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하지 못했던 사랑의 기록 2>을 마치며
어떤 삶에서, 반려동물은 귀여운 새끼의 모습으로 존재했다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귀여운 모습이 사라지고 덩치가 커졌다고 해서, 대소변을 제대로 못 가린다고 해서, 갑작스러운 이사나 결혼 또는 출산으로 인해서. 친척집 혹은 어딘가에 맡겼다는 짧은 말과 함께 가족에게서 축출되고 마는 동물들이 있다.
그러나 그냥 사라지는 생명은 없다. 모든 생명이 그렇듯, 모든 반려동물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각기 다른 모습으로 죽는다. 나는 한 번 반려동물을 입양하면 생로병사의 과정을 끝까지 돌봐야 한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느낀다. 반려동물들의 가장 사랑스러운 순간을 넘어 그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순간까지도 끝까지 사랑해야만 한다. 그들을 향한 사랑은 한순간의 매혹이 아니라 책임과 의무여야 한다.
나는 덩치가 큰 개는 시골에 묶어 키우는 것이 당연하고, 펫샵에서 사 온 개가 아파트에 살다가 짖거나 커지면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맡겨지는 것이 당연하던 2005년부터 반려동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꾸준히 변해왔다. 글의 앞머리에 언급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세간의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되는 시대까지는 왔다. 강아지를 매일 산책시킬 수 없다면 키우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이 당연해졌고, 이사를 준비할 때는 반려동물과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1순위다. 결혼식장의 화동이 된 강아지들의 숏폼 영상이 인기고, 아기 옆에 누운 강아지 고양이들의 모습도 알고리즘으로 연결되어 끌려 나온다. 아직도 길가에 펫샵은 많지만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라는 문구는 이제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문구가 되었다. 사람들은 반려동물과 함께 살기 위해서 훈련사에게 상담을 받고, 반려동물에게 맞춰 집을 꾸민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것에는 많은 품이 든다는 것을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분명 세상은 더 나아졌다. 더 많은 사람들이 동물과 함께하는 삶을 지켜나가기 위해 애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영상과 글들이 참 감사하다. 내가 동물들을 키우기 시작했을 때에도 그런 영상이나 글들에 접근하기가 쉬웠다면 나 역시도 좀 더 나은 반려생활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반려동물과의 삶을 슬기롭게 이어나가는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다 보면 반려동물을 키울 준비를 하는 청소년들의 댓글이 눈에 띈다. 언젠가는 꼭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어서 미리 공부하며 준비하고 있다는 당찬 학생들의 댓글을 읽고 나면 마음이 따끈해진다. 그런 친구들은 분명 좋은 보호자로 자랄 테니까.
이런 변화에 이어, 반려동물과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세상에 많이 들려오면 좋겠다.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는 반려동물들의 모습은 보호자도 보기가 힘들 정도로, 젊고 건강하던 시절과는 많이 다르다. 그래서인지 영상보다는 글로 그 모습을 전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듯하다. 나는 결코 편안하게 그들의 마지막을 배웅하지는 못했던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가족의 일원으로 섞여 평생을 함께 하다가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기쁘다. 나와 함께 살았던 동물들에게는 주지 못했던, 크고 일관적인 사랑을 그들의 마지막 순간까지 줄 수 있었던 보호자들이 참으로 대단하고 부럽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아직 기회가 남아있다. 스무 살에 가까운 초코와 알파가 우리 곁에 남아있고, 초코의 손녀인 두나와 세나도 이제 열한 살이니 중년을 넘어선 나이가 되었다. 몇 살인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두나와 세나만큼은 되었을 흰돌이와 이제 막 한 살이 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을이, 그리고 세 살이 넘은 예쁜이의 딸들과 콩알이 까지. 어째서 떠나도 떠나도 줄지 않는지 모를 사랑스러운 존재들과의 이별이 아직 많이 남았다. 나는 반드시 그들의 마지막까지 함께해야겠다고 매일 다짐하면서, 눈 뜨자마자 가을이와 산책을 하러 나간다.
아주 가끔은 이들이 없는 삶을 상상한다. 좀 더 일에 매진하기 좋은 삶, 더 질 높은 휴식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삶, 더 먼 곳까지 쉽게 여행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내 곁의 동물들이 있기에 내 24시간이 더 선명하게 반짝인다는 걸 안다. 일과 글, 쉼보다는 사랑이 사람을 더 사람답게 한다. 책만으로 세상을 다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나를 현실에 발 붙이고 살 수 있게 한 것은 8할이 반려동물 덕분이었다. 나는 그들 덕에 현실을 충실히 살게 되었다.
그러니, 나는 그들의 모든 생애를 남김없이 사랑하고 싶다. 반드시 찾아올 마지막 순간까지도.
지금까지의 수많은 이별들을 지나왔음에도 나는 여기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그들이 모두 떠난 뒤에도 나는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내 곁의 동물들과 남김없이 살아가는 일이 모두 끝난 뒤에는,
다시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을 것이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여덟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그들과의 삶과 이별을 담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읽고 싶으시다면, 아래 <미처 하지 못했던 사랑의 기록> 링크를 눌러보세요. 떠나간 존재들, 그리고 제 옆을 지키고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놓기 시작하던 시절의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