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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Jun 13. 2024

콩알만 한 용기

콩알이 이야기 1 



 2년 전, 우리 집에 와서 1년을 산 예쁜이가 여섯 마리 새끼를 낳았고, 그중 한 마리가 급하게 고양이별로 떠난 뒤 우리는 예쁜이와 새끼들을 창고로 데리고 들어왔다. 예쁜이는 창고에서 다섯 마리 새끼들을 예쁘게 키웠고, 새끼들이 불린 사료를 와구와구 먹으려 들 때쯤 중성화 수술을 하고 돌아왔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그 애가 나타났다. 이쁜이의 새끼들이 꽉 찬 생후 2개월 차였던 어느 날이었다. 



제법 당당하게 창고에 입성한 낯선 새끼 고양이, 콩알이.

 


 예쁜이가 드나드는 구멍으로 생후 한 달 조금 넘은 듯한 턱시도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왔다. 


 예쁜이는 새끼들과 창고에서 지내는 것을 좋아했지만, 창고에 갇혀 살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새끼들을 물고 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여 차라리 점프실력이 늘면 스스로 오갈 수 있게 창가에 의자를 대 주었다. 그렇게 나갔다 들어오는 통로가 닦이자, 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등이 까만 새끼 고양이 하나가 나타난 것이다. 



배가 많이 고팠는지 불린 밥부터 먹고 창고 안을 둘러보는 콩알이. 예쁜이의 새끼, 네찌가 콩알이를 발견하고 잔뜩 겁먹고 숨었다.



 새끼 고양이는 의자를 타고 내려와 주위를 두리번대더니, 불린 사료를 발견하고 와구와구 먹기 시작했다. 생후 한 달 조금 넘은 것 같았지만, 조금 더 됐을지도 몰랐다. 젖에 사료까지 왕창 먹고살던 예쁜이의 새끼들과는 달리 말라 보였다. 정확하게 어떤 상태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얘는 내가 들어가기만 하면 창문 밖으로 도망쳤기 때문이다. 나는 창고에 달린 창문으로 얘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고, 당시 사진도 대부분 창문 밖에 서서 찍었다. 


 까만 서리태콩 같은 새끼 고양이는 온몸으로 어른 고양이의 핵심 영역지에 뛰어들었다. 심지어 새끼를 키우는 어미 고양이의 영역지였다. 야생이었다면 매우 위험한 상황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 애는 용감했다. 용감하게 생존을 위한 선택을 했다. 


 우리는 그 애를 '콩알이'라 부르기로 했다. 


창문 밖에서 자신을 보는 나를 발견하고 놀란 콩알이.
조금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그루밍을 멈추고 줄곧 나를 응시하고 있다.



 아빠는 콩알이가 버려진 것 같다고 했다. 콩알이의 엄마가 콩알이를 버렸거나, 콩알이가 죽은 어미 고양이를 떠나온 것으로 보였다. 어느 쪽이든 생사의 갈림길이었을 터. 콩알이는 창고를 드나드는 예쁜이와 새끼 고양이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와 창문 앞에서 몇 번이나 망설였을 것이다. 하지만 콩알이는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창고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콩알이는 너무 일찍 혼자가 되었다. 


 콩알이가 처음 창고에 들어왔을 때, 새끼들은 전부 콩알이를 보며 하악질을 해댔다. 예쁜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콩알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여섯 마리 고양이의 하악질에도 아랑곳 않고 의자에 앉아 버티기를 시전, 이쁜이와 새끼들이 바깥 구경을 간 사이에는 서랍으로 만든 캣타워에 올라가 누워 그루밍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콩알이를 그루밍 해주는 어린 두치. 두치와 콩알이는 지금도 붙어 다니며 같이 먹고 놀고 잔다.


 콩알이와 같이 눕는 고양이도 생겨났다. 




 콩알이는 예쁜이 젖도 동냥해 먹었다. 아마 그게 창고 입성의 최종 목표였던 것으로 보인다. 


 예쁜이는 출산 한 달 만에 중성화 수술을 했는데, 첫 번째 이유는 또 임신하지 않았으면 해서였고 두 번째는 새끼들이 빨리 젖을 뗐으면 해서였다. 다섯 마리 새끼들이 점점 더 왕성하게 젖을 빨자 예쁜이 몸이 축나는 게 너무 잘 보였다. 그런데 여기에 콩알이도 가세한 것이다. 


 그렇게 콩알이는 한 달 정도 예쁜이 젖을 먹었다. 다른 새끼들은 그 뒤로 한 달은 더 예쁜이 젖을 먹었다. 콩알이 보다 일찍 태어났는데도. 


 콩알이가 그래도 양심은 있었다. 더 먹으면 진짜 혼쭐이 날까 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멀리서 당겨 찍은 콩알이. 2022년 처음으로 창고에 입성한 콩알이는 20일 사이에 부쩍 컸다.



 콩알이는 최선을 다해 예쁜이와 새끼들 틈에 섞여 다녔다. 예쁜이와 새끼들이 어딜 가득 악착같이 쫓아다녀서, 결국은 이렇게 함께 누워 쉬기도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예쁜이와 새끼들의 틈바구니에 있을 때에야 그나마 가까이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허락해 주었다.


 콩알이는 같은 고양이는 믿어도 사람은 절대 믿지 않았다. 손끝 하나 댈 수 없었다. 



왼쪽부터 두치 네찌 콩알이 세치 뿌꾸. 다들 늘어지게 자고 있는데 콩알이만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8월이 지나고 9월이 되면서, 콩알이도 예쁜이의 새끼들처럼 길쭉해지고, 몸피가 도톰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비슷한 시기의 예쁜이 새끼들 보다는 작았는데, 어미 고양이부터 영양이 좋지 않아 그리 건강하지 못하게 태어난 게 아닐까 싶었다. 성묘가 된 지금도 콩알이는 두치, 세치, 네찌, 뿌꾸보다는 작다. 



  

네찌와 마리골드 사이에 앉아있는 콩알이. 눈을 감고 돌에 턱을 괸 네찌와 달리 역시 나를 응시하고 있다.
날 보고 깜짝 놀란 콩알이.
예쁜이 새끼들과 함께인 콩알이의 당당한 포즈.



 처음에는 예쁜이가 콩알이를 받아주지 않을까 봐 노심초사했었다. 콩알이는 사람을 믿지 않으니, 예쁜이가 받아주지 않아 멀리 도망갔더라면 죽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예쁜이는 데면데면하게나마 콩알이를 받아주었고, 예쁜이의 새끼들도 콩알이와 함께 어울렸다. 자기들끼리 있을 때처럼 아주 친밀하게 굴지는 않았지만, 슬며시 무리에 끼어드는 콩알이를 내치지 않았다. 



 




  그 애를 살린 건 콩알만 한 용기였다. 

  제 몸만 한, 제 전부를 건 용기였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세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귀여운 존재들과의 인연은 이별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떠나간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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