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들은 뭔가를 키우고 싶어 한다. 아직 열심히 키워지는 중인 존재인 데다, 다 키워지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부모는 이 시기를 잘 버텨야 한다. 반려동물은 다 커서 직장도 생기고, 생활이 안정되었을 때도 충분히 키울 수 있다. 밥도 내가 챙기고 똥도 내가 치운다는 그럴듯한 말, 아이들은 반려동물을 키울 수만 있다면 수천수만 번 할 수 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똥부터 치워야 하는 하루하루가 찾아온 뒤에야 아이들은 '키운다'의 무게를 조금 깨닫게 된다.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키워진다'기보다 '사랑받고 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은 게 아닐까? 부모가 보여주는 모습이 그저 사랑이어서, 사랑만 해주면 자신처럼 쑥쑥 자라날 거라고 자연스레 생각하는 것일지도. 아이에게 쏟아내는 사랑 뒤로, 아이를 위한 수많은 미션을 꾸역꾸역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최대한 감추는 게 부모니까.
'키운다'와 '사랑한다'의 간극을 알기엔 아직 겪은 것이 없어서, 아이들은 반려동물을 조르고 부모는 난처해한다. 어린 나도 그랬다. 어린애라고 불리기에는 조금 컸던, 중학생 때의 일이다.
나는 고양이를 키우고 싶었다. 주변에 강아지를 키우는 집은 더러 있었으나 고양이를 키운다는 집은 없었던 2005년의 어느 지방 광역시. 하얀 털이 눈부신 터키시 앙고라를 키우고 싶었던 중학생에게 학원 원장님이었던 엄마는 기말고사에서 1등을 하거나 올백을 받으라는 조건을 걸었다.
예나 지금이나 조건에 맞추는 데에는 재능이 없던 나는 당시에도 처참히 실패했다. 그러니 고양이는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고, 그래도 평균 90점은 넘었으니 혼나지는 않겠다 생각하며 방학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뒤 엄마는 고양이를 보러 가자고 했다. 부모는 자식의 소원에 약한 법이라 그랬던 걸까? 아니면 외동인 내가 덜 외로웠으면 해서?
당시에는 부모님도 나도, 반려동물과의 삶이 지금까지도 이어질 거라는 사실은 몰랐다. 2005년은 반려동물을 '죽을 때까지' 키운다는 생각이 당연해지기에는 다소 이른 시기였다. 정확한 시대 고증을 위해 사어가 된 '애완동물'이라는 단어를 소환해야 하는, 그런 시절이었다.
나는 내 첫 고양이들을 만난 곳을 기억한다. 그 펫샵을 지나갈 때마다 나는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곳은 으레 펫샵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정사각형 유리칸에 한 마리씩 가둬두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새끼들을 구경하게 하는 곳이 아니었다. 터키시 앙고라 새끼 다섯 마리 정도가 철창으로 된 제법 큰 케이지에 다 같이 갇혀 있었다. 새끼들은 여럿 함께 모여 몸을 포개고 쉬고 있었다. 한편에는 이들의 부모 고양이를 위한 수직공간도 있었다. 강아지는 없었다.
내 첫 고양이는 펫샵에서 가장 잘 팔릴, 민들레홀씨 같은 털을 세우고 아장아장 걷는, 짧은 몸통의 새끼 고양이는 아니었다. 추정컨대 그 고양이는 3개월에서 4개월로 넘어가는 시기였던 것 같다. 아기 티는 남아있었지만 허리와 다리는 제법 길쭉하니 자라난 모습이었다.
길고 하얀 털에 눈이 노란 고양이. 아기였지만 제법 새침한 얼굴이었던 고양이는 이동가방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책꽂이로 뛰어올랐다가 바닥으로 내려왔다가 침대 밑에 숨었다가 안절부절못했다. 어떤 이름을 지어줄까 고민하던 찰나, 엄마의 입에서 내가 채우지 못한 조건 중 하나가 튀어나왔다.
일등.
내 첫 고양이의 이름은 '일등이'가 되었다.
새로운 집에서 우왕좌왕하면서도 '야옹' 한 번 하지 않던 고양이, 일등이.
일등이는 이후로도, 평생 '야옹'을 하지 못했다. 그럴 수 없게 태어났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여덟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들과의 인연은 이별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떠나간 존재들, 그리고 제 옆을 지키고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놓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