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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Mar 21. 2024

다디단 밤, 냥이

밭냥이들의 복실복실 에스코트



 나는 지역 독서문화 커뮤니티에서 가끔 모임을 연다. 4월에는 한 달 동안 매일 글을 쓰고 공유하는 모임을 열기로 해서, 어떤 주제들을 제시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떠올린 주제가 있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은, 

 퇴근길 늦은 밤 차에서 내리면 들려오는 '야옹' 소리,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예쁜이와 예쁜이의 새끼 한치, 두치, 세치, 네치, 뿌꾸. 그리고 업둥이 콩알이.




 2021년, 우리 집에 찾아온 예쁜이는 다섯 고양이들을 낳아 훌륭한 어른 고양이로 키운 뒤 더 좋은 집으로 훌쩍 떠났다. 다섯 고양이들은 무럭무럭 자랐고, 그중 첫째이자 유일한 수컷이었던 한치가 갑작스레 고양이별로 떠났다. 3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두치, 세치, 네치, 뿌꾸와 예쁜이에게 젖동냥을 하러 온 인연으로 우리 땅에 눌러살게 된 콩알이까지, 이렇게 다섯 고양이가 우리 땅에서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부터인가, 다섯 고양이들은 우리 가족의 퇴근 시간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와 학원에서 일하고, 아빠는 교대근무를 하신다. 엄마와 나는 밤이 깊어야 퇴근하고, 아빠는 주에 따라 퇴근 시간이 다르다. 그럼에도 고양이들은 기가 막히게 알고 마중을 나온다. 어디선가 우리 소리가 들리면 부리나케 달려와 대문 앞을 서성이는 것이다. 깜깜한 밤이지만, 내가 여기 기다리고 있다고. 


 보고 싶었다고. 




출근하는 나를 막아선 두치. 복실복실 에스코트 서비스는 출근길에도 종종 있다.




 가끔 짐을 오래 챙기거나, 내리지 않고 연락을 정리하고 있으면 고양이들은 차 옆까지 와서 우리에게 잘 들리게 기척을 낸다. 잠시 후 차 문을 열면 왜 이렇게 오래 걸렸냐고,

 '야옹-'

 하며 따라붙는다. 

 '미안해, 기다렸어?' 

 하며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면, 밭냥이들의 복실복실 에스코트 시작이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내 앞길을 막아서는 뿌꾸.




 늦은 밤 또는 이른 아침, 우리 가족은 고양이를 넘고 넘어 현관까지 가야 한다. 고양이들은 한 걸음 뗄 때마다 다리 사이로 들어와 쓱 비비고, 짐 없는 손에 뛰어올라 기어코 자기 머리를 쓰다듬도록 한다. 몇 걸음 더 수월히 걸어갔다 싶으면 발라당 누워 뽀얀 배를 드러낸다. 


 고양이들은 사람 다리 사이에 몸을 비비기 위해 갈 지자로 걷고, 우리는 그들 위로 넘어지지 않기 위해 갈 지자로 걷는다. <듄 : 파트 2>의 두 주인공이 모래벌레를 피하기 위해 모래를 쓸며 걷듯이. 그렇게 우리 가족은 퇴근할 때마다 삼보일배도 아니고 '일보 일 쓰다듬' 하면서 집까지 간다. 고양이들은 조금이라도 우리의 발길을 붙잡으려 뒹굴뒹굴. 

 그러면 또 앉아서 만져줄 밖에. 출근도 아니고 퇴근길인데 뭐. 


 '에스코트'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 에스코트는 우리가 하는, 그런 퇴근길. 




네치 : 한 번만 만져보라냥! 복실복실하다냥!




 아빠가 퇴근할 때는 밭일하는 아빠를 졸졸 따라다니며 안기기 좋아하는 네치와 뿌꾸가, 내가 퇴근할 때는 나를 유독 좋아하는 두치와 요즘 들어 친해진 콩알이가 가끔 나온다. 엄마가 퇴근할 때는 랜덤. 세치는 아빠와 나에게 번갈아가며 마중을 나온다. 둘 다 반반씩 좋은가 보다.  




지난주 일요일에는 두치와 네치가 마중을 나왔다. 사람 한 명에 고양이 두 마리에게 받는 에스코트라니. 이런 호사가 있을까!


 


 다섯 고양이의 마중 덕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늘 설렌다. 가끔은 다들 산으로 놀러 나가고 없는지 고양이 한 마리도 못 보고 집으로 들어갈 때도 있지만, 한 마리 정도는 늘 대문 근처로 나와 우리의 퇴근을 기다린다. 


 낮에는 그들의 귀여움이 선명해서 좋고, 밤에는 쓸쓸하지 않아서 좋다. 달도 밝고 별도 반짝이는 시골 하늘 아래가, 함께 살아가는 고양이들로 인해 더욱 포근해진다. 


 봄에는 밤도 달아서, 나는 그들과 걸어가는 퇴근길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밤에도 잘 찍히는 카메라가 있다면 좋을 텐데. 밤마중 나온 고양이들이 정말 예쁘다. 퇴근이 기뻐서 유독 더 예뻐 보이는 걸까?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여덟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들과의 인연은 이별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떠나간 존재들, 그리고 제 옆을 지키고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놓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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