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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May 30. 2024

자해하는 고양이

눈이 이야기 3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눈이의 집에 떨어진 핏방울을 황망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눈이는 스스로 꼬리 위쪽 등에서 털을 뽑았다. 그루밍이라도 하는 듯 천연덕스러운 행동이었다. 먹을 털실도 천도 없으니, 자기 털을 뽑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눈이는 털만 쏙 뽑아내지는 않았다. 털에 피부가 붙어 떨어졌고, 그 부분이 아파서 핥다가 피부가 더 벗겨졌다.


 눈이는 일종의 자해를 했다. 사람의 자해와 같은 의미는 결코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같았다. 자기 몸에 상처를 낸 눈이는 더욱 날카로워졌다. 우리는 병원의 조언대로 천으로 눈을 가린 채 병원에 데려갔다.




 병원에서 감아준 붕대는 금세 풀렸다. 거즈나 붕대, 깁스 같은 것들이 고양이 몸에 얌전히 붙어있도록 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사람 손이라도 잘 탄다면 곁에 두고 감시라도 하겠지만... 


 눈이는 자기 등에 상처를 내기 전, 그 애를 집에서 억지로 꺼내려 한 친척 어른의 팔을 물어서 피를 낸 적도 있었다. 눈이의 몸에 자주 손을 대는 일은 우리에게도 위험했다.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어 계속 등의 상처를 뜯는 눈이의 상황을 이야기하니, 병원에 데려오기가 어려우면 넥카라를 씌우고 포비돈을 매일 발라 소독해 주라고 했다. 새살이 돋을 때까지. 


 그날부터 눈이와 넥카라, 포비돈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눈이는, 그때부터 1년 넘는 시간 동안 넥카라를 벗지 못했다.




 야생성이 짙은 데다 아파서 더 예민해진 눈이에게 넥카라를 씌우는 것도 힘들었지만 더 힘든 건 포비돈을 바를 때였다. 손에 잡히지 않으니, 붓다시피 바를 수밖에 없었다. 집 근처 약국에서 산 포비돈을 일주일에도 서너 통 썼다. 


 마침 의료용품점에서 일하게 된 친구가 사정을 알고 1.5리터 정도의 큰 포비돈을 사다 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눈이의 치료가 그 큰 포비돈 한 통을 4분의 3 이상 쓸 때까지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우리 건물 옥상에는 고양이들과 개들이 도합 일곱, 여덟 마리가 있었으므로, 혼자 지내는 눈이의 집은 아주 작았다. 차라리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상처 난 등에 포비돈을 부어도, 눈이는 멀리 도망가지 못했으니까. 





 바닷가 횟집거리 출신 눈이는 밥을 주면 순식간에 비워버릴 정도로 식탐이 많았다. 나는 캔과 사료를 섞어 밥을 주고, 부리나케 눈이의 등에 포비돈을 발랐다. 눈이는 상처가 따가워도 아랑곳 않고 밥을 먹었다. 길에서 나고 자란 눈이에게 허기는 통증보다 큰 고통이었다.  

 

 눈이의 상처를 돌보기 시작하면서부터 옥상 동물들의 아침저녁도 내가 챙겨주기 시작했다. 눈이는 그 뒤로 나를 보기만 하면 사이렌 소리(이야아아아옹)를 내며 철망 앞을 왔다 갔다 했다. 밥을 먹는 동안에는 그 큰 상처에 포비돈을 여러 차례 부어도 작게 움찔거릴 뿐, 밥그릇 앞을 떠나지 못했다.  




 시간이 약이었다. 눈이는 차츰 나와 포비돈에 적응해 갔다. 매일 소독해 주니 상처는 빠르게 아물어갔다. 꼬리 바로 위부터 등의 절반을 덮을 정도로 컸던 상처에 순조롭게 딱지가 올라왔다. 인터넷으로 찍찍이로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폭이 좁은 넥카라를 여러 개 구매해 채워보며 눈이와 맞는 넥카라를 찾았다. 병원에서 받은 넥카라는 폭이 너무 넓어서 밥을 제대로 먹기 힘들었기에, 꼭 바꿔주고 싶었다. 



눈이는 시골에 와서는 한 번도 등에서 피부를 벗겨내거나 하지 않았다. 눈이 집은 내 공간과 창문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내가 들어서면 애옹, 하는 특유의 울음으로 나를 반겼다.



 나를 만날 때마다 등이 아팠을 텐데도, 눈이는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내가 해 준 건 상처를 소독하는 동안 캔과 사료를 비벼준 것과, 가끔 정수리를 간질어 준 일과, 포비돈을 말리기 위해 집 문을 열고 함께 옥상을 거닐며 등을 바닥에 비비지 않도록 옆구리를 잡아준 것. 

 

 고작 그 정도였는데도, 눈이는 내게 마음을 열었다.  




 두텁게 올라온 요오드색 딱지가 조금씩 떨어지고, 눈이의 등에는 분홍빛에 고등어 태비가 살짝 보이는 맨살이 돋아났다. 새살이 돋는 동안 눈이는 많이 가려워했다. 넥카라는 최선을 다해 등을 보호해 주었다. 그래도 내가 옥상에 올라오면, 눈이는 내 손에 주둥이를 비비고 내 발 옆에 발라당 누워 뒹굴거리는 게 우선이었다.  


 눈이가 뜯어내고 싶었던 건 털이나 피부가 아니라, 등 깊숙이 뿌리내린 고독이었는지도 몰랐다.




 눈이의 새살에서 비죽비죽 잔털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눈이의 넥카라를 벗겨주기로 했다. 

 밥을 먹을 때부터 눈이의 이빨이 등으로 향하는 그 순간까지, 15분 정도만.







*메인 이미지는 '뤼튼'을 통해 생성한 AI이미지입니다. 눈이를 찍은 사진은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 사실은 저를 더 아프게 하지만, 눈이의 상황이 사진으로 찍어둘 만큼 좋지 못했습니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여덟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들과의 인연은 이별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떠나간 존재들, 그리고 제 옆을 지키고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놓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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