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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 Feb 09. 2022

거의 완벽한 거래

 중학생 아들이 중고거래를 했다. 자기가 타던 자전거를 중고 거래 어플에 올렸는데 한 이용자가 사겠다고 했단다. 그 사람은 3만 원이란 웃돈을 얹어주고 판매자인 아들더러 경기도 모처로 와 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이에 아들은 내게 색다른 제안을 했다.


"엄마랑 오랜만에 드라이브하면서 이야기도 하고 거기 가서 점심도 먹고 하면 좋을 것 같아."


 차만 탔다 하면 음악을 크게 틀어 재끼는 아들 녀석이랑 무슨 드라이브냐 싶었지만 어차피 들어줄 부탁, 이왕이면 속시원히 들어주자 마음먹었다. 안된다고 하면 기어이 포기야 하겠지만 나름대로 도움을 요청하는데 들어주고 이참에 으스대 보자 싶기도 했다.


 주말이라 고속도로가 좀 밀렸지만 일찍 출발한 탓에 약속 시간 내에 도착했다. 구매자도 중학생이었는데 아들 녀석이 둘이 만나고 싶다며 나보고 차에 있기를 권했다. 약속 장소가 제법 큰 공영주차장이어서 나는 거리를 두고 지켜볼 수 있었다. 어린 학생들의 직거래 장면은 꽤 재밌었다. 한참 기다리던 아들에게 키가 비슷한 아이가 다가와선 자전거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십여분이 지났을까? 계속 쳐다보기도 지루해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어느새 아들이 차문을 열었다. 손에는 두둑한 지폐 뭉치가 들려있었다.


 거래는 완벽했다. 아들의 고객은 꼼꼼하게 검수 후 자전거를 타고 표표히 떠났고 우리는 곧 차를 출발시켰다. 돌아가는 길이 막힐 것을 우려해 간단히 점심을 먹고 고속도로에 올랐다.


 아들은 가는 동안 말도 많고 예상대로 노래도 빵빵 틀고 목이 찢어져라 따라 부르더니 돌아올 땐 두둑해진 돈주머니를 붙들고 잠이 들었다. 드라이브는 무슨 그냥 기사 노릇이네 싶다가 조용히 돌아오는 것도 낭만이겠다 싶어졌다.


 문제는 다음날 터졌다. 아들이 울상이 돼서 하는 말이 어제 만난 사람이 자전거를 도로 가져가고 환불을 해달라고 한단다. 기가 막혔다. 환불이라니! 자동차 뒷좌석을 모두 접고 자전거를 트렁크에 구겨 넣고 왕복 세 시간을 내처 달려 거래한 것이었다. 실제로 와서 보고 꼼꼼하게 검수한 물건이었다. 아무리 철이 없기로서니 이럴 수가 있나. 아들은 구매자에게 강하게 저항하며 그럴 수 없다고, 당신이 꼼꼼하게 보고 가져가지 않았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경찰에 고소한다고 으름장을 놨다고 했다.


 상대방도 이유는 있었다. 어제 기분 좋게 타고서 평소에 잘 아는 자전거포에 정비를 보러 갔단다. 그런데 자전거 가게 사장이 자전거를 훑어보더니 망가진 자전거를 용접해 놓은 건데 알고 샀느냐고 물었단다. 자전거 수리야 흠이 아니고 타다가 망가지면 수리가 가능하지만 중고거래를 할 시에는 그것을 정확하게 표기해야 하는데 아들은 그걸 고지하지 않았고 아들의 고객은 눈으로 봤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사기당한 거라며 환불을 요구하고 들었던 것이다.


 아들이 걱정하는 건 신고였다. 신고가 그리 쉬운 줄 아느냐, 잘못한 것도 없는데 뭐가 문제냐 걱정 말라고 했지만 졸업을 앞두고 있는 때에 이런 식의 문제는 나도 원치 않았다.


 그 와중에 구매자는 계속해서 답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쳐댔다. 아이는 급기야 전화를 꺼버리고 싶다고 했다. 그거야말로 무례가 아닌가 싶어 일단 내가 미리 받아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우리 애를 우습게 여기나 싶어 어른인 내가 해결하자는 마음도 컸다.


"나 어제 거래한 사람 엄만데 통화할 수 있을까?"

"네."

"어제 내가 같이 가서 봤을 때 네가 상당히 꼼꼼하게 살펴보고 가져갔잖아. 게다가 타고 갔고 말이야."

"네, 그랬죠?"

"아줌마 생각에 그러면 네가 거래를 완료하기로 합의한 건데 어째서 돈을 돌려달라고 할까?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아, 그건 아드님이 하자를 기재하지 않으셔서 그렇죠? 이건 사기예요."


 사기라는 공식적인 범죄 행위 아이의 행동 박아 버리는 어린 학생의 말에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랐다. 목소리에 노기가 생겼다.


"얘. 사기라고 했니 지금?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이건 거래였어. 거래 후 네 맘에 안 든다고 사람을 범죄자로 몰아도 되니?"

"근데 왜 제게 반말하세요?"

"뭐?!"


 갑자기 둥 소리를 은 것 같았. 노여움으로 붉어진 뺨이 당황함으로  달아올랐다. 누가 들었을까 두리번 거렸다. 그때 약속이 있어서 사람이 많이 다니는 쇼핑센터에 있다가 구석을 찾아 벽을 보고 통화 중이었다. 오른손은 전활 들고 왼손은 허리춤에 올라가 있었다. 마치 상대방을 앞에 두고 혼내는 사람처럼.


"반말한 건 미안해, 근데!"

"검수하고 가져갔다고 말씀하실 거면 알아 들었습니다. 다만 중고 거래할 때 제품의 하자는 반드시 표기해야 해요. 아드님이 말 안 한 부분은 아주 위험한 위치여서 제가 모르고 타다가 파손됐을 경우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었어요. 다음부터는 꼭 기재하라고 하세요."


 아들의 고객은 수리비를 청구했고 그 돈은 액수가 상당했다. 아들은 돈을 모아 새 자전거를 사려고 헌 자전거를 팔고 돈을 받았으나 전 자전거의 수리비를 구매자에게 다시 보내주고 나니 손에 쥔 게 너무 적었다. 아이는 며칠 동안 밥도 잘 안 먹고 신음했다. 눈물이 그렁거릴 만큼 억울해했다. 본인도 몇 달 전에 중고로 산 자전거였다. 최초의 주인은 판매할 때 본인이 용접한 사실을 기재하지는 않았으나 만나서 말해줬단다. 아들은 자전거 타는 내내 지장이 없어서 이내 그 사실을 잊고 말아서, 리세일 할 때 기재도 고지도 않았던 것이다. 억울해도 아들이 잘못한 게 분명했다.


 돈을 물어주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비싼 경험 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들은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장비를 산다, 정비를 한다 하면서 부산을 떤다. 아픔을 어찌나 빨리 잊는지! 아니, 아프긴 했는지. 그 계기로 중고거래는 하지 말기로 가족회의를 통해 결정이 났고 아들은 몇 달 동안 용돈을 모아 새 자전거를 샀다. 아들 말로 '간지는 떨어지지만 마음은 편한 중저가의 날씬한 자전거'로!


 아들은 다 잊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들의 새 자전거를 볼 때나 중고거래 사이트를 우연히 접할 때마다 그 소년이 생각난다. 이름도 모르고 정확한 나이도 모르는 그의 가열한 목소리가 생생하다. 나에게 무례를 인정하라고 말하는 목소리, 내가 당신에게 어리다는 이유로 함부로 훈계 들을 이유가 없음을 말하는 차갑고 따가운 목소리가.


 반말이라는 건 뭘까. 낯선 이를 향한 나의 하대는 나이가 아들뻘이라고 생각해 자연스럽게 나온 말투였던가, 아니면 애초에 노기를 띠고 합쳐져 은근하고 짙게 내비친 무시와 경멸이었던가.


 어른으로부터 아이들이 함부로 무시당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싶다고 여러 번 말하던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반말에 대하여 진중하게 생각한다. 한국의 문화인데 어떠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정당하다면 모든 이의 나이를 공개하고 모두 말을 놓거나 모두 말을 높여야지. 어떤 기준으로 존대와 하대를 하기로 결정할 수 있다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면 나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함부로 무례를 저질러서는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 후 연습 중이다. 모르는 아이들에게 존댓말 쓰기 연습. 가게에서 청소를 하다가 마주치는 아이들이 먼저 안녕하시냐 묻거든 '어, 안녕' 하지 말고 같이 '안녕하세요' 하기로 했다. 오늘도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이 와서 다정하게 인사를 할 때 나도 모르게 예의 그 버릇대로 반말을 했지만 자꾸 의식하다 보면 존대가 자연스러워지겠지 생각한다.


 속 쓰린 이 중고거래는 아들에게 산 경험이 됐겠지만 내게도 '응당 그래도 되는 오래된 무례를 깨부수는 도끼'가 됐을지 모른다. 괜찮은, 거의 완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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