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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Aug 22. 2023

바로 '지금'입니다

주저흔#14

  음 깊숙한 곳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따끔거리던  하나 있습니다. 저로 인해 가족들이 흘린 눈물이 제 마음에 흉터처럼 남아있습니다.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방황했 제 모습을 보며 가족들의 가슴에도 진한 칼자국이 새겨졌습니다.


"버지와  이제 바라는 거 없어. 우리 아들이 그 시커먼 방에서 불 켜고 나와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거야. 돈이나 능력이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 다시... 그로 돌아가지만 않는다면, 우린 더 바랄 것이 없을 거 같아."


엄마의 눈물과 아버지의 땀이 모두 제 마음 한편에 고스란히 고여 있습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꺼내보려고 부모님의 이 말씀을 제 마음속에 고이 간직해 두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정말 좋아하셨겠어요."

상담사는 제가 은둔을 끝내고 세상으로 나온 것이 마치 지금 벌어진 일인처럼 좋아해 주었습니다. 마음의 포옹이 있다면 이런 장면이 아닐까요. 괜찮다고. 다행이라고. 위축돼있는 저의 과거를 꼭 안아주는 거 같았습니다.

"만약 현재의 선생님이 과거로 돌아간다면 엇을 바꾸고 싶으세요?"

상담사 물었습니다. 후회의 눈물이 아직도 제 가슴에 고여있다는 저의 진술이 그녀의 질문을 이끌어낸 듯했습니다. 만약 지금 당장 타임머신을 탈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고 싶냐는 그녀의 물음에, 제가 대답했습니다.

"과거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너무 끔찍해서 상상도 하기 싫네요."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저는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되돌리고 싶어 했습니다. 잠시 과거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무엇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 모든 걸 다시 겪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순간 몸서리가 쳐졌습니다. 

"제가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저 끊임없이 몸부림치며 살았을 거 같습니다. 공사장에서 일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어요. 그때로 돌아간다 하도, 더 나은 선택지가 생각나지 않아요. "

그때 저의 선택은 '약점을 향한 직면'이었습니다. 저의 가장 약한 부분,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은 상처, 그것은 바로 공부에 대한 한이였습니다.


일단 일을 하면서 대학에 다닐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섰습니다. 퇴근 후에 노트북 앞에 앉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돼버렸죠. 일을 마치고 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 모든 대학의 리스트를 메모했습니다. 틈이 날 때마다 입학처에 전화를 걸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방에 누워 대학교 홈페이지도 새벽까지 둘러보았죠. 그러자 그리 어렵지 않게 직장인들을 위해 야간에 대학수업이 개설된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일과 대학 중에 무엇을 선택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꽤 오래 하고 있었거든요. 다시 한번 생각이 많아질수록 늘어나는 건 걱정과 불안뿐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일과 대학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었는데 뭔 쓸데없는 생각만 그렇게 오래 품고 있었는지, 허무한 생각마저 들더라고요. 망설임 없이 입학원서를 적어 내려갔습니다. 최종학력에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 졸업'을 적어 넣는 것을 망설이던 저였지만, 그간 보낸 이력서만 수백 통이 넘다 보니 내성이 생겨났습니다. 거절에도 익숙해졌었고요.

"안녕하세요. 혹시 서른 넘은 사람도 신입생으로 지원가능한가요? 그리고... 제가 사실 자퇴하고 검정고시로 졸업을 했는데, 저 같은 사람도 지원해도 될까요?"

하지만 거절에 익숙해졌다는 허세와는 달리, 메일 본문에는 그동안의 경험들이 반영된 소심함이 여실히 드러나있었지요.

다행히 메일을 보낸 지 이틀이 지나자 한 대학 행정실에서 바로 답장이 왔습니다. 검정고시는 대한민국 고등교육법에서 인정하는 제도이고 대학입학에 지원할 수 있다고 말이죠. 나이도 전혀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칠십에 가까운 어르신도 얼마 전에 졸업을 했다고 하면서요. 그 답장에 쓰여있는 내용을 두 번 세 번 읽고 또 읽다 보니 제가 품었던 생각들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서른한 살이 뭐가 늦었다고 그리 마음을 옹졸이고 있었을까요. 아마 그 어르신이 제 마음을 아셨다면 '한창 젊은 사람이!'라면서 등짝을 한대 치셨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원서를 넣고는 최대한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실망이 클까 봐요. 하지만 가방을 메고 캠퍼스를 지나 강의실에 앉아있는 제 모습을 상상만 해도 기분이 설레지더라고요. 상은 점점 깊어지더니 어느새 졸업식에서 학사모를 부모님께 씌워드리고 사진을 찍는 모습까지 이어졌습니다. 동안 수십 번의 채용 면접 때 이놈의 학력 때문에 얼마나 마아파했습니까. 게 모르게 상처도 많이 입었잖아요. 그 굴레를 끊어내고 싶은 갈망에 결국 '기대는 하지 않겠다.'라는 다짐은 지키지 못했습니다. 발표일자가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괜히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제 원서번호를 검색하고 혼자 마음 졸여했거든요. 

기대가 크면 물론 실망도 크겠지요. 하지만 실망할까 봐 기대하고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고 산다면 그것 또한 실망스러운 삶일 것입니다.


기다리던 대학 입학자 발표날이 됐을 때, 하필 그날은 기다란 철근 수십 개를 높은 곳에 옮기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네 명이서 10m나 되는 휀스와 현수막을 옮기고 철판에 나사를 박아 고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휴대폰을 확인할 수 없었어요. 마음이 초조해져 갔습니다. 그러다 누군가 "딱 10분만 쉬다 다시 모이세요."라고 했고, 전 그 소리를 듣자마자 목장갑을 벗어던지고서는 핸드폰을 확인했습니다.


'합격 통지서

입학을 축하합니다.'


순간 소리를 질렀습니다. '입학을 축하합니다.'라는 글자를 보자마자 가족들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타임머신이 나오는 영화에서처럼 다시 과거로 돌아가 잘못 끼운 단추를 다시 바로 맞춰 끼운듯한 기분이었어요. 내가 대학생이라니. 빨리 집에 가서 이 소식을 가족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 물론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대학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인재들은 넘쳐나고 학사학위가 취업을 보장해 주는 시대도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낮엔 몸을 쓰는 노동을 하고 밤엔 수업을 들으러 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요. 그런데 왜 그렇게 대학에 목을 맸냐면요. 저에게 대학입학이라는 것은 취업이나 성공의 루트가 아니었습니다. 바쁘게 살면서 어떠한 것에 몰두한다는 것은 제가 더 이상 무망감에 빠지지 않게 할 강력한 안전장치였고, 제 부정적이고 나태한 과거와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증표이기도 했으니까요.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마다의 적절한 순간이 있다는 것에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물에 사는 물고기와 육지를 걷는 노루의 생애가 같을까요? 새는 부리를 이용해 먹이를 먹고 육식동물은 강력한 턱과 이빨을 사용해 먹이를 먹습니다. 뱀은 기어서 가고 토끼는 뛰어서 가며 독수리는 날아서 갑니다. 가는 방법과 속도가 다를 뿐 결국엔 우리는 모두가 목표지점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다 때가 있다고요?

그렇다면 저의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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