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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May 09. 2024

맞짱을 뜰 땐 최선을 다한다

그게 고양이일지라도!  까미 이야기 



 까미는 학원생이 데려온 업둥이였다. 학원 근처 초등학교 앞에 새끼였던 까미가 담긴 상자가 버려져 있었고, 학원생은 원장님이 고양이를 키운다더라, 하는 말을 기억해내 그 상자를 들고 우리 집에 왔다. 내가 중학생 때의 일이다. 


 그렇게 까미는 우리 집에 살게 되었다. 정말 조그만 새끼 고양이였던, 쭙쭙이를 너무 좋아해서 무릎에 앉혀두면 내 옷을 다 적실 정도로 빨아댔던 까미. 너무 어렸을 때 엄마와 떨어진 듯했던 까미는 우리 집에서 순조롭게,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런데, 까미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까미는 나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싸우려 드는 호랑이 같은 야옹이, 일명 '호냥이'였다. 




옥상 시절의 까미. 호냥이 청소년기를 거쳐 무던한 골골냥이가 되었을 시점. 저 때도 분명 골골송을 불렀을 것이다.




 이미 함께 살고 있던 일등이와 올백이, 꼴매와 우리 가족은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었다. 까미도 쭙쭙이를 좀 심하게 할 뿐, 큰 문제없이 순둥한 기존 고양이들 대열에 낄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까미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머리를 간질어주고 털을 쓰다듬어주기는커녕 손만 대도 솜방망이가 날아왔고 나와 멀찍이 거리를 두며 몸을 아치로 만들고 옆걸음을 했다. 멀리 떨어져도 쫓아와서 종아리나 발 뒤꿈치를 물고 도망갔다. 일등이와 올백이, 꼴매가 새끼일 때 하는 손장난과는 차원이 달랐다. 조금만 더 크면 정말 피를 볼 것 같았다.  


 "길고양이 새끼들은 다 이래?"

 손등과 발목, 종아리까지 성한 데가 없었던 당시의 나는 대단한 오해를 해버리고 말았다. 까미는 내 첫 스트릿 출신 고양이었으니, 오해는 제법 단단했다. 


 나중에는 너무 약이 오른 나머지 까미의 솜방망이를 피해 가며 나도 툭툭 치고, 물려고 하면 손을 빼고 도망가면서 응전했다. 까미는 내 침대와 창틀, 책꽂이와 책상을 뛰어다니며 나를 공격했고, 동공을 크게 연 채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커갈수록 진한 노란색으로 빛나던 그 홍채가 얼마나 밉던지. 


 

옥상에 내리쬐는 햇볕에 녹아내린 까미. 스스로 몸을 뒤집어가며 양면을 고르게 굽고 있다.




 고양이에게도 최선을 다하던 나와 매콤한 청소년 고양이 까미의 한판승부, 예상 외로 싱겁게 끝이 났다. 


 일등이와 올백이, 꼴매가 탈출해 결국 올백이를 영영 잃어버린 우리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까미의 중성화를 서둘렀다. 까미는 스트릿 출신이라 탈출 따위 생각도 않았는지 집에 잘 붙어있었는데도, 우리는 일단 까미부터 병원에 보내 까만 땅콩을 서둘러 수확해 버렸다. 




 땅콩을 빼앗긴 까미는 매우 온순해졌다. 병원에서 수술 상담을 받을 때 사람을 자꾸 공격한다고 했더니, 중성화를 하면 나아질 거라고 하긴 했었다. 까미의 변화는 정말 드라마틱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까미의 얼굴과 등을 쓰다듬을 수 있었고, 까미도 그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순했던 올백이 이후 처음 겪은 수컷 고양이 까미. 그는 땅콩을 잃은 뒤 온순한 고양이가 되어 순조롭게 확대되었다. 




 등과 얼굴을 덮은 까만 털과 분홍분홍한 배를 덮은 하얀 털이 매력적이었던 까미는 중성화 수술 이후로 몰라볼 정도로 순둥순둥해진 성격을 뽐내며 우리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냈다. 너무 야생성이 짙어서 다른 고양이들과 함께 살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을 뒤로하고, 중성화 이후 여러 고양이들과 어울리며 살아갔던 까미. 까미는 특히 일등이와 잘 지냈다.  



일등이와 화단을 돌아다니며 흙을 밟는 까미



 시골로 이사 온 뒤 진드기 탓에 이개혈종이 생겨 두 차례 수술을 받은 것을 제외하고, 까미는 매우 건강하게 지냈다. 우리와 함께 산 동물들은 대부분 잔병치레를 많이 하지 않았는데, 까미도 그랬다. 


 까미는 노랑이가 고양이별로 떠나기 두세 달 전에 갑자기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까미는 열아홉 살이었다. 아마 우리집 고양이들 중 가장 장수한 것 같은 까미. 까미는, 정말 오래도록 우리 곁을 지켰다. 


 까미는 일등이가 떠난 뒤 노랑이와 깊이 의지하며 지냈다. 까미가 떠난 뒤 노랑이는 빠르게 쇠약해졌다. 



식사 후 열심히 그루밍 중인 까미 할아버지. 대략 열다섯 살쯤 됐을 때의 사진이다. 고양이들은 시골에서도 아빠가 지어준 집에서 여생을 보냈다.
그루밍을 끝내고 낮잠에 든 까미. 아래층에는 일등이가 밥을 먹고 있다. 카메라 가까이 온 건 꼴매의 새끼 중 가장 오래 우리와 함께했던 산이.




 까미와의 이야기가 짧은 건, 처음에는 가장 함께하기 힘들었던 까미가 예상과 달리 무던하고 순순하게 우리와 오랜 시간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까미는 고양이별로 떠날 때도 오래 앓지 않았다. 금방 멀리 떠나버렸다. 


 겹겹의 우연으로 우리에게 닿았던 까미. 그가 보낸 19년이 행복했기를 바라며.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여덟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들과의 인연은 이별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떠나간 존재들, 그리고 제 옆을 지키고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놓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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