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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연한 비밀

꼴매 이야기 6

by 미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처럼 들렸다. 사촌언니에게 연락을 받은 뒤, 엄마에게 연락해 사실을 확인한 뒤에야 실감이 났다. 할머니는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셨고, 입원한 지 사흘 만에 돌아가셨다.


나는 할머니를 보내드린 날, 바로 학교로 돌아가는 KTX를 탔다.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던 터라 학기 중에는 집에 내가 있을 곳이 딱히 없기도 했고, 마침 엄마가 운영 중이던 학원도 중간고사 기간이어서 바빴다.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상중에도 학원을 운영해야만 했지만 그걸 도울 수도 없는 처지였으니 입이라도 하나 더는 것이 나았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은 유난히 지난했다. 천안에서 내려 전철로 평택까지, 그곳에서 다시 버스로 안성까지 가는 길. 나는 아직도 그 길에서 본 전철 스크린도어를 기억한다. 그곳에 정차하지 않는 지하철들이 빠르게 역을 빠져나갔다. 그 역동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기숙사는 어두웠고, 고요했다. 룸메이트도 방에 들어오지 않는지 이틀은 된 듯한 풍경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 울기 시작했다.




할머니 때문이 아니라, 꼴매 때문이었다.


늘 나에게 다정하고 관대했던 할머니였다. 그래서 상을 치르는 내내 울고 또 울었다. 그래서인지 안성으로 오는 길에서도 울지 않았건만. 돌아온 기숙사에서 나를 덮친 건 3년 6개월 전 제대로 쏟아낼 수 없었던 또 다른 상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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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인정된 애도의 시간을 주었다. 우리는 함께 모여서 울었고, 위로했고, 명복을 빌었다.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해, 그들 없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해 이야기했했고, 어떤 방법으로 그들을 기릴지 논의했다.


그러나 꼴매에 대해서는 그 무엇도 하지 못했다. 누구도 꼴매에 대해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꼴매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고양이였는지, 얼마나 예뻤는지, 얼마나 나를 좋아했는지, 그렇게 심하게 다쳤으면서도 얼마나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쳤는지. 나는 그 모든 이야기들을 혼자 간직해야 했다. 아버지를 잃은 엄마에게도, 고양이와 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아빠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골매의 죽음은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눈물로 가득 찬 금고가 되어서 내 마음 깊숙한 곳에 가라앉았다.


할머니를 보내고 돌아온 날, 텅 비어버린 마음에서 끌려 나온 건 3년 넘게 고여있던 슬픔이었다. 나는 꼴매가 방금 죽은 것처럼 울부짖었다. 꼴매가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을 지켜보지도 못했으면서. 침대며 허벅지며 손에 잡히는 대로 때리면서 엉엉 울었다. 나는 너무 오래 그 애를 보내지 못했던 것이다. 꼴매는 죽은 지 3년 6개월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내 마음에서는 죽지 못했다.




그 뒤로도 나는 가끔 꼴매를 떠올렸다.


슬펐고, 울다가, 때로는 울기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꼴매를 떠올리며 계속 눈물흘리면, 꼴매가 마음 편하게 나를 떠날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눈물은 제때 흘리지 않으면 불어나기라도 하는지, 나는 그 애를 떠올리면 늘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그러면 꼴매 때문에 슬퍼한 것이 미안해서 또 울게 되었다. 내 슬픔에는 도돌이표가 붙었다.


꼴매는 늘 나를 그렇게 울게 했다. 그 애는 그냥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 애의 죽음은 내 책임이었다. 나는 울부짖는 것 말고는 속죄할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내 반려동물들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를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어디에도 쓰지 못하고 그저 담아두고만 있었던 것은 내가 열아홉 살이던 10월에 고양이별로 떠난 꼴매가 아직 마음에 맺혀 떨어지지도, 흘러내리지도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스무 살의 나도 서른셋의 나도 그걸 알아서, 내 마음을 꼭 붙잡은 너를 살살 쓰다듬어 떼어내는 일이 아플 것을 너무 잘 알아서, 나는 강아지, 고양이들의 마지막을 써내리는 동안에도 너에 대해서는, 단 한 줄도 쓰지 못한 채로 미뤄두었던 것이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여덟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그들과의 삶과 이별을 담은 저의 브런치북을 처음부터 읽어보고 싶으시다면 아래 링크를 눌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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