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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재 Dec 07. 2022

피카츄의 추억

때는 바야흐로 2019년 어느 평범한 마라톤 대회,


피카츄 탈을 쓰고 5km를 완주하면 자그마치 3만 원이나!.. 알바비를 준다기에.. 자본주의에 눈먼

나는 온몸을 땀으로 적시며 달리고 또 달렸다.


피카츄를 좋아하는 우리 1020 여러분은 뛰는 내내 내 주변을 맴돌았다. 그리고 그들의 수다도 들렸다.


"피카츄 졸귀ㅋㅋㅋ"

"남잔가봐? 피카츄 개잘뛰어ㅋㅋㅋ"

"팔 봐봐 개귀여웡ㅋㅋㅋ"


그래 너네들은 웃어라. 나는 겨우 1km를 지난 시점부터 호흡 곤란과 지독한 더위로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처음 1km 정도는 팔도 귀엽게 흔들고, 엉덩이도 씰룩 거리며 쇼맨십을 발휘했지만, 남은 4km는 웃음기 싹 빼고 죽음의 레이스를 펼쳤다. 묵직한 탈의 무게에 짓눌려 다리는 이미 천근만근이었고 입에 난 작은 구멍으로 간신히 숨을 내쉬었다.


눈부신 겨울 햇살을 맞으며,

노랗고 귀여운 피카츄는 아장아장 열심히 달렸지만,

피카츄의 탈을 쓴 어느 시커먼 아저씨는 오만가지 인상을 찌푸리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그 아저씨를 둘러싼 6명의 10대 소녀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뛰는데..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었다.


그리고 왜 자꾸 내 꼬리를 잡아당기는 지.. 아 맞다. 내 꼬리는 아니지. 어쨌든 나는 너무 힘든 나머지 누군가가 내 꼬리를 잡아당길 때마다 몸을 옆으로 돌려 짧은 팔을 휘두르며 거부의 의사를 밝혔다.

근데 그 몸짓이 귀엽게 보여서였을까, 소녀들은 까르르 웃으며 더욱더 내 꼬리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오 제발! 아저씨 너무 힘들어 얘들아.. 오우 제발! 당장이라도 탈을 벗고,


"야 너 멈춰봐! 왜 자꾸 내 꼬리를 잡아당기는 거야?!"


라고 근엄하고 진지하게 화를 내고 싶었지만, 소녀들의 해맑은 동심은 지켜줘야 했다. 왜냐하면 나는 피카츄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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