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매와 산이 이야기 마지막, 떠나간 존재들이 남긴 사랑의 향방
꼴매가 떠난 뒤에도 산이는 오래도록 우리 곁을 지켰다.
손만 닿아도 골골송을 부르며 손에 머리를 이리저리 부비는 건 꼭 엄마인 꼴매를 닮았는데, 몇 번 실내생활도 했지만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옥상 또는 시골 고양이집을 더 좋아했던 건 길고양이였을 아빠를 닮은 것 같다. 안기는 것도 유난히 싫어했다. 꼴매는 꼭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고양이 같았는데, 산이는 고양이인 채로 즐겁게 살아가는 고양이처럼 보였다. 그러면서도 사람이건 고양이에게 건 다정하고 살가웠다. 산이는 건실한 도도함이 매력적인 고양이였다.
산이는 내 손가락 끝을 살짝 핥다가 살짝 깨무는, 애정표현을 자주 했다. 그 새침하고 다정한 애정표현을 나는 매우 좋아했다. 꼴매를 닮은, 가느다랗고 새침한 야옹으로 의사표시를 하던 산이였다.
산이는 열여섯 해를 살고 난 어느 날, 밥을 먹지 않기 시작하더니 일주일 만에 우리 곁을 떠났다. 고양이 별로 떠나기 전 잠시 실내생활을 했는데, 아프면서도 내가 들어서면 꼭 반기며 야옹야옹 작게 울었다. 꼭 꼴매처럼.
산이는 끝까지 내 곁에 있어 준 유일한 꼴매의 핏줄이었다. 나는 산이를 사랑하면서 꼴매 또한 조금 더 사랑할 수 있었다.
꼴매가 죽은 지 벌써 16년이 되었다.
천수를 누리고 살았어도 진즉 고양이별로 떠나갔을 시간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꼴매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지금까지 많은 고양이와 강아지들을 떠나보냈지만, 나에게 떠나간 동물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바로 꼴매다. 꼴매는 나를 가장 사랑한 고양이다. 십 대의 중반에서 후반으로 비틀거리며 달려가던 나를 어떤 것도 바라지 않고 사랑해 준 고양이다.
꼴매가 떠난 뒤로 나는 내 곁에 다가온 모든 고양이들에게서 꼴매를 떠올렸다. 자꾸만 잊혀가는 꼴매의 기억이 눈꼬리며 코끝에 그렁그렁 맺힌 채로. 내 귓가에 웅크리고 자던 꼴매가 내쉬는 숨의 소리와 온기. 뺨에 닿는 그 애의 솜 같은 털. 가느다랗고 귀여운 '야옹의 정석'같던 목소리. 어둑한 노란빛의 홍채. 까만 테두리가 그려진 빨간 코. 코의 까만 테두리에서 이어지는 까만 입술에 코보다 조금 더 체리빛이 돌던 혀. 쌀알처럼 작던 이빨들.
나에게 사랑은 다른 누구도 아닌, 꼴매가 준 그것으로 각인되어 있다. 엉덩이뼈가 부러지고 턱이 절반 가까이 날아갔으면서도 나를 보고 걸어오던 조그만 털뭉치가 준 사랑이 내가 아는 사랑이다.
꼴매는 내게 사랑의 현현이었다. 나는 그걸 너무 늦게 알아서, 꼴매는 아직도 종종 내 속에서 울컥 차올랐다 가라앉고는 한다.
그러나 사실 모든 고양이들, 그리고 강아지들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해 주었다. 그러니 나에게는 내가 만나고 아꼈던 동물들만큼의 사랑이 깃들어있다. 그렇게 나는 존재의 사랑법을 하나씩 내 속에 수록해 간다. 그러니 모든 이별이 결코 고통스럽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나에게 표현했던 사랑의 행위로 내 속에 깃들어있다.
이 이야기를 준비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꼴매를 떠올리면 눈물부터 흘렸고, 때로는 허벅지를 마구 때리면서 소리 내어 울었다.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것이 미안해서.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안하다는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 정도 말로는, 내가 다하지 못한 책임의 값을 치를 수 없다는 것을 내 마음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꼴매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지금에야 내 눈물이 조금씩 멎어가는 걸 느낀다. 오랜 시간, 그 애를 극진히 그리워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 만으로 내 속에 고인 슬픔이 걷히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홀로 흘리는 눈물만으로는 다 내보낼 수 없었던 슬픔이었다.
머릿속에만 차 있던 꼴매와의 시간들이, 그 애를 잃어버린 이후가 글이 된다는 사실은 기쁨이자 고통이었다. 나라는 존재에게 남은 꼴매의 사랑과 그렇게나 소중한 존재를 어이없게 잃어버리고 난 뒤의 회한을 내보이는 일을 나는 오래도록 주저해 왔다.
그러나 그 시절의 이야기를 쓰는 과정을 통해 나는 해묵은 슬픔을 차곡차곡 정리해 나갔고, 꼴매라는 사랑스러운 고양이가 세상에 존재했다는 것도 알릴 수 있었다. 비록 꼴매의 얼굴이 드러난 사진은 오늘 글에 실린 것이 전부라, 그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를 더 자세히 자랑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모두 나의 불찰이다.
꼴매, 노랑이, 일등이, 올백이, 산이, 구름이, 바다, 보라돌이, 뚜비, 나나, 뽀, 은심이, 까미, 눈이, 파이, 한치...
나를 떠나간 동물들은 모두 나를 듬뿍 사랑해 주었다.
나는 그 사랑을 제때 갚지 못해서, 지금 내 곁에 남은 동물들에게라도 덧붙여 돌려주고 싶다.
그들마저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그곳에서 먼저 떠난 이들을 만나 내가 미처 주지 못했던 그들 분의 사랑을 나눠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렇게라도 전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랬으면 좋겠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여덟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그들과의 삶과 이별을 담은 저의 브런치북을 처음부터 읽어보고 싶으시다면 아래 링크를 눌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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