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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Apr 18. 2024

지붕을 달리는 고양이

일등이와 텔레토비 4

 

 일등이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엄마가 되었다. 

 

 중성화 수술비와 암컷의 개복수술이 부담이 돼 수컷인 올백이와 까미만 중성화를 시킨 것이 오판이었다. 일등이의 배는 상상 이상으로 크게 불러왔고, 동물병원에서는 3킬로가 조금 넘는 일등이의 작은 뱃속에 새끼가 일곱 마리나 들어있다고 했다. 우리는 일곱 마리 새끼 고양이를 대체 어떻게 키워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일등이의 두 번째 임신과 출산은 우리에게 고양이의 비밀을 한껏 알려주었다. 일등이는 번식을 경험한 적이 있지만 번식처에서 만난 수컷 고양이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많았는지 한 마리만 임신했고 그마저도 일주일 만에 죽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새끼를 일곱 마리나 가졌다. 그리고 태어난 새끼들은 털 색깔이 제각각에 발달 상황도 제각각이었다. 


 고양이는 교미배란 동물이다. 교미행위가 있을 때 배란이 된다. 길바닥으로 탈출한 일등이는 많은 수컷들과 교미를 했고, 수정된 시기가 제각각인 새끼들이 같은 배에서 자라고 있었다. 이런 경우 늦게 수정된 새끼들은 발달이 느릴 수밖에 없고, 엄마 고양이로부터의 양분도 상대적으로 덜 받게 된다고 한다. 그 결과, 일곱 마리 중 세 마리가 태어나자마자 고양이별로 떠났다. 우리 곁에는 고등어태비 하나와 흰 고양이 셋만 남았다. 

 

 네 마리 고양이에게는 네 마리 분의 이름을 주면 좋겠다 싶어, 나는 그들에게 텔레토비의 이름을 하나씩 따다 붙였다. 고등어태비 첫째는 보라돌이, 둘째는 뚜비, 셋째는 나나, 막내는 뽀. 보라돌이와 뚜비는 수컷이었고 나나와 뽀는 암컷이었다. 이때부터 우리 집에서는 한 배에서 나온 새끼들에게는 이름을 세트로 붙였다. 산이 구름이 바다, 알파 파이, 하나 두나 세나 막내, 한치 두치 세치 네치 뿌꾸. 이렇게. 




 보라돌이가 태어날 때부터 가장 컸고, 빨리 자랐다. 뚜비, 나나, 뽀는 엄마를 닮아 털이 하얬지만 누군지 모를 아빠를 닮아 단모였다. 뚜비는 일등이보다 짙은 호박색에 가까운 눈을, 나나와 뽀는 파란 눈을 가졌다. 나나는 조금 더 연한 파랑, 뽀는 짙은 파랑이었다. 오드아이는 없었지만, 나는 그들의 눈을 보며 올백이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일등이는 죽은 새끼를 계속해서 핥아주었던 그때처럼, 온 힘과 온 정성을 다해 새끼들을 키웠다. 텔레토비들은 아픈 데 없이 무럭무럭 커나갔다. 일등이는 새끼 고양이들을 따끔하게 가르치는 편이었는데, 그래서인지 화장실도 잘 가렸고 사람에게도 순했다. 꼴매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일등이의 훈육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 꼴매는 엄마로서의 재능은 없는, 사람만 좋아하는 고양이였다. 




 우리 집 고양이들은 빈 강의실에서 함께 모여 살았고, 학원 문을 열지 않는 주말에는 자동문을 굳게 걸어 잠근 뒤 강의실 문을 열어 홀에서도 돌아다닐 수 있도록 했다. 다행히 꼴매와 까미는 일등이의 새끼들을 무던하게 받아주었고, 성묘가 된 일등이의 새끼들도 후일 태어난 꼴매의 새끼들을 너그럽게 받아주었다. 




 이들은 모두 성묘가 된 뒤 한 번 더 우르르 탈출했다. 어느 여름, 고양이방의 구멍 뚫린 방충망을 통해서였다. 당시 우리 학원은 아파트 상가 2층에 들어와 있었는데, 2층이 제일 꼭대기라 창문을 열면 지붕과 바로 연결되는 구조였다. 나는 창밖으로 막 빠져 가나는 고양이 꼬리를 보고 바로 튀어나갔다. 창문으로 나가 상가 지붕 위, 실외기 주변을 밟고 돌아다니며 고양이들을 잡아넣었다. 꼬리며 다리며 손에 닿는 대로 붙잡아 방으로 집어넣었다. 


 정말 한 마리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이곳에서 산 지 3년 정도 되었을까, 여기서는 생각만큼 학원이 잘 되지 않았다. 기존에 살던 동네의 1호 학원은 그래도 괜찮아서, 우리 가족은 이 학원을 접고 기존 동네의 건물을 하나 매입해 학원을 새 단장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서 시골에 사시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도 함께 살게 되었다. 

 

 바로 그때부터, 고양이들은 모두 옥상에서 살게 되었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여덟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들과의 인연은 이별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떠나간 존재들, 그리고 제 옆을 지키고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놓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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