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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Mar 07. 2024

사랑받고 있었다

노랑이 이야기3

 노랑이는 1년 동안 나와 함께 학원에서 살았다. 우리 가족과 고양이들이 살던 건물은 우리 것이었는데, 우리는 그 건물을 '가졌다'고 단정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무언가를 소유한다면 원하는 대로 유용할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은행이 절반 이상의 지분을 가진 건물에서는 우리가 유용할 수 있는 공간도 절반 이하였다. 무언가를 제대로 갖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꾸준하게.


 우리 가족은 건물을 가졌지만 갖지 못했다. 우리가 살기 좋은 공간이 있다면 세를 줄 생각을 먼저 해야 했다. 5층짜리 건물 안에서, 우리는 무언가에 잡아먹힐까 전전긍긍하면서도 옮겨갈 나무가 없는 다람쥐처럼 층과 층을 수없이 오갔다. 3층 학원 구석의 강의실은 2008년부터 2009년까지 머물렀던 내 나무 구멍 중 하나였다.



 노랑이는 몰랐겠지만, 그가 나와 함께한 1년 남짓한 시간은 기나긴 옥상생활의 준비기간이었다.


  노랑이가 오기 전부터 우리와 함께 살고 있었던 여덟 마리의 고양이는 모두 옥상에서 살고 있었다. 사실 노랑이가 언제부터 옥상에서 살게 되었는지는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이는 노랑이마저 옥상에서 살게 하는 것이 서러워서였을 수도 있고, 그 맘 때 고양이별로 떠났던 또 다른 고양이, 꼴매의 기억 때문인지도 몰랐다. 꼴매는 나를 너무나 사랑했고, 나는 꼴매를 지켜주지 못했다.




 한 가지 확실하게 기억하는 것은, 옥상에서 살게 된 노랑이가 나에게 큰 배신감을 느꼈다는 사실이다. 옥상으로 이사한 노랑이의 샛노란 눈이 '어떻게 날 여기에 버릴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한동안 노랑이는 내 눈길은 물론 손길마저 피했다.


 그럼에도 노랑이를 안을 수 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건물을 떠나 시골로 이사할 때도, 노랑이는 내가 직접 데려왔다.


 이사 후, 시골이 낯설었던 노랑이는 기어코 한 번 탈출했으나 사나흘 뒤 컨테이너 아래서 물도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그때 이미 노랑이는 사람으로 치면 중장년이었다.



 노랑이는 그때, 어디로 떠나고 싶었던 걸까?

 나를 알지 못했던 태화동 골목길? 나와 함께 살았던 강의실?

 아니면, 옥상?



 탈출 이후 노랑이는 고양이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나갈 수 있도록 잠시 문을 열어두어도 나가려들지 않았다. 나이 들어 만난 야생은 노랑이에게 생각 이상으로 가혹했던 모양이다.


 이후 노랑이와 긴긴 삶을 함께했던 일등이와 산이, 까미가 차례로 고양이별로 떠났다. 개중 가장 어리고 허우대가 좋았던 노랑이는 결국 홀로 남게 되었다.

  

 그제야, 노랑이는 내 손길을 온전히 허락했다.


 외로움이 나에 대한 배신감을 곰삭힌 것일까, 노랑이는 빠꼼이 열린 문과 내 손짓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매일 아침 화단을 탐색하는 짧은 산책을 시작했다. 나를 두고 호다닥 도망가버리는 일은 없었다. 가끔 낯선 고양이를 보고 쫓아갈 때도 있었지만, 노랑이는 늘 어른 걸음으로 다섯 보 남짓 쫓아간 자리에 멈춰 서서 내 손길을 기다렸다. 어쩌면 노랑이는 단 한 순간도 나에게 배신감 같은 것을 느낀 적 없었는지도 몰랐다. 모든 것은 나의 자격지심이었을 뿐.


 노랑이는 이미 열다섯 살이었다. 나는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줄곧, 노랑이에게 사랑받고 있었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여덟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들과의 인연은 이별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떠나간 존재들, 그리고 제 옆을 지키고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놓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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