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의 특별함
세상 모든 존재들은 특별하다.
너무도 당연해서 너무나 피상적으로 느껴지는 말. 그러나 살아있는 존재를 사랑해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이야기다. 존재의 특별함은 사랑하기 전에는 차이에 불과하지만, 사랑에 빠지는 순간 두고두고 곱씹을 '특별함'이 된다. 사랑은 그 대상을 꾸준히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도 내가 사랑했던, 사랑하는 존재들의 특별한 점들을 조금 자랑하고 싶다. 존재의 특별함을 떠올리는 일은 그 존재가 내 곁에 없어도 잠시 잠깐 생생하게 자리하는 것처럼 여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므로.
흰 양말인 줄 알았는데
콩알이는 까만 몸에 흰 양말, 흰 턱의 턱시도 냥이다. 아직도 절대 붙잡을 수는 없지만 내가 농막에 들어가 지정석에 앉으면 천천히 다가와 내 다리 사이에 몸을 비비고, 무릎을 딛고 올라와 헤드번팅과 뽀뽀(라고 하지만 사실 입냄새 맡기)도 해준다. 나는 그때 콩알이의 흰 양말에 까만 점들이 박혀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몸통에 발린 까만 잉크가 흰 발에 살짝 튄 것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콩알이는 내 무릎에만 발을 올리니, 이 사실은 우리 가족 중에서 나만 알고 있다. 콩알이가 나에게만 알려준 사소하지만 사랑스러운 포인트다.
아이라인은 왼쪽 눈에만
두치는 왼쪽 눈에만 아이라인이 있다. 오른쪽 눈은 라인이 없어 순둥한데, 왼쪽 눈은 주변으로 아이라인 같은 까만 털이 나서 선명하고 예쁘다. 그래서 그런 두치를 정면에서 보면 더 예쁘다. 모양새가 다른 양쪽 눈을 함께 보면 훨씬 더 매력적이다. 두치의 엄마인 예쁜이도 눈 한쪽에만 아이라인이 있었는데, 새끼들 중 두치만 그걸 닮았다. 두치는 털의 무늬도 예쁜이를 많이 닮았다.
겹겹이 어룽진 물방울처럼
반면 같은 배에서 나왔어도 두치와 달리 뿌꾸는 아이라인이 없다. 그래서 굉장히 순둥순둥한 인상이다. 실제로 겁도 좀 많은 편인데, 한 번은 밤중에 다른 고양이에게 쫓겼는지 가을이와 밤산책 중이었던 나를 만나자 우왕우왕 큰 소리로 울면서 따라오기도 했다. 평소 가을이를 무서워하는데도 그날은 자기를 쫓던 고양이가 더 겁이 난 모양이었다. 가을이를 집에 들여보내고 옆에 앉아서 온몸을 한참 쓰다듬어 준 뒤에야 뿌꾸는 울음을 그쳤다.
그런 뿌꾸의 귀여움 포인트는 바로 귀 끝의 물방울무늬다. 뿌꾸는 흰 바탕에 군데군데 검은색과 주황색 털이 난 고양이인데, 귀 끝에는 그 두 가지 색 털이 작은 물방울무늬를 이뤄 옹기종기 모여있다. 누가 붓으로 찍어놓기라도 한 것처럼 털이 났는데, 그것이 너무 귀여워서 중성화가 망설여질 정도였다. 이 친구들은 집고양이가 아니니,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중성화를 했고 결국 한쪽 귀 끝이 잘려나갔다. 그것이 아까워서 나는 뿌꾸의 뒷모습이 잘 찍힌 사진으로 스테인드글라스 썬캐처를 만들었다. 귀끝 과는 별 상관이 없지만 말이다.
고양이들의 특이한 식성
이미 멀리 여행을 떠난 고양이들의 이야기다.
일등이는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내가 소파에 두고 먹고 있던 옛날 과자 중 팥 앙금이 들어간 것을 먹어보더니 계속 먹고 싶어 했다. 탈이 날까 더 주지는 않았는데, 그전에도 후에도 사람 음식을 탐한 적이 없었던 일등이라 신기한 기억으로 남았다.
꼴매는 방울토마토를 좋아했다. 역시나 일등이처럼 사람 음식은 쳐다도 안 보는 스타일이었는데, 어쩌다 방울토마토를 먹을 때 관심을 보여서 냄새나 맡아보라고 들이댔더니 킁킁대다 혀를 살짝 대 보았다. 입에 맞는지 반쯤 먹었는데, 역시나 탈이 날까 봐 더 주지는 않았다. 빨리 헤어질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줄걸 그랬다.
까미는 노른자를 먹지 않았다. 가끔 고양이들에게 계란을 삶아 줄 때가 있었는데 까미는 이상하게 흰자만 먹었다. 보통 흰자는 싫어하고 노른자만 좋아하는 동물들은 있어도 노른자를 안 먹고 흰자만 먹는 경우는 드문데, 까미는 반대였다.
갈색 푸들 네 마리를 구분하는 법
친구들에게 초코, 알파, 두나, 세나가 함께 있는 사진을 보여주면 누가 누구인지 전혀 구별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에게는 너무도 다른 네 강아지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 똑같아 보인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물론 우리 강아지들과 조금 같이 지내보면 금방 알겠지만, 생김새만으로 간단히 구분할 수 있는 방법 두 가지만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털 색이 짙은 순 : 초코 > 두나 > 알파 > 세나
초코가 가장 짙은 초코색이고, 두나와 알파는 굳이 따지자면 비슷하다. 다만 알파가 나이가 많으므로 흰 털이 더 많이 나서 지금 바로 옆에 두고 대조하면 알파가 더 연할 것이다. 세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두나보다 털 색이 연했는데, 점점 더 연해져서 지금은 넷 중에서 가장 연한 갈색 털을 갖고 있다.
몸 크기 순 : 알파 > 세나 > 두나 > 초코
알파가 원래 8키로가 넘어서 가장 무거웠는데, 신장 수치와 콜레스테롤을 조절하기 위해 저지방 사료로 바꾸고 난 뒤 7키로대로 줄었다. 그래도 가장 크고 무겁다. 다음은 세나와 두나가 거의 비슷한데, 세나가 두나보다 다리가 조금 더 길어서 키는 더 크고 무게는 거의 비슷하다. 세나는 알파와 함께 살고 있어 알파의 몸관리 때문에 간식을 거의 먹지 못하니, 아마 이제는 두나가 더 무거울 지도 모르겠다. 초코는 원래도 몸길이가 넷 중에서 가장 짧았고 몸피도 작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더 작아지는 것 같다.
이제는 어느 정도 구분이 될까?
하나 더 추가!
가을이는 어릴 때 까만 코였지만, 크면서 점점 분홍 코가 되었다. 점점 늠름해지는 지금의 가을이도 귀엽고 멋지지만 까만 코 시절의 가을이도 가끔 그립다.
사실 더 많이 쓰고 싶은데, 시간이 많이 지나 기억나지 않는 특징들이 많아서 아쉽고 안타깝다. 남은 이들의 순간을 부지런히 저장해 두어야겠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때 꺼내볼 수 있도록.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여덟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그들과의 삶과 이별을 담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읽고 싶으시다면, 아래 <미처 하지 못했던 사랑의 기록> 링크를 눌러보세요. 떠나간 존재들, 그리고 제 옆을 지키고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놓기 시작하던 시절의 기록입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2005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