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은 힘든 운동이다. 하지만 누구나 잘할 수 있는 운동이기도 하다. 호모 사피엔스라면 마라톤을 잘할 수 있다. 왜? 호모 사피엔스이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에서 가장 오래 달리는 동물인 이유
ㆍ수평 점유면적이 좁을수록 에너지 효율이 좋다. 인간은 땅에 두 발로 선다. (가끔 만취하면 네 발로 설 때도 있지만 어쨌든)네 발로 땅을 딛는 다른 동물들보다 에너지를 많이 아낄 수 있다.
ㆍ몸에 털이 별로 없다. 털이 없을수록 체온 조절에 유리하다. 달릴 때는 체온이 많이 높아지는데 체온이 높을수록 더 달리기 힘들다. (그래서 브라질리언 왁싱까지 하면 더 잘 달릴 수 있고, 특히, 대머리가 더 잘 뛸 ㅅ).
ㆍ달릴 때 팔을 흔들어서 몸통의 회전력을 상쇄한다. 뛸 때 흔들리는 몸통은 에너지를 많이 잡아먹는다. 사람은 팔을 흔들어서 다리에서 몸통으로 전해지는 회전력을 거의 다 상쇄하는 패시브 스킬을 가지고 있다.(그리고 가끔 방귀를 꾸면 추진력도 얻는다).
ㆍ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 적당히 힘들면 겨우 30km밖에(?) 뛰지 못하는 야생마에 비해 사람은 50km 정도는 뛸 수 있다.(물론 다음날 못 일어날 수도 있다) 심지어 물과 식량만 있으면 1,000km 이상을 이동할 수도 있다. 사람은 무서운 동물이다.
ㆍ진화의 스킬 트리를 보면, 사람은 힘을 포기하고 지구력을 선택했다. 속근보다 지근이 많다. 훈련으로 힘을 기를 수는 있지만 올림픽 선수조차 다른 포유동물의 평범한 힘을 이길 수는 없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지구력 때문이다. 사실 자연에서는 지구력이 깡패다.(나는 사람이다. 고로 깡패다).
ㆍ사람의 발바닥을 보면 가운데가 움푹하게 파여있다. 이것을 족궁이라 하는데, 이 덕분에 착지 시 지면으로부터 얻는 충격을 반발력으로 전환할 수 있다. 족궁이 없는 평발이 오래 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이봉주 선생님은 자기가 평발인지는 알았으나 평소 '달리기랑 평발은 별로 상관없지 않나?'라고 생각했고, 정말 상관없게 된 전대미문의 전설적인 선수다). 고양이나 강아지의 발바닥이 귀엽기는 하지만 그런 귀여운 발로는 결코 오래 뛸 수 없다!
ㆍ사람은 혼자 뛸 때 보다 여러 명이서 같이 뛸 때 훨씬 오래 뛰는 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아직 과학적으로 밝혀내지 못했다. 많은 과학자들이 '그냥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멀리 가려면 같이 가고, 더 멀리 가려면 여러 명이서 같이 뛰면 된다.(이걸 알고 있는 나는 혼자 뛰더라도 옆에 지나가는 자전거를 쫓아가곤 한다. 자전거 타는 아저씨가 긴장한 얼굴로 힐끔힐끔 나를 째려보지만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