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이와 올백이 이야기 2
언젠가는 일등이에게서 야옹 소리가 나올 줄 알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등이는 대략 3, 4년 전쯤 무지개다리를 건넜는데, 그때까지도 듣지 못했다. 일등이는 언제나 위협하듯 '하악'소리만 냈다. 싫을 때도 좋을 때도 그뿐이었다. 이는 처음 고양이를 키운 어린 나에게 별 다른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나는 '야옹'하고 우는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었으니까.
일등이가 우리 집에 적응하려 할 때 즈음, 엄마는 일등이가 외로울 것 같다며 일등이의 형제묘를 한 마리 더 데려오자고 했다. 일등이보다 넙데데한 얼굴에 왼 눈이 파란 오드아이였다. 아무래도 페르시안이 섞인 것 같은 이 친구의 이름은 뭐였을 것 같은지?
엄마의 두 번째 조건, '올백'이었다.
그렇게 우리 집 첫 반려동물의 이름은 '일등'이와 '올백'이가 되었다. 이들의 이름이 정해지는 과정을 보면서, 나는 또 반려동물을 키운다면 기필코 예쁜 이름을 지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얀 고양이 두 마리가 우리 가족과 함께 살게 되었다. 나는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 가기 전, 남겨진 30분에서 1시간 정도의 시간을 거실 소파에 널브러진 두 마리 고양이와 함께 보냈다. 일등이와 올백이는 사람의 음식을 탐내는 일이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일등이는 내가 먹던 옛날과자의 팥앙금을 한 번 맛봤다. 올백이는 홍시. 그 두 가지를 한 입씩 먹어본 것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둘은 어떤 사람 음식도 먹지 않았다.
일등이에 비해 살짝 반응이 느린 편이었던 올백이는 한쪽 귀로는 소리를 잘 듣지 못했다. 오드아이는 종종 그렇다고, 수의사가 말했던 기억이 난다. 울지 못하는 고양이 일등이와 한쪽 귀가 안 들리는 고양이 올백이는 근친교배를 통해 태어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혹시 몰라 올백이가 한 살이 되기 전 중성화 수술을 했다. 중성화 수술을 받고 온 올백이는 동공이 커질 대로 커져 밤새 우앙 우앙 울어댔다.
평화로운 날들 속에서, 가족들은 일등이의 새끼 고양이를 보고 싶어 했다.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 가족들은 암컷인 동물이라면 살면서 새끼를 한 번은 낳아보는 것이 좋다는 사고를 갖고 있다. 이 사고방식은 강아지들이 생긴 뒤부터는 그 크기가 서서히 줄고, 시골로 이사 온 뒤 예쁜이와 그의 새끼들 한치, 두치, 세치, 네치, 뿌꾸를 만나고 젖동냥 온 콩알이까지도 새끼를 보게 되자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우리는 펫샵을 통해 일등이를 페르시안 고양이와 교배시켰다. 첫 번째 교배는 실패했고, 두 번째 교배를 통해 낳은 새끼는 일주일 만에 죽었다. 일등이는 새끼를 지극정성으로 돌봤지만, 새끼는 너무 빨리 고양이별에 가버렸다. 일등이는 이미 죽은 새끼를 정성껏 핥아주었다. 엄마는 일등이와 함께 슬퍼했다. 우리는 더 이상 일등이를 교배 보내지 않기로 했다.
일등이와 교배했던 페르시안 고양이가 예뻐 보였는지, 엄마는 페르시안 고양이를 한 마리 더 들이자고 했다. 일등이와 올백이가 매우 얌전해서, 한 마리 더 키워도 괜찮을 것 같았다. 교차로를 통해 전화를 걸었더니 어떤 아저씨가 회색 페르시안 새끼 네댓 마리를 데리고 학원으로 왔다. 나는 그중 나를 피해 전속력으로 도망치던 고양이를 골랐다. 대부분 맥없어 보이던 새끼들 중 그나마 가장 건강해 보여서였다.
그 애가 '꼴매'다. '꼴이 매우 예쁘다'는 뜻인데, 당연히 내가 붙인 이름은 아니다. 적절한 이름을 미리 생각해뒀어야 했는데. 꼴매 이후로 나는 고양이며 강아지 이름을 고심해 결정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투어스의 노래 제목처럼.
고양이는 여기서 끝이어야 했는데, 묘연은 또 한 번 우리를 찾아왔다. 우리 집에서 고양이를 세 마리나 키운다는 소식이 학원생들에게 퍼져, 어떤 원생이 초등학교 앞에 상자 째 버려진 새끼고양이를 굳이 우리 학원으로 주워온 것이다. 까만 털에 배가 하얀, 턱시도냥이는 외관에 따라 '까미'라 불리게 되었다.
야옹하지 못해도, 귀가 잘 들리지 않아도 나는 일등이와 올백이가 좋았다. 물론 다른 고양이들 없이 둘만 잘 키웠다면 그들에게 훨씬 좋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고양이라는 존재에 대해 너무 몰랐고, 반려동물을 '끝까지' 키운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 나를 키우고 있던 엄마도 아빠도, 그러한 형태의 사랑과 책임에 대해서는 특별히 아는 바가 없었다.
엄마는 나를 키우듯 그들을 키워나가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덕분에 나는 그들에게 그저 사랑만 주면 되었다. 나는 당시 그들을 키우지 않았다. 그들은 '키운'것은 엄마였고, 나는 그저 '사랑'했을 뿐이다. 어루만지고 함께 잤을 뿐이다. 누군가가 든든히 키워주지 않는다면 할 수 없을, 쉬운 일이었다. 그러니 아무래도 좋았다.
그래서 몰랐다. 그래서 올백이를 잃었고, 고양이를 일곱 마리나 더 키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