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이 이야기
우리 땅을 새끼들에게 넘겨주고 떠났던 예쁜이에게도 뜻밖의 일이 생겼다.
목에 자주색 끈을 단 채 목격되기도 했고, 어느 집 화단에서 야옹 대는 모습을 보기도 했던 터라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엄마가 아는 분이었다.
엄마와 그분은 차로 2분 거리에 다리가 불편한 할아버지가 키우는 큰 개들을 돌보다 친해졌다. 할아버지네 집에는 원래 세 마리 개가 있었는데, 엄마는 그중 두 마리를 개장수에게 팔려가기 직전에 데려와 키웠고 한 마리만 남아 있었다. 알고보니 그 개를 돌봐주던 사람이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그분의 존재를 알고난 뒤부터 둘은 요일을 정해서 번갈아가며 개 밥을 챙겨주고는 했다. 집을 고쳐주기 위한 만난 어느 날, 엄마는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다 그분이 예쁜이를 챙겨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분과 그분의 가족들도 예쁜이를 예쁜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예쁜이가 좀 눈에 띄게 예쁘기는 하다.
그런 예쁜이에게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
예쁜이는 태어나서 줄곧 밖에서 살았으므로, 그분이 밥은 챙겨주셨지만 밥만 먹으러 올뿐 계속 밖에서 살았다. 며칠 예쁜이가 보이지 않아 걱정하고 있었는데,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채로 피를 뚝뚝 흘리며 밥을 먹으러 나타났다고 했다.
수의사는 예쁜이가 턱 뼈와 두개골 일부가 부러진 채로 그분의 집까지 겨우 걸어왔을 거라고 추측했다. 시골에는 길에 풀린 채로 다니는 강아지, 고양이, 너구리, 족제비 등등이 로드킬을 당하는 경우가 꽤나 있어서 그분은 교통사고를 당한 것 같다고 이야기했는데, 수의사는 뜻밖의 이야기를 전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차에 치인 것은 아닐 것 같다고. 누군가가 예쁜이의 머리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했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섬뜩한 일이었다.
예쁜이는 수술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 수술을 해도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그분, 예쁜이 엄마는 수술을 강행했다. 목숨이 위험한 수술이었던 것은 물론, 턱뼈와 두개골을 다시 맞춰야 하는 대수술이라 수술비가 엄청 들어갔다.
쉽게 결정할 수 없었을 일이란 걸 한다. 엄마와 나는 예쁜이 엄마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정말 대단하다고 입을 모았다. 게다가 그분은 이미 열세 마리의 고양이를 돌보고 있었다.
다행히 예쁜이의 수술은 잘 끝났다고 들었다. 밥도 잘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회복했단다. 다만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밖에 나가지는 못하게 한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쁜이가 그 집의 열세 마리 고양이들을 누르고 왕노릇을 하며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쁜이 아빠가 예쁜이를 많이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그게 왕좌에 오른 비결인지도 모르겠다.
차마 사진을 보내달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어떤 모습일지 알기가 내심 두려웠으므로. 잘 살고 있을 거라 믿고 지낼 뿐이다.
나는 불쌍한 동물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이 견디기 힘들 때가 많았다. 이는 동물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 동물들 신경 안 쓰면 우리 집에도 차고 넘치는 강아지, 고양이들 더 챙길 수 있고, 다른 사람 신경 좀 덜 쓰면 그 돈과 시간을 우리 가족에 더 투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지금도 가끔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엄마처럼 행동했던 사람이 우리 집 근처에 살고 있었고, 그 덕에 예쁜이가 새로운 영역에서도 먹고살았다. 심지어 턱과 두개골이 부서졌음에도 살아날 수 있었다.
연민이나 동정은 얼핏 미련하기 짝이 없는 감정처럼 보인다. 그러나 쓰임이 적절할 때는 생명을 구한다.
나는 그간 엄마가 보답을 바라지 않고 베풀었던 것들, 특히 사람에게 베풀었던 것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속이 답답하지만 그 역시 다른 의미로 생명을 살아가게 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엄마는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크고 넓은 품으로 사랑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있기에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생명이 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내 작은 품 안의 것들이 너무 소중한 마음 좁은 사람이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여덟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그들과의 삶과 이별을 담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읽고 싶으시다면, 아래 <미처 하지 못했던 사랑의 기록> 링크를 눌러보세요. 떠나간 존재들, 그리고 제 옆을 지키고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놓기 시작하던 시절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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