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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재 Nov 29. 2021

열정에 물 붓기

굵고 짧은 런닝은 그만

  런닝 코치를 하다 보면 간혹 '과한 열정'을 가진 달리미분들을 뵙게 된다. 뛴다는 건 누군가에게는 확실히 즐겁고 신나는 일이지만 과유불급의 베프는 중도포기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런닝을 시작하고 대략 한 달 정도가 지나면 몸이 가벼워지고 속도가 빨라지면서 런닝에 더욱 자신감이 생긴다. 런닝이 주는 퍼포먼스와 자기효능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생동감과 자신감이 땔감이 되어 심장 사이로 샘솟는 열정은 이내 전신으로 번져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늘 그래왔듯이 나는 낮고 진지한 목소리로 운동량을 줄일 것을 재촉한다.


  "운동량을 줄이셔야 해요. 너무 과해요"

초롱초롱하게 빛나던 눈은 이윽고 초승달로 변하며 이 양반의 의도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낯빛이 스쳐 지나간다. 단번에 수긍하기 어려운 기색이지만 나름 코치라는 양반의 말을 들어보려 한다. 초심자들의 열정을 죽이고 다니는 텃새 꾼이라는 불편한 오명을 마주할 때면 마음 한구석이 좀 퀴퀴하긴 하지만 할 말은 해야 한다. 조금은 장황한 주제지만 가장 간결하고 확실한 말을 찾다 보면 언제나 "운동은 잠깐이 아니라 평생 하셔야 하잖아요"라며 너스레 웃는다.


  활활 타오르는 강렬한 불은 결코 오래 갈 수 없다. 길어야 1년 안에 그 대장정이 막을 내린다. 커튼콜을 외치는 관객들을 뒤로한 채 수치심을 느끼며 런닝을 멈춘 다리를 부여잡고 쓸쓸히 무대 뒤로 퇴장한다. 기약 없는 이별은 진짜 이별이고 라떼를 입에 대는 순간 과거는 결코 현실이 되지 않는다.


  미스터즈 분들 중에 런닝을 30년 이상 해온 노익장 분들이 참 많다. 제아무리 코치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고 한들 그들 앞에서는 한없이 겸손해진다.

서글서글한 표정과 가벼운 조깅에서 조금의 뜨거운 열정도 느껴지지 않지만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장작 냄새가 난다. 그동안 여러 번의 부상은 있었지만 치명적이지는 않았고 한 달 이상 쉬어 본 적이 없었으며 뛰기 싫은 날에는 뛰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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