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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재 Dec 07. 2022

이자에 대한 단편적인 고찰

이자는 정당하고 자연스러운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이자는 자연스러운 개념이지만 현행 정치경제학에서는 정당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1. 이자의 개념

  이자는 자본의 열매다. 땅에 씨앗을 뿌린 후 열매를 얻는 일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령, 젖소 한 마리를 빌려준다고 했을 때, 1년 뒤에 고스란히 젖소 한 마리로 돌려받는다면 당연히 손해다. 적어도 우유 몇 통과 새끼 두 마리 정도는 더 받아야 애당초 빌려줄 마음이 생긴다. 즉, 이자는 자본의 기능을 가진 모든 가치의 자연스러운 속성으로부터 파생된다. 심지어 자본이 교환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동일인에게 귀속되어 있는 자본 역시 이자를 만든다.

  자본은 토지, 기술, 노동 등과 결합하여 부의 증가에 기여하는데, 부의 증가분의 일부는 곧 자본의 생산물이므로 이자는 자본의 생산물 중 일부의 분배를 의미한다. 다만, 이자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아닌 경쟁의 법칙에 지배받는다. 이자는 토지 사용에 따른 지대와 마찬가지로 자본의 독점적 소유에 대한 경쟁의 보상이다. 자본의 교환이 있으려면, 먼저 자본의 소유가 있어야 하고, 그 전에는 자본을 소유하기 위한 경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의 뇌 구조가 지금과는 전혀 달라서 그 누구도 소유의 개념을 알지 못하는 세계라면, 또는 자본이 무한하다면, 자본을 소유하기 위한 경쟁과 교환가치는 있을  없고 이자라는 개념 또한 없을 것이다.


부의 증가분의 일부

= 자본의 생산물

= 부의 증가에 기여한 자본의 대가 + 자본의 독점적 소유에 대한 보상(자본의 영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


  따라서, 이자는 자본 소유의 경쟁에서 계속 승리한 상태로 남아 있게 해주는 원칙, 즉, 자본의 영속성을 전제로 파생되는 보조 가치이며, 자본의 가치를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는데 필요한 유지비용의 성격을 가진다. 또한 많은 경우 부의 증가에 기여한 자본의 대가도 일부 포함한다.

  부가 증가할 때, 만약 자본의 기여도가 0%라면 이자는 시간에 따라 변할 자본의 가치를 유지하게 해주는 비용으로 국한될 것이고, 자본의 기여도가 100%라면 이자는 그 유지비용에 더해 부의 증가분의 전부를 포함할 것이다. 물론, 후자의 경우에는 자본 수요자에게 돌아갈 부의 증가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자 = 자본의 독점적 소유에 대한 보상 + 부의 증가에 기여한 자본의 대가(자본의 기여도가 0~100%일 때, 0~100%)



2. 정당하지 않은 부분

 그런데 현행 정치경제학에서는 이자를 자본의 시간 가치와 위험부담에 대한 보험금의 성격으로 간주한다. 자본을 빌려주지 않았더라면 평균적으로 얻었을 부의 증가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가하며, 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화폐 가치의 급격한 추락에 미처 대응하지 못해서 생길 예비적 위험은 현재 시점에 보상받아야 마땅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자본집약에 대한 사회 전체의 염원만 부추길 뿐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경제적 현상이 모두 논리적으로 작동할 수는 없지만, 불공정은 바로 잡아야 한다.


  자본 거래에 참여하는 어느 누구도 직관적으로 시장의 평균적인 수익에 기여하는 자본의 기여도를 알 수 없고, 권위 있는 지표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지표가 거래의 특수성과 자본 수요자의 생산성을 일일이 반영할 수는 없다. 게다가 자본에 붙는 예비적 위험을 이자에 추가로 가산하는 것은 이미 시장의 평균 수익 속에 포함되어 있는 위험부담을 또다시 중복해서 가산하는 오류에 불과하다. 상식적으로, 시장의 평균 수익이라는 것은 시장에 존재하는 모든 위험을 감안하여 최소와 최대의 수익을 범위로 계산된다. 수익은 생산활동의 결과고, 생산활동 속에는 반드시 손실, 불량, 오류, 실패 등의 위험이 들어있다. 수익은 이미 그 자체로 위험을 부담하여 생산활동을 완성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위험을 부담했으므로 수익 안에는 위험부담에 대한 보상이 이미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시장에서 공급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헤게모니는 이러한 논리적 사실을 부정하고 자의적으로 이자율을 조정한다. 경기가 나쁘면 이자를 올리고, 경기가 좋으면 올렸던 것의 반 미만으로 이자를 내린다. 가끔 확장적 제정 정책에 봉착해 일시적으로 마이너스 금리에 굴복할 때도 있지만, 다음 주기 때 일시적으로 위험률을 올려 손해분을 복권한다.

  경기가 나쁘면 시장의 평균 수익률이 당연히 낮아지므로 적어도 기회비용으로 할당한 이자의 상당 부분은 낮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본의 거대 파이프는 거꾸로 작동하고 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이자에 위험을 중복해서 가산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높은 이자를 정당화하는 훌륭한 명분이다. 불경기라서 자본 회수가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되면, 대출 조건을 까다롭게 하거나 만기일을 줄이거나, 극단적으로는 임시휴업을 하면 된다.

  그러나 상황은 정 반대다. 불경기가 되면 자본 경색에 시달리는 수요자들은 어쩔 수 없이 대부의 족쇄를 찰 수밖에 없다. 호경기로 돌아서고 다시 불경기가 올 때까지 실물 경제의 일부를 자본가에게 계속 상납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약점을 교묘히 파고들기 위해 자본시장은 불경기가 와도 서민금융을 내세우며 대출에 열을 올린다. 불경기는 자본이 부족해서 오는 게 아니라 자본이 제대로 분배되지 못해서 온다는 공공연한 비밀이 그들에게는 영업전략이, 서민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되는 것이다. 자본은 늘 넘쳐흐른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현행 체제에서 이자는 경제적 형평성과 맞지 않는 방향으로 왜곡되어 있다. 이자라는 개념은 부의 증가가 발생하는 유동적인 가치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요소지만, 교환 가치의 평형을 이루려면 우선 이자를 기회비용으로 인식하는 관습부터 버려야 한다. 이자는 자본의 영속성을 보장하는 유지비용에 더해 부의 증가에 기여한 자본의 열매 정도면 아주 충분하다. 이자를 기회비용의 일부로 인식하는 것은, 자본 수요자의 생산활동에 자본 공급자가 직접 참여하여 수익을 추구한다고 보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지 않다. 자본의 기회비용적 성격을 이자로 대체하기 원한다면 자본 공급자의 소득을 비생산 활동이 아닌, 생산활동의 결과로 인식하고 그에 걸맞은 세금을 부과해야 논리적으로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자에 포함되어 있는 위험률을 삭제해야 한다. 기회비용에 따른 시장의 평균수익 속에는 이미 시장의 평균위험이 들어 있다. 위험과 수익을 구분하는 포트폴리오 관점은 내부수익률이 존재하는 투자 대상 사업에만 유효하다. 젖소에게 토끼의 번식력을 요구하거나 농부에게 재봉틀을 준다고 해도 근본적인 속성에는 변함이 없다. 다른 것은 다르게, 같은 것은 같게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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