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소 May 23. 2024

냥생에 봄날은...

눈이 이야기 2


 눈이가 임신한 암컷 고양이라서 받아주기로 했던 우리 가족은 땅콩을 발견하고 어안이 벙벙했다. 이모가 일하던 바닷가 횟집 사람들도 모두 눈이를 암컷으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눈이는 의도치 않게 모두를 속였다.


 눈이가 살았던 환경을 생각했을 때, 기생충 혹은 선천적 질병 때문이었을 것이 분명한 부른 배가 결국 눈이를 살렸다. 눈이는 배불뚝이였지만 청소년 고양이 정도의 몸길이를 가졌고, 우리 집에 온 뒤로도 몸길이는 더 커지지 않았다. 계속 바닷가 길고양이로 살았다면, 아마 오래 살지는 못했을 거다.




 눈이와 함께한 실내생활은 쾌적하지 못했다. 눈이는 어미 고양이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티가 역력한 고양이였다. 화장실을 가릴 줄도 몰랐고, 어쩌다 한 번 화장실에 볼일을 봐도 덮는 법을 몰랐다. 이는 모두 어미 고양이가 가르쳐야 할 수 있는 행동이라는 걸 나는 눈이를 보고 나서야 제대로 깨닫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 태어난 새끼 고양이들은 모두 일등이처럼 살뜰한 어미 고양이로부터 철저하게 교육받거나, 꼴매같은 방임형 어미 고양이에게서 태어나더라도 주변의 성묘들을 보고 눈치코치로 터득하곤 했다.


 홀로 큰 눈이에게는 보고 배울 만한 존재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눈이는 중성화 수술을 하기 전의 까미와 비슷하게 사람 손도 탈 줄 몰랐다. 처음에는 완전 쭈구리였던 눈이는 내 방에 적응하자 까미처럼 매서워져 내 곁에 다가오기는커녕 붙잡기도 어려웠다. 다만 경계심이 많고 소심한 고양이여서 까미처럼 나를 적극적으로 공격하지는 않았다.


 눈이는 야생성이 매우 짙은 고양이였다. 이동장에 넣어 병원에 데려가는 일도 홍역처럼 겨우 치렀다. 이모는 대체 이런 눈이를 어떻게 이동장도 없이 우리 집까지 데리고 왔는지가 미스터리였다. 밤이면 우다다를 아주 열심히 했는데, 아무리 우다다를 해도 배둘레햄은 줄지 않았다.


 어쨌든 한 번은 병원에 데리고 가야만 했다. 일단 배가 너무 나왔고, 눈이는 니트나 천 쪼가리를 가지고 놀다가 뜯어먹어버리는 이식증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장기에 천 쪼가리가 남는 일은 없었다.(뜯어먹은 니트며 천 쪼가리는 모두 똥으로 나왔다.) 우리는 눈이를 좀 더 두고 본 뒤에야 겨우 병원에 데려가서 중성화도 시키고 진료도 받은 뒤 돌아왔다. 두 번은 못 데려가겠다 싶어서.  




 내 방에서 숨 고르기를 마친 눈이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외할아버지는 이맘때쯤부터 부쩍 폐가 안 좋아지셔서 동물들, 특히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걸 힘들어하셨다.


 처음에는 눈이를 옥상 고양이들 집에 합사시키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눈이는 사람과 어울려 사는 것은 물론 같은 고양이들과도 함께 살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눈이는 옥상 고양이들을 낯설어했고, 옥상 고양이들은 눈이를 싫어했다. 눈만 마주치면 싸우려 들었다. 고양이로 사는 것에 대해 배운 바가 없는 데다 행동이 과격한 눈이가 옥상 고양이들에게는 눈엣가시였던 모양이다.


 

옥상 시절의 눈이 집은 열악했으나, 시골로 이사 온 뒤에는 좀 더 나은 집을 만들어줄 수 있었다. 눈이도 나이가 들자 화장실 쓰는 법을 깨쳤다.



 눈이를 생각하면 캔의 '내 생애 봄날은...'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내가 어릴 때 방영했던 드라마 <피아노>의 주제곡인데, 드라마도 주제곡도 꽤나 인기가 많았다. 그 노래 가사를 곱씹으면 내가 모르는 눈이의 어린 시절을 더듬게 보는 것만 같다. 비린내 물씬 풍기는 바닷가 횟집거리를 전전했을, 노란 눈이 유난히 큰 새끼 고양이 눈이의 세계를.


 고양이로 살아가는 방법을 하나도 배우지 못한 채 성묘가 되어버린 눈이. 눈이의 과거는 '내 생에 봄날은...'의 가사보다 더 서러웠을지도 모르겠다.




 눈이는 결국 생을 다하는 그날까지도 우리 집 고양이 무리와 섞이지 못하고 홀로 지냈다. 고양이의 새끼 시절은 너무나도 중요했다. 사람의 어린 시절이 그렇듯이.




 아빠는 눈이를 위한 집을 따로 지었다. 다른 고양이들과는 눈만 마주쳐도 싸울 기세여서, 외따로이 떨어진 집이었다. 그곳에서, 눈이는 순조롭게 옥상에 적응하는 듯 보였다. 옥상에 올라간 뒤로는 부쩍 더 사람 손을 피해서, 밥을 줄 때만 겨우 머리 한 번 만져볼 수 있었긴 했지만.




 시간이 많이 흘렀다.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울산으로 내려와 학원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우리는 눈이의 몸에서 또 한 가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눈이의 등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옆에는 털이 붙은 살점이 떨어져 있었다.


 눈이 혼자 사는 고양이집 안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세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귀여운 존재들과의 인연은 이별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떠나간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보려고 합니다.

 

  

이전 18화 배불뚝이 고양이의 비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