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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재 Nov 30. 2021

우울증과 비만의 연결고리 - 프롤로그

우울한 당신에게 쓰는 편지

  비단 삶이 불행해서 우울한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누군가에게 우울감은 삶의 골짜기 어느 곳에서 잠깐 불어오는 바람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넘실대던 파도가 아주 가끔 바위를 비집고 올라와 웅덩이를 차지하는 것처럼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울한 당신에게 고하노니 결코 당신이 약해서 우울한 것이 아니다. 마음이 강하지 못해서, 능력이 없어서, 사회성이 없어서와 같은 쓸데없는 이유를 갖다 붙이는 자신과 타인의 생각에서 벗어나라.


  우울증은 한때 내 최대의 관심사였다. 평일에는 왕복 5시간이 넘는 거리를 출퇴근했고 주말에는 쉴 틈 없이 런닝강사로 일했다. 바쁘게 살면 우울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우울했다. 폭이 좁은 담장 위에 두 발로 서서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노라면 균형을 잃자마자 시커먼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것 같은 불안감에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감으면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 내가 보였고 그 뒤로 무방비인 내게 으르렁거리며 다가오는 사자가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 사자를 피해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슬픔을 머금은 가로등에 의지해 대로변을 뛰고, 회색빛으로 물든 산을 뛰어올랐다. 그러나 그 어떤 풍경이나 사람도 내게 즐거움을 줄 수는 없었고 기분 나쁜 땀방울과 터질듯한 호흡만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스스로 깨달아야 했다. 이 감정과 기분은 오직 나만이 만들 수 있는 파도였고 넘실대는 물방울 속에 갇힌 기억을 들여다보며 반추하는 사람 또한 오직 나뿐이라는 사실 말이다. 우울증의 원흉으로 손꼽히는 회피, 비활동성, 반추를 뒤늦게 인지하기는 했지만 나는 여태껏 활동만 했을 뿐이지 회피와 반추는 멈춘 적이 없었다. 완벽하지 않은 관계와 목표, 그리고 상황들을 회피했고 양심 과잉에 등 떠밀려 추억과 기억을 되새김질했다. 많이 달리고 힘들게 달릴수록 체력은 강해졌지만, 웅덩이에 고인 물은 빠질 줄 몰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약의 도움을 받든 위로를 받든, 스스로 만든 사고회로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평생에 걸쳐 우울증은 재발하기를 반복한다. 저명한 뇌과학자들과 신경생리학의 권위자들은 환원주의의 입장에서 우울증을 분석한 결과들을 무수히 내어놓고 있지만, 생명은 창발성과 목적성이라는 불가분한 속성을 가졌기에 스스로의 염원과 성숙함으로 자가치유할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세상과의 인연을 뒤로하고 도를 닦거나 거듭된 자기파괴로 새로운 나를 찾자는 게 아니다. 인생이라는 공연을 앞둔 어느 주연 배우처럼 마음의 대본을 들고 반복해서 연습하는 훈련이 중요하다.


마주할 것.

움직일 것.

되감지 말 것.


  피하고 싶은 것들과 마주해보기를 바란다. 아니, 더 깊숙이 그 안으로 들어가 보길 바란다. 차마 엄두가 나지 않고 몸서리쳐질지 몰라도 그 문제와 상황, 관계 같은 것들은 영원히 썪지 않는 플라스틱 같은 것이어서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들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을 계속 피하다 보면 당신의 인생은 어느새 무엇도 해결하지 못하는 무력감으로 가득 찰 것이다.

  바람이 불면 창문을 닫듯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움직이기를 바란다. 우리 몸은 희한하게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곳저곳에서 영양분들을 끌어와 혈당을 올리는데, 움직이기에 더할 나위 없이 마땅한 상태다. 나가기 싫으면 나갈 일을 만들어도 좋고, 운동이 싫으면 가벼운 산책도 좋다. 세포들은 알지 못한다. 이 집합의 목적과 기분이 무엇인지. 그러나 애너지를 만들어 전체에 기여하는, 당신을 기분 좋게 만드는 방법은 알고 있다.

  현재에 장막을 치는 기억 놀음을 끊기를 바란다. 과거는 실재하지 않는 빗장 속의 진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곱씹기를 바란다. 상처로 만든 방어기제의 밧줄은 언제든 기억의 장막을 내려 당신의 현실 무대를 감출지는 몰라도 주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일 것이고 클라이맥스가 오기 전까지 무대조명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의지와 상관없이 기억이 떠오르면 그 기억을 관망하고 흘려 보내야 한다. 바닷가의 부표처럼 자꾸 떠오를 테지만 그 부표를 노스텔지어 삼아 회상할 필요는 없다. 그저 거대한 해류에 흘러가게 두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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