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소 Apr 11. 2024

대탈출, 그리고 귀소본능 따위

일등이와 올백이 이야기 3


 네 마리 고양이들과의 삶에 익숙해질 즈음 우리는 이사를 하게 되었다. 엄마는 다른 동네에 학원을 하나 더 열 생각이었고, 나는 그 근처의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그 학원 강의실 하나를 비워 방으로 꾸며 살기로 했다. 나는 이 공간을 기점으로 꽤 오랜 시간, 학원 강의실 중 하나를 방으로 꾸며 살게 되었다.  


 고양이와 이사는 상극 중 상극이다. 그러나 당시의 우리는 이사한 집에 적응하지 못한 고양이가 훌러덩 집을 나가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우리 가족은 고양이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결국 이사 간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 고양이들이 대거 탈출해 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스트릿 출신 까미만 빼고.


 가족들과 주변을 돌아다니며 고양이들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깜깜해진 새 동네는 고양이들에게는 물론 우리에게도 너무나 낯설었다. 결국 그날 밤엔 고양이들을 찾지 못했다.




 그날, 우리는 올백이를 영영 잃어버렸다. 가족들은 올백이는 예쁘고 사람을 좋아해서 누군가 데려가 키울 수도 있다고 나를 달랬다. 그러나 한두 해가 지난 뒤, 나는 털이 길고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겁 많은 고양이가 길에서 생존할 확률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올백이를 더 찾아다니지 못한 것을, 나는 아주 오랜 시간 후회했다.


 그땐 일등이와 꼴매도 영영 보지 못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둘은 우리 학원 자동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탈출한 지 일주일은 넘었고 한 달은 채 되지 않았던 어느 날, 그들은 각각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일등이와 꼴매를 맞았다. 꼴매가 일등이보다 먼저 들어왔는지, 일등이가 꼴매보다 먼저 들어왔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어찌 되었건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그들을 기다리며 창문과 모기장, 학원 자동문까지 다 단속해 두었으니 이제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까미도 중성화를 마친 뒤였다.




 꼴매와 일등이는 돌아왔는데, 올백이는 왜 돌아오지 못했을까? 그것이 궁금했던 나는 고양이의 귀소본능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귀소본능'이란 낯선 곳에서도 집으로 되돌아오려는 본능이라고 한다. 수컷 고양이는 암컷 고양이에 비해 귀소본능이 적다고 했다. 귀소본능, 귀소본능. 나는 귀소본능과 그 뜻을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고 다녔다.


 올백이는 귀가 잘 들리지 않으니, 낯선 동네에서 쉽게 집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올백이의 귀소본능만을 문제 삼았다. 올백이는 중성화 수술도 한 고양이였는데.  




 올백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 건, 현재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할머니 강아지 초코가 푸들 형제인 알파와 파이를 낳은 뒤였다.


 알파와 파이는 장애가 있는 상태로 태어났다. 알파는 한쪽 귀에 문제가 있는지 산책을 하다가도 한쪽으로 빙글빙글 돌고, 가끔 불러도 잘 듣지 못하며 방향을 착각하기도 한다. 파이는 날 때부터 한쪽 눈이 기형이었다. 누가 봐도 눈의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이 분명한. 파이는 익숙한 집안에서도 기둥이나 벽에 곧잘 부딪쳤다. 알파는 그런 파이의 곁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 파이가 강아지별로 떠난 날 까지도 그랬다고 한다.


 나는 매우 오랜 시간, 올백이의 탈출을 너무나도 피상적으로 생각했다. 귀소본능 따위에 의지해서.




 암컷 고양이 일등이와 꼴매가 우리 집에 돌아온 것은 수컷에게는 적지만 암컷에게는 많다는, 그놈의 귀소본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 있었다. 둘은 아직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일등이에게는 귀소본능 이상의 본능이 작용했다.


 일등이의 배가 점점 불러왔다. 일등이는 새끼를 낳을 곳을 찾아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2G 폰에서 스마트폰 세계로 넘어오면서, 나는 옥상 시절과 그 이전에 찍은 고양이들의 사진을 많이 잃어버렸다. 그중에서도 나는 올백이의 얼굴이 크게 찍힌 사진을 아직도 기억하는데, 참으로 귀엽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얼굴 옆으로 길게 난 보드란 흰 털과 황금빛과 푸른빛의 두 눈. 분홍빛 코. 그 모습을 마지막까지 지켜보지 못해서, 나는 아직도 애가 쓰리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세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귀여운 존재들과의 인연은 이별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떠나간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보려고 합니다.

이전 12화 아니어도 좋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