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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재 Dec 03. 2022

거리에서 쓴 자본주의 비판 - 2

자본주의는 진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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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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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자본주의는 진리가 아니다


 자본주의는 오직 인간이 만든 상상이다. 그리고 모두가 규칙으로 받아들였다. 이 보이지 않는 사상은 제도와 관습, 여러 가지 사건과 사고를 거쳐 점점 견고해졌다. 그런데 이 사상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고유한 발명품이기 때문에 외계인이나 침팬지에게는 꽤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최근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데, 사실 알고 보면 메타버스의 원조는 자본주의다. 현실과 가상의 융합이 별건가? 가상의 규칙에 맞게 현실을 살면 그것도 메타버스다. 만약 내가 성격이 아주 급하거나 허무주의에 빠진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비판을 끝낼 수도 있다. 이미 몇 줄의 문장만으로도 자본주의는 사회적으로 합의한 상상의 규칙일 뿐 진리가 아닌 것으로 드러나니까 말이다. 굳이 진리가 아닌 것을 공격하려고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이 참에 더 좋은 시스템을 상상해보자고 제안했을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진리는 사실 인간 중심적이지 않다. 인간이 접근할 수 있는 인지적 사실들은 진리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겉돌고 있는 구름이다. 나는 이것을 진리의 거품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절대적인 진리가 있는지 결코 알 수 없는 존재지만, 불가지론은 딱히 내 스타일은 아니다. 차라리 상대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게 그렇지 않을 때보다 힘이 난다. 플라톤은 세계를 이데아의 그림자로 여겼는데, 진리를 바라보는 형이상학적인 태도는 존경스럽지만, 인식을 기준으로 존재를 실체와 허상으로 구분하는 절대주의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자연은 불연속적인 속성을 가지는 동시에 임의로 양분할 수 없는 정보의 연속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슬처럼 연속된 정보들을 쫓아 눈에 보이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진리의 거품을 거듭 탐구할 때마다 인류는 사회적 진화를 이루어 냈다. 그래서 과학부터 정치, 심지어 종교에 이르기까지 진리를 좇는 모든 분야에서 모두가 유념해야 할 태도는 겸손이다. 겸손은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아니라 확신하지 않고 항상 가능성을 남겨두는 자세를 말한다. 스스로 몸 담고 있는 시스템에 대해 만족하지 않고 항상 그 너머에 더 조밀하고 선명한 거품이 존재할 거라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진리의 거품은 진리의 중심으로부터 다른 거품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거품은 말 그대로 거품에 불과해서 쉽게 꺼지기 마련이다. 이런 속성은 불완전함 그 자체다. 거품이 불완전한 이유는 진리의 방향으로 항상 더 나은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역시 진리의 거품이다. 우리 대부분은 자본주의가 만든 다양한 질서와 문화에 충분히 길들여져 있지만, 설령 그것이 익숙하고 편안할지라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어느 시대에나 진리의 거품을 대중의 눈에 씌워 구름 같은 시대를 추구하는 낡은 고집이 존재했다. 먼저 자리 잡은 고집은 꽤 오랫동안 서로의 뇌리에 머물러 있을 테지만 언제까지고 그 고집에 꺾여 고개를 푹 숙이고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더 부작용이 없고 더 지속 가능한 경제를 상상하는 일은 선조와 시대의 관성이 남기고 간 오래된 고집에 저항하는 일이며, 자본주의에 참여 중인 모두가 반드시 한 번쯤은 생각해보아야 할 양심의 문제다.

신석기 무렵 한반도에 사유재산이 최초로 출현한 이후 경제는 권력을 중심으로 변해 왔다. 계급에서 신으로, 왕권으로, 다시 기술과 자본으로 권력의 무게중심이 이동할 때마다 이전의 경제는 거품처럼 사라졌고, 세계는 새로운 분배 방식에 적응한 자와 적응하지 못한 자로 나뉘기를 반복했다. 보편적이고 절대불변의 진리라고 믿었던 과학적 사실들은 사소한 검증에 뒤집혔고, 한때 대중의 진리였던 천부인권과 민주주의는 자본가의 방패로 전락했다.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건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뿐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방향을 선택한 건 엘리트 계급이나 기술이 아니라 아이들과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바로 우리의 양심이었다. 세상은 그런대로 굴러갈 거라는 안락한 신념 뒤에는 양심을 돌아보지 않는 이기심이 숨어 있고, 그 이기심은 주어진 세상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게으름에서 나온다. 자본주의는 게으름의 역사다. 오늘 먹을 빵을 위해 어제처럼 산다면 내일부터는 배고플 것이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생각을 잊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자동차나 집이 아니라 시대를 수직으로 내려다보는 예리한 관찰력과 예민한 불편감이다. 나는 왜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끼는지, 도로 위에 자동차들이 대체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가지지 못한 괴로움에 나는 왜 평생 시달릴 수밖에 없는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한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일은 당장의 문제에 겉돌지 않고 어떤 특이점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직선 위에서 해야 한다. 니체의 영겁회귀에 갇혀 우리가 서있는 자리가 어느 원 위의 중심일지라도, 불쾌해하며 스스로를 속이지 않을 때, 비로소 선을 구부릴 용기를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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