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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재 Dec 03. 2022

거리에서 쓴 자본주의 비판 - 1

서문과 목차


서문


  꾀가 많은 그는 항상 생산수단을 차지하는 법을 알았다. 아침에는 신이었고, 점심에는 국가였다가, 저녁에는 자본이었다. 그는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먹고 자고 싸는 평범한 신체적 욕망에 이끌렸지만, 유독 정신적 욕망은 끝이 없었다. 욕망의 파도가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집어삼킬 때조차 그의 바다는 고요했다. 평범한 사람들은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큰 배에 올라보기도, 거대한 방파제를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바다는 순환적 역사관을 지지하듯 고통의 주인을 바꾸지 않았다. 급기야 욕망의 해류에 떠밀려 해안 장벽 밖으로 내쫓긴 사람들은 바다를 힘 없이 표류하기 시작했고, 어쩌다 태풍이 한 번씩 휘몰아칠 때면 심연으로 가라앉은 무수한 시체만이 그의 승리를 증명했다. 그의 이름은 자본주의다.

엘리트 계층의 도덕성이나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망에 대해 비난할 마음은 없다. 단지, 우리가 신뢰하고 있는 경제 시스템은 아주 불완전하며, 또한 비인간적이라는 사실을 거듭 힘주어 말하고 싶을 뿐이다. 효율적이지만 장기적으로 효율적이지 않고, 성장에 몰두하지만 퇴보를 향해가며,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게 하지만 결국 모두를 분열시킬, 그래서 지속 가능하지 않은 시스템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새로운 자유주의는 대중에게 그리 자유롭지 않았다. 금융의 세계화와 자유무역, 그리고 작은 정부는 무한경쟁에 취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유를 다시 쟁취의 대상으로 바꾸어 놓았다. [유한계급론]의 저자, 소스타인 배블런의 이론대로 부유층의 밈을 마음껏 흡수한 서민층은 더 많은 소비와 여가를 과시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맷돌에 갈며 공급을 지탱하고 있고, [진보와 빈곤]을 썼던 헨리 조지의 예언대로 가장 비싼 땅에서 가장 가난하고 비참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경제학은 의학과 달리 현대의 경제 문제를 치료할 수 없고, 성장과 함께 나날이 커지는 불평등은 세상을 여러 개로 조각내고 있으며, 인류세의 기후 위기는 '생산력 지상주의'에 밀려 여전히 캐비닛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들은 모두 자본주의에서 시작했다. 비록 시장경제는 아직 망하지 않았지만 확실히 실패했다. 위에 나열한 재앙의 신호들을 모두 무시한다고 해도, 실패의 고통을 짊어져야 할 사람은 정작 자본가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이라는 구조적 사실이 그 실패를 더욱 뒷받침한다.

사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일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는 엄마의 잔소리만큼이나 전혀 새롭지 않다. 그러나 새롭지 않다고 해서 논의를 멈추어야 하는 새로운 이유가 생기는 건 아니다. 더 좋은 경제 구조를 바라는 일은 인간의 오랜 숙원이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도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다. 비판의 경중은 그다음의 문제다. 혹자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람을 여름 들판에 누워 별빛을 세는 낭만주의자로 묘사하기도 하지만, 그와는 정반대다. 자본주의는 지극히 현실이다. 현실을 비판하는 일은 오직 현실주의에서 솟아난다. 오히려 세상이 완전하다고 믿는 자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낭만주의자가 아닐까.

세계의 여러 현실주의자들은 내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실제로 없기 때문'이라던 경제학자 조셉 스티글리츠는 간섭받지 않는 시장은 재앙이라고 봤다. 그는 낙오자를 낙오시키는 비인간적인 시스템은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반드시 인간적인 간섭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의 저자, 사이토 고헤이는 최근까지도 '탈성장론'에 심취한 청년들에게 풍부한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고, 불교사상가 술락 시바락사는 어떤 사회 든 간에 문명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계속 질문하는 습관을 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물론, 지혜만으로 세상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물건의 종류와 모양은 시시각각 바뀌겠지만, 인류의 오랜 정신 유산은 어느 개인의 열정이나 특정 세대의 좌절 섞인 담론만으로는 결코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른 아침, 출근길에 오른 많은 사람들의 불편을 외면하며 '탈성장'이라고 쓴 피켓을 들고 전철을 점거하는 시위를 벌인다고 해도, 세상은 어제 같은 오늘을 거쳐 오늘 같은 내일을 향해 침묵을 이어갈 것이다.

시대정신은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하는 선택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유용하거나 더 올바르기 때문에 대중이 그 사상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단지 권력이 이끄는 대로 더 많이, 더 멀리, 더 오래 퍼졌기 때문에 받아들인 것이다. 사상은 물리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하위헌스의 원리로 유명한 물리학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는 자연에 존재하는 동기화 현상(Synchronization Perspectives)을 최초로 발견했는데, 요즘에는 이 현상이 뇌과학과 사회심리학 분야에까지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 부와 소비를 미덕으로 삼는 사회 분위기 등도 마찬가지다. 사상이나 신념 역시 구성원과 세대 간에 동기화한다. 동기화한 사상은 서로 다른 개인적 차이를 넘어 생각과 목적의 동기화로 이어지며, 다른 진자 에너지를 갖고 있던 완전히 다른 사상마저 동기화한다. 일부 학자는 이런 현상에 빗대어 소비주의의 종교적 특성을 연구하고, 또 누군가는 경기변동 이론을 집단지성의 특별한 패턴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즉, 자본주의는 우리를 충분히 동기화한 것이다. 그래서 잠깐 사람들의 이목을 끌거나 제도를 고쳐 쓰는 일만으로는 이미 이루어진 동기화를 되돌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통을 이어 굳이 반복해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 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죄책감을 일부 덜어 내려는 것이고, 둘째, 매사 잘잘못을 따지고 늘어지는 내 불편한 성격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미련 때문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우리를 길들이고 동기화하는 시스템을 비판하는 일이야말로 이 불편한 감정을 잠시 잊게 해주는 유일한 낙이라고 생각한다.

죽은 지식에서 최대한 물러서서 가급적 날것 그대로 문제를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가장 거대한 문제부터 시작해서 작은 문제로 이동한다. 중간중간 새로운 개념과 아이디어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장대하거나 심오한 논의는 아니다.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본적인 사실과 원리에 기초한다. 이 글은 망망대해에 떠있는 작고 보잘것없는 부표에 불과하지만, 자본주의에 상처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목차

ㆍ서문
ㆍ자본주의 비판
  1장. 자본주의는 진리가 아니다
  2장. 지속 불가능한 자본주의
  3장. 욕망 바이러스
  4장. 과잉공급의 비극
  5장. 왜곡된 수요
  6장. 불평등은 필요악일까
  7장. 약탈적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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