. 차 옆에는 주간보호센터 이름과 전화번호가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 그것을 운영하는지 아님 차량 기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 역시 분주했다. 텀블러에 든 음료를 두어 모금 하더니 옆자리에 손을 뻗어 무언가 뒤적거리는 본새였다. 그 사이 차가 좀 움직여서 나는 전방을 주시해야 했는데 멀리 못가 또 적색신호로 바뀌었다. 차가 멈추자 옆 차를 보았다. 승합차의 운전자는 커다란 옥수수를 먹고 있었다. 입에 물고 쫙쫙 뜯듯이 먹었다. 저걸로 배가 차나? 다소 쓸모없는 생각을 하면서 문득 저 차에는 왜 선팅이 안돼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빤히 보고 있는데 그 여성과 눈이 딱 마주쳤다. 얼른 눈을 피했다. 내 손에도 먹을 게 들려있다는 걸 보았을까? 반가우려나? '너도 먹니? 나도 먹는다' 하고.
2020년 상반기 통계청이 발표한 여성고용 지표에 따르면 18세 미만 자녀와 함께 사는 취업여성은 267만 2000명이라고 한다. 그 외의 일하는 엄마들을 모두 합치면 더 많을 테다. 아침을 못 먹고 출근하는 기혼 유자녀 직장여성을 통계적으로 알 순 없지만 거의 대부분임을 확신한다. 엄마들은 남들과는 다른 시간을 쪼개 사는 사람이다. 운전하며 요기나마 할 수 있다는 건 호강에 겨운 일이다. 코로나 시대에는 더 그렇다. 상시 써야 하는 마스크를 벗고 밖에서 뭘 먹기란 어려운 일.
자동차에 진하게 선팅 하는 것은 불법이다. 하지만 옥수수를 먹는 그 승합차는 선팅이 좀 돼 있어도 좋을 뻔했다. 스낵랩을 우적 베어 물면서 생각했다. 내 차는 약간의 선팅이 돼 있지만 그래도 진한 건 아니니까 누군가가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창피할 만큼 잘못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슬쩍 민망하니까. 그러면 또 못 먹고 달리는 구간을 만나게 되니까. 시내에서 정차할 때 먹어치워야 고속으로 달리는 동안 안전하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침 일찍 공복에 일하러 가는 아줌마들 차엔 선팅이 좀 필요할 것 같다. 나도 좀 알아볼까?
배고픈 건 너무 싫다.
*현진건, <운수 좋은 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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