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이와 텔레토비들 5
다시 돌아오게 된 옛 동네에서, 고양이들의 옥상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부모님은 고양이들이 옥상 난간에 올라 돌아다니지 않도록 옥상 난간 안쪽에 흙을 채워 화단을 만들고 작물과 꽃을 키웠다. 고양이들은 작물과 덩굴식물 사이를 오가며 자연을 느꼈다.
옥상에는 옥탑이 하나 더 있어서, 옥탑과 옥탑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고양이 집을 지었다. 나중에는 옥상에 높은 평상 같은, 시골의 원두막 같은 구조물을 세우기도 했는데, 그 아래에도 고양이집을 지었다. 고양이들은 옥상에서도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살았다.
이곳까지 왔을 때, 우리 집에는 고양이만 여덟 마리 있었다. 일등이와 까미, 일등이가 낳은 새끼들인 보라돌이, 뚜비, 나나, 뽀, 꼴매와 꼴매의 새끼 산이. 여기에 이모가 은심이를 데려왔고, 내가 노랑이를 주워왔고, 이모가 또 갈색 푸들이자 우리 집 푸들들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초코를 데려왔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시점에 우리 집에는 여덟 마리 고양이와 두 마리 개가 있었다.
맨 처음 옥상에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니 그전부터 고양이 무리의 리더는 늘 일등이였다. 일등이는 아기들을 낳고 중성화를 한 뒤에도 3킬로대 몸무게를 벗어나지 않는 슬림한 고양이였는데, 몸 관리를 아주 깔끔하게 하는 꼬장꼬장한 중년 여성 같았다. 일등이는 나이가 들어서도 자기 옆에 오는 고양이들을 모두 살뜰히 핥아주었고, 자기 새끼가 아닌 까미나 꼴매, 꼴매의 새끼인 산이, 노랑이에게도 그랬다.
모든 고양이들은 일등이를 존중했다. 일등이에게는 심한 장난을 치지도 않았고, 함부로 하악질을 하지도, 지나치게 비비거나 치대지도 않았다. 일등이는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도(낼 수도 없었지만), 도도한 모습으로 옥상이라는 작은 세계를 휘어잡았다. 아파서 실내생활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다.
실내생활을 할 때는 화장실이 지저분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조용히 새로 한 빨래에 소변을 보는 것으로 불만을 표시하고는 했다. 마음대로 소리낼 수 없는 일등이만의 의견 전달 방식이었다.
'야옹'하지 못하는 것은 일등이의 삶에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골로 이사 온 뒤에도, 노묘가 된 일등이는 그 시절의 태도를 잃지 않았다. '에티튜드'라고 말해야만 할 것 같은 꼿꼿하고 점잖은 태도. 놀라운 적응력과 뛰어난 신체관리 능력으로 일등이는 새끼들인 보라돌이, 뚜비, 나나, 뽀 보다 오래, 훨씬 오래 살았다.
보라돌이는 푸짐한 통통냥이로, 자기 형제들보다 까미와 훨씬 친했다. 일등이의 새끼들 중에서 사람과 가장 친한 고양이였다. 출렁거리는 원시주머니를 바닥에 철퍼덕 늘어트리고 누워 쉬기를 좋아했다.
보석 호박을 떠올리게 하는 매력적인 노란 눈의 뚜비. 엄마인 일등이처럼 중성화를 한 뒤에도 날렵한 몸매를 자랑하는 고양이였다. 일등이 배에 새끼가 일곱 마리나 있었기에 꼬리가 길게 태어난 새끼가 많지 않았는데, 뚜비는 길고 곧은 하얀 꼬리를 가지고 태어났다. 엄마인 일등이와 누군지 모를 아빠의 장점만 뻬닮은, 매우 잘생긴 고양이였다.
나나와 뽀는 올백이를 떠올리게 하는 파란 눈의 암컷냥이였다. 나나는 흰색이 좀 더 섞인 구름 많은 하늘 같은 눈을 지녔고, 뽀는 맑은 강물처럼 청초한 파란 눈의 고양이였다. 나나는 다른 형제들보다 조금 더 작았는데, 뽀는 그런 나나보다도 더 작았다. 둘은 늘 붙어 다녔고, 옥상에 나와 화단의 흙을 밟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보다 엄마와 아빠가 지어준 고양이집 내부 캣타워에서 같이 놀기를 좋아했다. 나나가 뽀 보다 소심했는데, 사실 둘 다 소심한 축에 속하는 고양이였다.
보라돌이는 신장 문제로, 뚜비는 폐 문제로, 나나와 뽀는 장 문제로 일등이보다 훨씬 빨리 고양이별에 갔다. 나나와 뽀가 먼저, 뚜비가 그다음에 죽었다. 보라돌이는 그들보다 좀 더 오래 살아서 내가 대학을 다닐 때 죽었다. 유럽 여행 중 방문한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보라돌이가 너무 많이 아프지 않기를 기도했는데, 그때 즈음 보라돌이는 고양이별로 떠나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세상에 없었다.
모두 옥상 시절에 일어난 일이었다. 고양이들이 옥상을 벗어나 시골로 간 것은 2016년 이후. 일등이는 새끼들을 모두 고양이별로 보낸 뒤로도 5년은 더 넘게 살다가 고양이 별로 떠났다. 일등이는 새끼들을 모두 보낸 뒤에도, 죽는 날까지 자신과 함께 살았던 산이와 까미와 노랑이를 핥아주었다.
나는 일등이를 보면서 엄마를 생각했다. 자기 형제들은 물론 그 자식들까지 모두 걱정하며 하나하나 신경 쓰는 우리 엄마. 나는 엄마가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만 같아서, 또 정작 우리 가족에게는 그만큼 더 신경 쓰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아서 그러지 않았으면 했지만 엄마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 마음을 아직도 절반밖에는 이해하지 못한다.
어쩌면 일등이는 전부 이해했을지도 모르겠다.
일등이의 살뜰한 모성은 함께 사는 고양이들 모두에게 미쳤다. 모두가 일등이를 존중했고, 일등이는 휘하의 고양이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을 받았다. 오히려 우리가 일등이를 더 예쁘게 반려해주지 못해서 미안할 뿐이었다. 일등이가 다른 고양이들에게 밀리는 느낌이 들자 일등이를 다른 곳으로 옮겨주었는데, 그때서야 오직 일등이만 신경 써줄 수 었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일등이는 고양이별로 먼 여행을 떠났다.
일등이는 우리의 그런 마음조차도 시답지 않게 여길지도 모른다. 하나의 존재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냈으니까. 일등이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여길지도 모르겠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여덟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들과의 인연은 이별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떠나간 존재들, 그리고 제 옆을 지키고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놓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