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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Jun 27. 2024

다정한 콩알이가 살아남는다

콩알이 이야기 3



 콩알이는 제법 고양이 티가 나는 새끼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처음에는 내가 뭘 찍은 건 줄 몰랐다. 밥 먹는 콩알이만 보느라. 갑자기 검은 게 지나갔다.



 콩알이는 창고로 들어와 밥과 물을 챙겨 먹었고 새끼들과 함께 수시로 드나들었다. 사람 없는 곳에서 살아보려 했지만, 마땅치 않았던 모양이었다. 여전히 사람은 경계해서, 창고에 자주 갈 수 없었다. 노랑이가 멀리 떠나고, 두치의 상처도 많이 나았을 즈음이어서 콩알이와 새끼들을 위해 비켜줄 수 있었다.




'루나'로 불릴 예정이었던 까만 고양이. 콩알이를 닮았던 턱시도 고양이는 사진이 없다. 둘은 지들 엄마를 닮아선지 콩알이 보다 더 간이 콩알만 했다.



 당시 이 두 마리에게 세일러문 고양이 '루나'와 '아르테미스', 또는 '검은거'와 '흰거'라는 이름을 붙여줄 생각이었으나, 며칠 지나지 않아 두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 조금 일찍 독립해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와 친해지고 싶지만 친해지기 싫었던 콩알이.


 콩알이는 혼자가 되었다.

 

 새끼들이 없어진 콩알이는 매우 지쳐 보였다. 그런데 콩알이의 마음은 조금 달라졌다. 콩알이는 새끼들이 모두 사라졌는데도 우리 땅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콩알이는 마침내, 우리 집 창고에 터를 잡기로 결심했다.




내가 앉았을 때는 가까이 오지 못했지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앉았던 의자 주변에 부비부비하던 콩알이.



 당시 창고는 노랑이가 떠난 뒤, 상처를 다 치료한 두치가 드나들며 지내고 있었다. 창고가 꽤 넓은데, 두치는 제 형제들이나 그 외 고양이들은 창고에 못 들어오게 하고 혼자 쓰고 있었다. 안심하고 드나들 영역지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런 두치가 콩알이를 허락했다. 두치는 창고에서 먹고 자는 콩알이를 그대로 내버려 두었고, 둘은 가끔 그루밍도 해주고 투닥거리며 우다다도 했다. 엄마는 밭에서 두치가 콩알이에게 쥐를 잡아다 주는 것도 목격했다. 두치는 쥐를 뜯어먹는 콩알이를 멀리서 지켜봐 주고 있었다고 한다.




사람 손 앞에서 걱정이 많았던 밀당천재 콩알이.

 


 이게 기회였다. 콩알이와 친해질 기회.


 매일 아침 두치의 상처를 소독하고 밥과 물, 화장실을 챙겨주는 시간에 콩알이를 위한 캔과 츄르를 조심스럽게 대령했다. 저녁에도 두치의 핑계를 대며 창고로 입성, 츄르와 함께 사냥놀이를 가르쳤다. 두치의 사냥놀이를 부러운 듯 쳐다보던 콩알이가 나의 낚싯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콩알이는 진짜 사냥은 알지만 사냥놀이는 처음이었기에, 매우 즐거워했다.



 

친해지기 초기의 낚시놀이. 놀이에 흠뻑 빠지지 못하고 소심한 모습이다.



 콩알이가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당시 주워온 유치원 의자에 앉아 두치를 허벅지에 눕혀놓고 두치가 좋아하는 곳곳을 만지며 혼을 빼놓은 뒤 옆구리에 소독약을 발라주고는 했다. 두치를 허벅지에 올려놓고 만지고 있으니, 콩알이가 의자 옆으로 다가와 몸을 쓱 비비고 지나갔다. 손 냄새를 맡을 수 있게 손가락만 살짝 보여주니 킁킁 냄새를 맡았다. 자신과 친하게 지내는 두치가 내 손길에 녹아가고 있으니, 가까이 가도 해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두치가 시작하고 콩알이가 마무리한 낚시놀이. 적응이 되어 열심히 놀았다.


 우리는 그렇게 조심스럽게 친해졌다. 어느 순간, 콩알이는 두치가 없어도 유치원 의자 근처로 와서 내 종아리에 몸을 비볐다.




내 손에 부비부비하는 콩알이.
다소 격렬한 부비부비와 뜯뜯. 청바지라 다행이었다.



 이제 우리는 가끔 뽀뽀도 한다. 콩알이가 내 허벅지를 딛고 몸을 쭉 펴면, 나는 콩알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콩알이는 내 입에 코를 댄다. 두치가 질투 나서 비슷하게 하려고 허벅지를 덮치기도 한다. 한참 둘을 쓰다듬다가 쓰다듬이 다 채워지면 사냥놀이를 한다. 창고가 더운 편이라 입을 벌리고 있는다 싶으면 그만두고 밥과 물, 화장실을 챙겨보는 게 내 아침 루틴이 되었다.


 콩알이는 아직도 내가 유치원 의자에서 일어나 자기를 만지려고 하면 피한다. 안기는커녕 두 손으로 붙잡지도 못하게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콩알이와 친해진 지 3개월이 지난 시점에 콩알이의 중성화 수술에 성공했다. 살짝 들어서 케이지에 넣고 차에 싣자, 콩알이는 동물병원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배신감에 울부짖었다.




 중성화를 끝낸 콩알이는 당연히 일주일 넘게 내 곁에 오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다시 유치원 의자 가까이 와서 슬쩍슬쩍 몸을 비볐다. 요즘에는 다시 중성화 이전처럼 손끝에 콧등이며 정수리, 등허리를 비비고 지나간다. 마지막으로 꼬리까지 싹 감싸고. 유치원 의자에서 일어나면? 국물도 없다. 얼른 도망간다.



콩알이의 귀여운 얼굴이 잘 나온 부비부비 영상. 콩알이의 머리를 쓰다듬을 때 남모르게 웃는 듯한 콩알이의 얼굴이 참 좋다.



 비록 유치원 의자가 있어야 하지만, 콩알이는 드디어 살아남기 위해 인간의 다정함을 수용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콩알이가 허용하는 만큼만 다정해지고, 콩알이는 안전거리를 지켜가며 내게 다정함을 건넨다. 그것이 우리 사이의 약속이다. 동물들과 나의 세계는 언어 없는 약속들의 결집이다.




초점이 나갔지만, 그래서 더 쓸쓸해 보이는 아기 콩알이의 뒷모습. 이제 서로에게 조금씩만 더 다정해지기로.



 고양이마저도 상실에서 사랑을 배웠다.   

 많은 것을 잃고서 얻은 지혜였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여덟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들과의 인연은 이별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떠나간 존재들, 그리고 제 옆을 지키고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놓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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