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은 동물들과 함께였어서 일까, 나는 반려동물들의 생일과 기일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 가족은 내가 어른이 되고도 꽤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서로의 생일을 식사와 용돈으로나마 챙기게 되었으므로 일종의 가풍일지도 모르겠다. 그때까지 많은 고양이들이 우리 곁을 떠났지만, 사람 가족의 생일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우리는 고양이, 강아지들의 생일과 기일까지는 도저히 챙길 수 없었다.
그랬지만, 눈이가 죽은 날은 정확하게 알고 있다.
2019년 8월 13일. 눈이가 죽었다.
눈이는 열한 살이었다. 내가 알기론 그랬다.
눈이는 처참한 모습으로 죽었다.
동물병원에 가자 바로 수술을 했고, 수술은 마쳤지만 그날 밤이 고비라고 했고, 결국 집으로 돌아오던 차에서 우당탕 소리가 날 정도로 뒤채다 꽥 소리를 내고 그대로 죽었다. 당시 운전 중이라 이동장 안의 눈이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것이 절명의 순간이었던 것 같다. 집에 도착해 이동장을 내렸을 때, 눈이는 그 이름의 기원인 커다랗고 노란 눈을 부릅뜬 채로 죽어있었다.
죽은 눈이를 싣고 집으로 돌아온 밤. 제대로 잠들지 못해 블로그에 글을 남겼다. 중학생 때부터 쓰던 개인 블로그였다. 나는 눈이라는 고양이의 삶을 짧게 적어두었고, 잠시 공개했다 비공개로 전환했다. 그 애의 삶은 내가 적어두지 않으면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눈이는 그런 고양이였다. 가장 키우기 힘들었고, 안쓰러웠고, 미안했던. 고양이들과 어울리는 법도 모르고 사람 손 타기는 더더욱 힘들어했던 눈이에게, 나는 목을 겨우 축일 정도로 미미한 사랑만 질금질금 주었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슬프지도 않아야 했는데. 눈이가 죽은 날 밤에는 이불에 누워 뒤척이는 일조차 아팠다.
수술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이동장을 열어도 나오지 못하던 눈이. 눈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2008년 겨울. 이모는 배가 불룩 나온 작은 고양이를 데려왔다.
당시 이모는 바닷가 인근 횟집을 돌아다니며 일을 도와주고 돈을 벌었다. 이모는 횟집을 돌아다니며 생선 찌꺼기를 주워 먹던 고양이를 발견했는데, 곧 새끼를 낳을 것처럼 배가 불러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에 데려왔다고 했다.
대체 그 안타까운 마음의 종착역은 왜 늘 우리 집인지. 골이 났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밤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나서야 집에 오는 고등학생에게 집에서 생긴 일은 풍문처럼 멀었다가 갑작스레 다가오는 현실이었다.
배가 땅에 질질 끌릴 정도로 부른 새끼 밴 고양이를 옥상의 다른 고양이들과 함께 둘 수는 없어서, 결국 내 방으로 데려오게 되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면서 노랑이마저도 옥상으로 올라간 뒤였다.
이모가 데려온 고양이에게는 새끼가 몇 마리 들었을지 모르겠다 싶은 불룩한 배 말고도 유난한 특징이 하나 더 있었다. 고양이는 대부분 눈이 큰데, 얘는 고양이 치고도 눈이 매우 컸다.
우리는 그 애를 '눈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눈이는 밤새 내 방을 샅샅이 뒤지고 풀쩍풀쩍 뛰어다녔다.
우리는 눈이가 새끼를 낳을 날만 기다렸다. 일주일 안에는 낳을 것 같은 배 크기였다. 그런데 이틀쯤 지났을까, 나는 눈이의 엉덩이에서 있어서는 안 될 무언가를 발견했다.
눈이의 엉덩이에는 땅콩이 달려있었다.
눈이는 수컷이었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여덟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들과의 인연은 이별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떠나간 존재들, 그리고 제 옆을 지키고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놓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