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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Mar 14. 2024

삶은 늘 보속의 기회를 준다

은심이와 얼룩이, 그리고 흰돌이 이야기


 은심이를 보낸 뒤 다시는 큰 개를 키울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엄마는 가끔 골든 레트리버 같은 큰 개를 키우고 싶다 하기도 했지만, 그건 꿈일 뿐이었다. 그런 당치도 않은 생각을 하던 순간에도 우리에게는 이미 키울 동물이 많고 많았다.

 그러나 세상 일은 절대 뜻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엄마는 어느 날, 아빠와 나를 앉혀놓고 개를 두 마리 더 데려와야겠다고 말했다.




 우리 집에서 차로는 5분도 되지 않는, 그러나 걸어서는 30분 남짓 걸리는 곳에 다리가 불편한 노인이 혼자 살고 있었다.

 아니, 혼자는 아니었다. 개 세 마리,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았다.

 아니, 함께는 아니다. 노인은 병원에 있는 시간이 더 길었고 그들은 방치되어 있었다.

 고양이들은 어찌어찌 주변을 뒤져 먹고살았고 개들은 묶인 채 말라갔다. 노인을 담당하는 요양보호사는 개 두 마리를 개장수에게 팔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 두 마리가 개장수에게 끌려가기 직전에 데려왔다.




 얼룩무늬 검은 개는 얼룩이, 은심이보다 터럭이 긴 흰 개는 흰돌이였다. 얼룩이는 암컷, 흰돌이는 수컷. 엄마가 둘을 데려오기로 한 것은, 엄마가 보았던 차마 눈 뜨고 못 볼 모습들 때문이었다. 줄에 묶여있으면서도 어찌어찌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죽자 어쩔 줄 몰라했던 얼룩이. 도롯가에 묶인 차가 지나갈 때마다 짖고 또 짖었던 흰돌이. 얼룩이는 우리 집에 온 지 반년도 되지 않아 갑자기 죽었다. 

 흰돌이는 아직 살아있다. 노인의 집에 남은 흰 개 한 마리는 엄마와 주변 사람들이 조금씩 돌보고 있다. 노인의 집에 드나드는 두 마리 고양이도 누군가가 중성화를 시켜주었다.

 고양이 중 한 마리는 얼마 전 로드킬을 당했다. 엄마가 노인의 집에 남은 개를 돌보러 갈 때면 다리 사이에 온몸을 비비며 반기던 고양이였다. 엄마는 그 고양이의 사체를 손수 수습해 주었다.



 8살로 추정되는 흰돌이는 더 이상 줄에 묶인 채 살지 않는다. 들어가 잘 수 있는 작은 집과 그 집을 둘러싼, 물과 밥을 먹을 수 있고 비를 피할 수 있는 조금 더  견사에 산다. 흰돌이는 매일같이 엄마와 이른 새벽 산책을 한다. 엄마가 나올 시간이면 귀신같이 알고 짖기 시작하는데, 비가 억수같이 내린다 싶으면 짖지 않는다. 보슬비 정도는 맞고 가자고 성화다. 산책을 한 번밖에 시켜줄 수 없다는 것이 미안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우리 집에는 산책을 기다리는 개가 네 마리 더 있다.
 그것이 불만인지 흰돌이 집 주변으로는 파다 만 땅굴이 많이 있다. 전생에 무장공비였나 싶게 파놨다.  


 이는 옥상의 에폭시 바닥에 힘들어했던 은심이가 바란 삶일지도 몰랐다.




 나는 얼룩이와 흰돌이를 들이길 반대했던 사람이다. 지금도 그들을 우리 집에 데려오길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는 이런 일이 생기면 마음이 너무 아파서 마음이 우울해질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버티기 때문에, 끝까지 반대하지 못했을 뿐이다.


 엄마의 고집에 꺾이고 나면 늘 번민이 뒤따른다. 우리 가족이 더 이상 동물 뒤치다꺼리 하느라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두고 온, 길에서 만난 동물들의 눈망울이 침습한다.

 '나는 왜 고집부리지 못했을까.'

 뒤늦은 후회로 마음이 아려온다. 용기가 없었던 나를 책망하면서도, 동시에 내 알량한 지갑을 지켜냈음에 감사한다. 아무래도 나는 다시 그 동물들의 앞에 서더라도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다만 몇 살이라도 더 먹은 채 그 자리에 서고 싶을 뿐이다. 그렇다면 당시와는 달리, 그들을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가는 것과는 조금이라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부질없는 상상이다만.


 그에 대한 심통과 게으름으로, 나는 흰돌이의 산책을 포함해 흰돌이의 돌봄을 엄마에게 일임해 버린다. 하지만 가끔은 흰돌이 집에 들러 얼굴에 잔뜩 붙인 검불을 떼어주며 쓰다듬고, 목덜미에 진드기 약을 바르고, 밥그릇 물그릇이 비어있지는 않은지 살피게 된다.




 곁을 떠난 동물들에 미처 주지 못했던 사랑을 움켜쥐고 끙끙대는 동안에도, 새로운 생명들은 우리 가족 곁에 다가와 몸을 비볐다. 

 삶은 늘 보속의 기회를 준다.

 그것이 어느 시절 가시 돋친 마음의 죄를, 온전히 사해주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세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귀여운 존재들과의 인연은 이별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떠나간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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