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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Mar 07. 2024

안 아픈 손가락 없단 거짓말

은심이 이야기2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달 전, 꼴매는 옥상에서 떨어졌다.


 우리는 모두 놀랐다. 고양이들은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옥상 난간을 8차선 도로처럼 건너 다녔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불 때는 당연히 모두 집 안에 가둬놓았고, 그나마도 건너편 아파트의 민원으로 자주 풀어놓지도 않던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꼴매가 옥상에서 떨어졌다니.


 꼴매는 나를 가장 사랑했던, 내가 가장 사랑했던 고양이였다.



 

 나는 틈틈이 꼴매를 찾아 우리 집 뒷골목을 돌아다녔지만, 꼴매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 몇 달 뒤, 엄마가 우리 집 뒤 이삿짐센터 주변을 배회하던 꼴매를 발견했다. 꼴매는 턱이 으스러져있었고, 골반이 부러진 상태였다. 엑스레이 영 결과, 수술을 한다 하더라도 회복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했다. 꼴매는 그 몸으로도 살기 위해 쥐를 잡아먹었다.


 우리는 꼴매를 집으로 데려왔다. 엄마는 도저히 꼴매를 안락사시킬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꼴매는 살고 싶어 했다. 우리가 그 애를 살릴 방법이 없었을 뿐.


 꼴매는 구멍 난 턱으로 밥을 먹고 부러진 골반을 가누어 얼마씩 걸었다. 나는 꼴매가 허락하는 한에서 그 애를 조심스럽게 안고 만지며 울었다. 내 손길을 유난히 좋아했던 고양이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꼴매가 죽고. 얼마 후 사촌동생은 이모에게 들은 말을 내게 전했다.


 꼴매가 옥상에서 떨어진 건 은심이 때문이라는 말. 옥상에 놀러 온 이모가 은심이를 풀어주었고, 옥상에 나와있던 꼴매를 미처 보지 못했었다는 말. 나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했다는 말.

 그 이야기를 들은 시점부터, 은심이는 관심 없던 개에서 관심조차 주고 싶지 않은 개가 되었다.




 그렇다고 은심이를 때렸다거나 못살게 군 것은 아니다. 나는 그럴 위인이 되지 못했다. 게다가 꼴매의 추락에 대한 책임을 은심이에게 지울 수는 없었다. 은심이는 개였다. 우리는 사람이었고.


 그러니 나는 은심이가 싫어도, 은심이를 볼 때마다 내가 지키지 못했던 작은 고양이를 떠올려도, 은심이에게 밥을 챙겨주고 물을 갈아주고 때가 되면 옥상을 돌아다닐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 동물로 인해 일어나는 사고 대부분은 사람의 관리소홀이 원인이다. 우리 집에서 일어난 일 역시 통계의 뒷받침 자료로 손색이 없었다.

 

 우리 집에서 일어난 사고는 어떤 자료의 일부로도 쓰이지 못했다. 그러니 우리의 일상도 그대로였다. 꼴매가 사라진 일상이었다.




 은심이는 우리가 옥상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때면 우리 곁을 휘휘 돌고, 때로는 앉아서 함께 있었다. 삼촌이 옥탑에서 기거할 때는 더 많은 보살핌을 받았다. 은심이는 평범한 개였고, 사람의 사랑을 고파했다. 그러니 나는 은심이를 마음껏 미워하지도 못했다.


 내가 유일하게 미워했던 동물이어서인지, 나는 그 애의 마지막 모습을 본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옥상 동물들의 아침을 챙기러 갔다가 눈을 뜬 채 죽어있던 은심이를 발견했다. 꼴매가 죽고 고작 5년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다.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말은 거짓이다. 사람에게는 더 예민하고, 더 자주 다치는 손가락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어떤 손가락은, 짓이겨져도 끝끝내 아프지 않다며 감추는 손가락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세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귀여운 존재들과의 인연은 이별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떠나간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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