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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Jun 20. 2024

반만 나를 믿어봐

콩알이 이야기 2



타이어와 자투리천으로 만든 집 안에 예쁜이 새끼들과 콩알이가 꼭꼭 붙어서 쉬고있다. 시계방향으로 두치, 뿌꾸, 콩알이, 한치, 세치. 네찌는 어디 가고 없다.


 

 콩알이는 무사히 예쁜이네 식구들 틈에 섞여 들었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콩알이는 우리와는 여전히 매우 먼 거리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거리를 좁히려고 애를 썼지만, 1차적으로는 실패하고 말았다.



평화롭게 굴러다니는 청소년기의 콩알이. 콩알이는 가까이 오면 도망가버려서 사진보다 동영상이 많다.




 거리를 좁히려 애쓴 이유는 바로 중성화 때문이었다. 예쁜이네 새끼 고양이들은 4개월을 꽉 채우고 넘어갈 때쯤 중성화 수술을 시켰다. 예쁜이가 그랬듯, 새끼들도 주변을 돌아다니는 수컷 고양이들과의 짝짓기를 통해 왕성한 번식을 할 것이 깊이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쁜이 새끼들 중 한치는 수컷, 나머지는 암컷이어서 얼른 조치를 취하고 싶었다.


 실제로 우리는 빨리 움직였다. 예쁜이는 새끼들이 4개월 가량 되자 부쩍 새끼들과 함께 우리 집 주변을 돌아다녔다. 주변에 수컷 고양이가 살고 있으니, 보이는 데로 새끼들을 잡아 병원에 데려갔다. 동네 고양이 개체수를 줄이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두치는 아직 중성화 수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몸무게가 올라오지 않아 잡아갔다가 도로 데려온 적도 있었다.




콩알이와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 츄르도 손바닥이 아니라 손 끝에 발라줘야 편하게 먹던 콩알이. 손바닥에 짜준 건 뿌꾸가 다 먹었다. (개 짖는 소리 주의)




 다섯 마리 청소년 고양이들의 중성화 수술이 끝나자, 우리는 콩알이도 노렸다. 콩알이는 좀처럼 몸집이 커지지 않는데다 여전히 사람을 매우 경계해 함부로 잡으려들 수 없었다. 아빠가 손에 츄르를 짜서 들이밀어야 겨우 우리와 접촉이라도 했다. 우리는 그 해 겨울이 될 때까지 콩알이를 동물병원에 데려가려 무진 애를 쓰다가, 결국 포기했다.



츄르를 먹고 싶지만 가까이 가는 건 싫었던 콩알이의 몸부림. 츄르가 묻어있던 아빠 손만 집중공략중.






 겨울이 깊어지자, 예상대로 콩알이는 임신을 했다. 콩알이의 작은 몸에 새끼들이 불어나자 콩알이의 배는 거의 바닥에 끌릴 수준이 되었고 까맣고 반들했던 등의 털도 햇볕에 바랜 것처럼 변해갔다. 털도 성격도 한층 까칠해 보였다.



눈 내리는 날의 임신한 콩알이.
이날 콩알이는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콩알이는 마리 새끼를 낳았다. 우리에 대한 경계는 점점 심해져서, 아빠는 우리가 들여다보면 아이들을 물고 거처를 옮기니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매우 조심했다. 하지만 콩알이는 안심하기 어려웠는지 털이 까만 마리 새끼들을 하루가 멀다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콩알이와 비슷한 턱시도가 둘, 까맣지만 고등어태비 고양이들처럼 살짝 무늬가 보이는 새끼 하나, 완전히 새까만 새끼 하나였다.



콩알이의 새끼들이 태어난 지 일주일 남짓 되었을 무렵. 콩알이는 우리가 곳곳에 만들어 둔 집들도 잘 이용하지 않으려 했다.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그중 두 마리가 죽었다. 죽어가는 새끼 두 마리를 살리려고 갖은 애를 쓰는 콩알이를 발견한 아빠는 새끼들을 찾아 창고로 데리고 들어왔다. 비가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창고를 지키던 노랑이를 잠시 격리하고 젖병도 제대로 빨기 힘들 만큼 약해진 새끼들을 돌봤다.





 콩알이는 무진 애를 썼다. 그 애라는 것이, 우리를 믿지 못해서 이곳저곳에 새끼들을 물고 다니는 거였다는 게 문제였다. 새끼들 역시 그런 콩알이와 우리 눈에 띄지도 않는 야생의 길고양이 아비를 닮아 사람 손이 닿으면 까무러칠 것처럼 울어댔다.


 그나마 건강한 둘은 버텨냈고, 둘은 죽었다. 따뜻한 물을 담은 병을 손수건으로 싸서 옆에 붙여두고, 식어가는 몸을 데운 손으로 쓸어주어도, 소용이 없었다.



돌담 위, 사람은 딛기 힘든 작은 공간에서 콩알이가 쉬고 있었다. 당시 홀로 쉬고 있던 콩알이가 너무 예쁘면서도 쓸쓸해보였다. 메리골드와 너무 잘 어울리는 콩알이.



 콩알이는 새끼 둘을 잃은 뒤로 몸을 피했다. 그나마 건강한 새끼 두 마리도 함께 사라졌다.


 우리는 콩알이를 찾아다니지 못했다. 그즈음 노랑이의 컨디션이 점점 안 좋아졌고, 두치가 다른 고양이들과 싸우다 물렸는지 배에 큰 상처를 입어서 두 번이나 수술을 받았다. 노랑이와 두치에 집중하느라 콩알이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도무지 우리 손을 타지 않으려 하니, 방법도 없었고.



배를 크게 다쳤던 두치. 아침저녁으로 약 먹이고 소독했던 때였다. 환묘복 배송 전에 임시로 양말을 입혀두었다.




 어느 날, 콩알이가 창고에 다시 나타났다. 몰라보게 큰 새끼 두 마리와 함께.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여덟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들과의 인연은 이별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떠나간 존재들, 그리고 제 옆을 지키고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놓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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