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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Mar 07. 2024

우리는 화해했다

노랑이 이야기1

 7월 20일. 나는 아침 일찍 취재에 나섰다. 일주일도 전에 겨우 잡은 취재 약속이었고, 원고 마감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갈 수밖에 없었다.


 그날은 네 곁에 고작 10분 정도 머물렀다. 숨 쉬고 걷는 것도 어려웠던 너는 내가 가면 잠깐 몸을 추슬러 곁으로 다가와 몸을 슬쩍 비볐다. 그날도 그걸 해줬다.


그래서 난 너와 함께하는 7월 20일의 밤도 존재할 거라 믿었다.




 사실 너는 언제라도 무지개다리를 건널 수 있었다.


 너는 열흘 전부터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사료 몇 알, 간식 몇 번 먹다 말기 일쑤였고 물만 많이 마셨다. 어릴 때부터 물은 꼬박꼬박 마셨던 너다. 요로결석처럼 고통스러운 병을 앓다 죽지는 않을 거라고 좋아했었는데. 일주일도 더 전부터 네 배가 떨리고, 씰룩거렸다.


 노랑이는 열여섯 살이었다. 차츰, 계속, 조금씩, 아팠을 것이다. 2023년 7월 20일까지.




 2008년, 너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내 뒤를 밟았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버스에서 내린 나를 어디서부터 따라왔는지. 집에 도착하기 2분 전쯤이었을까, 너는 내 옆을 따라 걸으며 야옹야옹 울었다. 나는 더 빨리 걸었다. 우리 집에는 이미 여덟 마리의 고양이가 있었으니까. 4차선 도로 건너편의 아파트에서 우리 집 옥상의 고양이들의 똥냄새가 넘어온다는 민원을 제기할 정도였으니까(이 민원은 건너편 아파트에서 고양이들이 보이지 않도록 집을 다시 짓고 나서 멈췄다. 눈에 보이지만 않으면 냄새도 사라졌던 모양이다).


 그러나 너는 나의 무시에도 개의치 않고, 기어코 우리 건물까지 나를 쫓아와 당당하게 엘리베이터에 탑승, 우리 집에 입성했다. 너는 내 방에 살게 되었다. 학원 안쪽의, 폐쇄된 강의실인 척 출입금지 표지를 달아놓은 내 방에서.



 스트릿 출신의 청소년 고양이였던 너는 오자마자 밥을 푸지게, 주는 대로 다 먹었다. 탈이라도 날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먹어 대서 그날은 잠을 설쳤다. 너는 그런 나를 두고 꿀잠을 잤고, 아침에는 또다시 수북하게 담아놓은 사료를 먹었다.


 차츰 집에 익숙해졌던 너는 고등학생인 내가 지각이라도 할까 아침이 오면 솜방망이로 얼굴을 때리면서 나를 깨웠다. 


 사실 밥 달라고 그런 거였다. 덕분에 나는 너와 사는 동안 핸드폰 알람이 필요 없었다. 다 큰 너는 다른 고양이들보다 몸길이가 반 뼘은 더 길었다. 잘 크려고 잘 먹었던 모양이다.




 다음날, 방에 돌아왔더니 네가 없었다.


 나는 어제 갓 지어준 네 이름을 부르며 방을 구석구석 뒤졌다. 내 방은 3층이었고, 1층이 다른 건물들의 2층 높이에 지어진 건물이라 창문을 뛰어넘어 도망갈 수도 없었다. 


어제 내가 겪은 일이 모두 꿈인가 싶어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둥그렇게 말린 이불속에서 작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너는 내가 덮고 잔 이불속을 파고 들어가 숨어있기를 좋아했다. 방문을 열었을 때 보이지 않으면 항상 이불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고, 나에게는 아침마다 이불을 개키지 말아야 할 이유, 혹은 핑계가 생겼다. 머리까지도 이불속에 꽁꽁 숨겨놓는 것이 네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답답하지도 않은지.


 네가 2023년 7월 20일까지 줄곧 그렇게 내 곁에서 잠들 수 있었다면, 내가 없을 때면 내 이불속에 포근하게 숨어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면, 너는 좀 더 오래 내 옆에 있었을까? 나는 간혹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노랑아. 

 2008년의 가을. 너는 이불속에 포근히 감싸여, 밤에야 집에 돌아올 나를 기다렸겠지. 나는 사진 찍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고등학생이었으나, 어렸던 네 사진은 몇 장 찍어두었다. 내가 중학생 때부터 베고 자던 노란 고양이 모양 베개를 사람처럼 베고, 보라색 극세사 이불을 덮고 자는 사진. 긴 몸을 쭉 펴고 사람처럼 이불 위에 누워 자는 사진. 네가 그렇게 사람처럼 자는 걸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너를 계속 내 방에 둘 방법이 없었다.



 청소년답게 방구석에서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고 가끔은 울던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너. 애교쟁이는 아니지만 무심하지도 않게, 내 손가락을 핥아주던 너. 옥상의 다른 고양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해 내 방으로 피신 온 회색 털의 페르시안 고양이 꼴매에게도 무심한 듯 잘해주었던 너. 나는 꼴매와 네가 어두컴컴한 태화강을 내려다보는 사진도 갖고 있다. 창 앞에 앉아 식빵을 굽던 꼴매와 꼬리로 야무지게 발을 감싸고 앉은 너. 그런 너희 뒤에서 핸드폰을 들었을 나.


 꼴매가 서둘러 고양이별에 가지 않았더라면 너와 꼴 매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나에게서 먹고살 만한 고양이들의 몸냄새가 났을까?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너는 고작 고등학생이었던 나를 따라 우리 집에 왔다. 그런 너에게, 나는 네게 아주 멋진 미래를 1년 정도 보여준 뒤, 완전히 거둬들였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여덟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들과의 인연은 이별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떠나간 존재들, 그리고 제 옆을 지키고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놓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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