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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May 02. 2024

동물을 싫어하는 가족이 있다면?

반려동물을 입양하지 마세요!


 오늘은 동물이 아니라, 아빠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대략 2005년부터 2024년 지금까지, 열세 마리 고양이와 일곱 마리 강아지들을 키웠다. 지금 내 곁에는 다섯 마리 강아지와 키우는 것도 아니고 안 키우는 것도 아닌, 밭에 서식 중이라 이른바 밭냥이라 부르는 고양이 다섯 머리가 있다. 이는 나의 마음과 엄마의 행동력, 지시에 순응하는 아빠의 컬래버로 이뤄진 기록이다.

 

 요약하자면, 아빠는 집에서 동물을 기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기까지 함께 왔다. 

 이것은 꽤나,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빠 무릎에 앉아서 함께 셀카를 찍은 네치, 뿌꾸, 세찌.




 숏츠 영상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유튜브 숏츠에는 '강아지는 싫다던 아빠가~', '고양이라면 기겁하던 엄마가~'로 시작하는 영상이 많다. '처음 집에 동물을 데려갔더니 정말 싫어하던 가족이, 동물의 귀여움에 녹아 나중에는 동물을 끼고 산다, 혹은 나보다 동물을 더 좋아한다.' 요약하자면 그런 내용이다. 

 이런 숏츠를 만나면, 나는 이런 영상을 보고 '나도 집에 강아지/고양이를 데려가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덜컥 겁이 난다. 그리고 그 영상들에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의 댓글이 이미 많이 달려있다.


 유튜브 영상은 절대 현실과 같지 않다. 똥도 찍어먹어 봐야 아는 사람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나는 싸워도 그 집 가족이지만, 내가 데려온 동물은 그렇지 않다. 그게 문제다.




 아빠도 처음 일등이와 올백이, 두 마리의 고양이를 데려왔을 때까지는 별다르게 동물을 싫어하거나 하지 않았다. 꼴매와 까미도 마찬가지였다. 고양이들은 새끼 시절 어미 고양이가 잘 가르치기만 하면 배변도 자기들 화장실에서 잘 처리하고, 물건만 높은 곳에 올려두지 않으면 저지레도 많이 하지 않으니까.


 돌이켜보면 우리는 이때 아빠와 대화하고, 아빠의 의견을 잘 듣고, 알아주었어야 했다. 일등이와 올백이, 꼴매를 데려오면서 우리는 아빠의 의사를 물어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잘못된 일이었다.


 우리가 한 번 이사를 하게 되고, 이사한 동네에서 고양이들이 새끼를 낳게 되며 고양이의 수가 두 배 넘게 늘었다. 다시 기존에 살던 동네로 이사와 동물들을 옥상에서 키우게 되어 한 짐 덜었다 싶었을 때, 이모가 집에 큰 개인 은심이와 갈색 푸들 초코를 데리고 왔다. 


 이 시점에서, '명시적 동의'없이 시작된 반려생활의 갈등이 터져 나왔다.

 



흰돌이의 곧 움직일 것 같은 집. 땅굴파기의 명수 흰돌이가 아빠가 만들어준 공간을 리모델링했다. 옥상 시절 반려동물로 갈등하던 우리집 상황처럼 위태롭게 느껴진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일은, 동물의 수가 많아지거나 동물의 나이가 들수록 일이 두 배가 아니라 제곱으로 많아진다. 게다가 이모가 개를 두 마리 데려오면서, 고양이와 개가 아무런 합사 준비 없이 한 공간 안에 있게 되었고 우리는 테트리스 하듯이 동물들을 곳곳에 배치해야 했다. 옥상에는 개와 고양이들의 구역이 나뉘었고, 종이 다르고 수가 많아진 동물들 사이의 갈등도 중재해야 했다. 초여름부터 뜨거워지는 옥상에 시시각각 물을 뿌려주기도 해야 했다.


 동물이 늘 때마다 엄마는 새로운 구조물을 구상했고 아빠는 만들었고 나는 도왔다. 이는 동물을 좋아하는 엄마와 나에게도 스트레스였지만, 아빠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그 스트레스는 동물들에게도 전달되었다. 배변훈련이 잘 되지 않았던 갈색 푸들 초코는 아빠에게 많이 혼이 났고, 자주 방에 갇혀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동물들의 공간 개선을 두고 늘 갈등하는 와중에도 이모는 고양이 한 마리와 개 한 마리를 더 데려왔다. 우리는 이모의 행동이 너무나도 싫었지만 그렇다고 동물들을 다시 갖다 버릴 수는 없었다. 이모가 데려온 두 마리는 날 때부터 버려졌거나, 어떠한 도움도 받을 가능성 없는 존재들이었다.



 나는 대학 졸업 시점까지 이와 같은 사정으로 인해 굉장히 괴로워했다.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방학 때만 집에 돌아왔던 나에게 시시각각 달라지던 집안 사정, 너무나도 많이 늘어난 동물들을 버거워하는 가족들의 상황이 더욱 힘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에 무력감이 심했다.


 그즈음 나는 개농장을 운영하던 남자가 농장에 남은 늙은 개들을 모두 죽이고 자살한 뒤 일어난 일을 그린 단편 소설을 썼다. 그의 아들이 개농장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죽은 개들의 사체를 치우는, 그런 이야기였다. 여러모로 엉망진창이었던 그 소설을 통해 당시의 내가 받고 있었던 스트레스가 매우 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빠의 동물 집 만들기는 옥상에서 고양이를 키우던 시절부터 시골로 이사 온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5년이 넘는 긴 시간이었다. 아빠는 요즘에도 동물들의 집을 만든다. 밭냥이들의 집이다.


 15년. 반려동물 한 마리의 평생이다. 그 긴긴 시간이 지난 뒤에 아빠는 동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예쁜이의 새끼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아빠 무릎에서 놀고, 아빠와 산을 돌아다니며 산책을 한다. 아주 밭게 잡아도 1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서야, 아빠는 동물들을 받아들였다. 자유 영혼인 네 고양이는 매우 천천히 아빠를 사로잡았다. 아빠는 사실 고양이보다 훨씬 더 섬세하게 다가서야 하는 존재였다.




타이어와 자투리천을 이용한 고양이집. 두치, 세치, 네치, 뿌꾸, 콩알이가 한 바구니에 담겨있다.



코스트코 출신 박스집. 우리 엄마의 뜨개 깔개와 내가 옛날에 쓰던 이불이 더해져 고양이집이 되었다. 애용 중인 세치와 네치.



타이어로 만든 다육이 화분이지만 뿌꾸가 집으로 쓰고 있다.




 당신이 동의 없이 데려온 동물을 다른 가족들이 받아들이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 동물의 평생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이 가족들과 갈등하는 동안에도 당신의 반려동물은 빠르게 늙어간다. 최악의 상황은, 당신이 결국 어떠한 허락도 받지 못하고 스스로 그 동물을 키울 여건도 되지 않아서 어찌해야 하나 전전긍긍하게 되는 경우다. 우리 집이 그렇게 떠안은 동물이 네 마리 이상이다.


 주변에 우리처럼 데리고 온 동물 다 받아주는 호구 같은 집조차 없다면, 당신이 귀엽다고 데려온 그 동물은 보호소 또는 길거리에서 숨을 거두게 될지도 모른다. 가족들과 어떤 상의도 없이 동물을 집에 데리고 왔을 때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아빠가 고양이들과 함께 하는 밭일을 기꺼이 즐거워하고, 강아지들을 그리 싫어하지 않는 것을 나는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와 동시에 나는 다섯 마리의 개들과 다섯 마리의 밭냥이들을 엄마와 아빠, 두 사람이 모두 돌볼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나에게는 동물들이 우리 곁을 떠날 때까지 그들과 함께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요즘 들어 더 자주 자각하고 있다.


 이 또한 많은 사람들이 놓치는 지점이다. 예전에 우리 이모가 그랬고, 우리도 그랬다. 반려동물도 늙고 병든다. 이들은 처음 보았던 그 귀엽고 예쁘기만 한 새끼의 모습으로 15년에서 20년을 살지는 않는다. 20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매우 긴 시간이다.


 반려동물을 집에 데려오기에 앞서, 얼마나 깊이 생각을 했던 그 생각이 20년의 세월보다 깊을 수는 없다.




 동물과 함께하는 삶은 분명 아름답다. 그러나 그들의 예쁘고 귀여운 모습이 그들로 인한 갈등까지도 모두 해소시켜 줄 거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사람 간의 갈등은 사람인 보호자가 직접 해결해야 한다.


 반려동물의 수명은 너무도 짧지만, 동물을 싫어하는 가족들이 참아내기에는 너무도 긴 시간이다.

 꼭! 가족들의 의향을 묻고 동의를 받고 동물을 데려오자. 그렇게 데려와도,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을 무수히 겪게 되는 것이 반려생활이니까.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여덟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들과의 인연은 이별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떠나간 존재들, 그리고 제 옆을 지키고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놓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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