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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Aug 08. 2023

나의 하루

주저흔#7

영원히 끝나지 않는 하루. 하루와 하루가 이어져 반복되는 시간에 갇힌 채 다시 아침이 찾아왔습니다.

수능을 마친 친구들은 성인이 된 것을 축하했고 대학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지만 저는 그들 틈사이에 끼어들지 못했습니다. 종종 성인이 된 저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습니다. 딱히 대단하고 신나는 일이 벌어질 거라는 기대를 가진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자기 파괴적인 모습은 상상도 해보지 못했어요. 성인이 되던 해에 우울증 약을 먹으며 방에 스스로를 가둔 아들을 보는 부모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엄마가 장을 보고 오시는 길에 우편함에서 어떤 봉투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제 방에 던져놓고는 문을 닫으셨죠. 하얀색 봉투. 이번엔 국세청에서 아버지 앞으로 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모에게 빌붙어 기생충처럼 사는 저 같은 놈도 성인이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해 주는 건지 병무청에서 게 병역판정검사서를 보내온 것이었죠.

처음엔 군입대에 대한 두려움이 먼저 밀려들어왔습니다. 방문밖으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는 겁쟁이인 제가, 위계가 엄격한 군대에서 단체생활을 할 수 있을지 판단이 서질 않았습니다.

"저건 아들이 아니고 원수야, 원수!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엄마는 설거지를 할 때마다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어찌 보면 지금 이 한 장의 우편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제 굴레끊어줄 수 있을까요. 어떤 것이든 간에 지금 이 영원한 하루를 잠시라도 끊어줄 만한 것이 필요했습니다.

교복을 벗어던질 땐 기분이 홀가분했지만 여느 청춘 드라마처럼 낭만 있게 막이 내리는 건 아니었습니다. 삶은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이어졌고 이것은 현실이었지요. 교복을 입고 지나가는 또래 친구들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마저 들 줄은 몰랐습니다. 제도권에 소속되어 사는 것이 왜 속박이라고만 생각했을까요. 그것이 저를 보호해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왜 그땐 해보지 못했을까요. 중심에서 벗어나서 매일 주변만 둥둥 떠다니는 인생. 불안했고 외로웠습니다. 의지할 곳도 없습니다. 저는 다시 어딘가에라도 소속되고 싶어 졌습니다. 군복 사진을 인터넷에 검색했을 때, 저도 저 옷을 입고 사람들과 섞여 제 사회생활의 첫 발을 떼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현역은 안 되겠는데요."

신체검사를 받고 결과를 들으러 민원 창구로 향했습니다. 제 신체는 정상이었죠. 제 마음은 뭉그러졌지만 제 신체는 건강했습니다. 시력도, 내장기관도, 허리나 팔과 다리도 모두 정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입대가 안된다고 하는 것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어요. 혼란감에 머뭇거리던 그때 창구 직원이 모니터를 홱하고 제 쪽으로 돌렸습니다.


4급 판정 (학력미달)


"최종학력이 중졸이시죠? 중졸은 현역입대 안 돼요. 공익 가셔야 돼요."

"왜요? 신체가 이렇게 건강한데도요?"

"규정이 그래요, 규정이. 총을 만지고 군사훈련을 이행할 만큼의 기본적인 교육이 안 됐다고 판단하는 거죠."

총을 잡을 만큼의 기본교육에 미달됐다니,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이 부러운 표정으로 저를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전 그들과 다른 처지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때 모니터에 '학력미달'이라는 단어가 왜 그렇게 크게 보였는지 모르겠어요. 

"방법이 없을까요?"

남들은 그렇게 가기 싫어하는 게 군대인데, 가고 싶어 안달 난 사람처럼 애걸복걸하는 제 모습을 보고 창구직원이 신기한 듯 쳐다보며 입을 열었습니다.

"아직 입대확정 난 것은 아니니까 내년 초까지 검정고시 합격하면 자격이 되니까요. 그때 지원하면 신분이 바뀔 거예요."


처음으로 어떤 목표란 게 생겼습니다. 절실함을 가미할 정도의 목표는 아니지만, 어차피 검정고시는 넘어야 할 산이였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시간을 앉아있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던데, 왜 이렇게 한 시간 이상 앉아있는 것이 힘이 들까요. 초등학교 교재를 구입해서 잊었던 구구단을 외우고, 나누기, 분수 같은 것을 암기했습니다. 학교를 다닐 때도 암기를 잘하지 못해서 '나머지 교실'에 단골손님이 저였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일주일, 그렇게 한 달, 결국 전 하루 세 시간씩 책상에 앉아있을 수 있게 됐습니다. 시험일정을 꼼꼼히 확인하고 시험날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시험당일은 이상하게 긴장이 되지 않았어요. 사실 촉박한 시험시간에 쫓겨 어떤 답을 기재하고 나왔는지도 잘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시험장 앞에는 검정고시 학원 선생님들이 합격기원 플래카드를 들고 서계셨어요. 잘 봤냐는 물음에 머쓱한 웃음으로 답변하고는 시험장을 빠져나왔습니다. 

합격자 발표날, 저는 불합격 통지를 받았습니다. 함께 검정고시 학원을 다니던 친구들은 그날 모두 합격해 나갔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학원에 나가지 않았어요.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더 이상 학원에 남아있지 않았거든요. 상대적인 박탈감이 또다시 저의 세계에 엄습해 왔습니다. 그들이 너무 부러웠어요. 이제 어디 가서도 당당하게 '고등학교 졸업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잖아요. '중졸'이라는 두 글자가 마치 제 이마에 새겨진 것처럼 전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한 달 동안 전 다시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그해 하반기에 한 번의 기회가 더 있었습니다. 방에 누워 있으면서도 틈틈이 문제집을 펼쳤습니다. 남은 6개월의 시간, 다시 한번 하루 세 시간씩 책상에 앉았습니다. 다시 한번 더, 시험일정을 꼼꼼히 확인했고 시험날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시험당일은 그때와 같이 긴장되지 않았어요. 시간에 쫓겨 무슨 답을 기재하고 나왔는지 잘 기억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였어요. 학원 선생님들의 잘 봤냐는 물음에, 환하게 웃음으로 답변하고 시험장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결국 전 검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학교를 뛰쳐나와 검정고시 학원을 등록한 지 4년 만이었죠.

그 이후, 곧바로 저는 병무청에 지원서를 다시 작성했고 현역입대가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때 전 제 자유를 포기함으로써 저를 옳아메는 '학력미달'이라는 구속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합격자 발표날 흘린 눈물은 그동안 후회와 좌절로 인해 흘린 눈물보다 더 따뜻했어요. 물론 군대에 입대하고 백 번 천 번 후회를 했지만요. 처음으로 제 손으로 무언가를 이뤘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두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뭐든지 흐르는 대로 두라.'라고 말합니다. 모든 건 정해져 있다고. 물론 우주의 관점에선 저의 이 작은 발버둥조차 하찮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 이 흐름에 저항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을 이겨냈던 그 순간. 


심리학 용어 중에 '자기 효능감'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기대와 신념


누군가에겐 사소한 행위일 수도 있겠지만 저에겐 아주 큰 도약이었어요. 그때의 일은 제 인생 처음으로 '자기 효능감'을 높여 주었습니다. 사소한 행위라도, 작은 성취라도, 반발자국이라도 나아가는 경험, 그 경험은 저처럼 절망에 빠져들어 허우적 되는 사람들에겐 꼭 필요한 작업임은 분명합니다.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이러한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아무것도 없는 삭막한 폐허 같은 제 인생에 작고 푸른 씨앗을 하나 심어 놓고 있었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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