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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Aug 21. 2023

서른하나, 너무 늦었다고 생각한 그때

주저흔#13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져 내린 다음날, 저와 동료들은 어김없이 공사현장을 찾았습니다. 1톤 트럭에 실어놓은 전동드릴과 망치, 공장에서 미리 용접휀스를 장에 내려놓고 공 전 안전교육을 받았습니다. 안전모와 안전화, 발목 각반은 잘 착용했는지를 체크하고 도시 파트 단지 장에 발을 딛었습니다. 햇빛은 쨍했지만 전날 비가 많이 내린 터라 현장의 모래바닥이 꾸덕해져 물건을 등에 짊어지고 움직이기가 영 불편했습니다.

우리 팀은 다양한 곳에 시공을 나갔습니다. 아파트, 공공기관, 학교, 공항 등 안전시설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럭을 몰고 갔습니다. 10km의 공항 도로에 안전 표지판을 50m 간격으로 100개를 설치하는 작업을 한 달 동안 진행한 적도 있었습니다. 군대에서 경험한 지옥행군이 제 임계점이라 생각했는데, 그날 이후 제 임계점은 산에서 공항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극한의 체력이 요구되는 일이었습니다.

한 번은 대학교에 학생 체육센터를 리모델링하는 현장에 도착한 적이 있습니다. 현장에 나간 지 1년 정도 되다 보니 저도 현장에 조금씩 스며드는 것 같았. 처음엔 작업복도 어색했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인부들과 달리 저는 우왕좌왕하며 어색하게 서있었거든요. 이제는 드릴질과 못을 박는 일도 어느 정도 자연스러워졌습니다. 헐렁이던 안전모가 눈앞을 가려 어리바리 뛰어다니던 모습을 어느 정도 벗어낸 것이죠. 같이 고생하고 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과 꽤 정 붙어서 이런저런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와 살아가는 이야기도 하게 됐습니다.

샤워를 마친 우리는 야외 작업장 한쪽 바닥에 신문지를 여러 장 깔았습니다. 철판 위에 올라간 삼겹살이 노릇한 색을 띠었습니다. 종이컵에 든 소주는 미지근했지만 바깥공기가 섞여서인지 꽤 달게 느껴졌어요.

"올해 나이가 몇이랬지?"

제 나이 서른하나가 됐다는 말에 그들은 일제히 결혼에 관한 주제를 꺼냈습니다. '결혼은 빨리해야 된다.' '아니다. 결혼은 최대한 천천히 해야 한다.' 의견이 갈렸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로 결혼시기에 대한 적정선에 대해 갑론을박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이제 처음으로 사회에 발을 내디딘 저에게 결혼은 다른 세상사람들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엔 버스를 타 창문에 기대 지나가는 풍경들을 한없이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차들과 건물들. 저 수많은 차와 집들 모두 주인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도 언젠간  명의로 된 무언가를 소유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수억 대를 호가하는 아파트와 주택을 살 엄두는 해보지 않았습니다. 결혼이라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마 저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사람들이 결혼과 아파트시세를 동시에 떠 올릴 거라 생각합니다. 유아기에서부터 청소년기를 거치는 성장과정에서 경제적인 문제가 삶에 얼마나 많은 관여를 하는지 학습해 온 덕분이겠지요.

어린 시절에 몇 번의 스쳐 지나가는 인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하트모양처럼 아름답지 않았고 감정 간의 교류에는 그에 따른 책임이 따라왔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그 감정을 책임질 정서적 에너지도 현실적인 능력도 없었습니다. 

타인과 비교도 참 많이 했습니다. 정확히는 비교도 많이 당했죠. 비교는 일방적이지 않고 양방향에서 일어났습니다. 비교당하지 않기 위해 열등감을 숨겼고, 비교하며 자책하지 않기 위해 피해의식을 감췄습니다.

친구가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을 때, 친척동생이 누구나 알만한 기업에 취업을 했을 때, 엄마 친구분의 아들이 결혼했을 때, 신혼집을 매매하고 집들이에 초대받거나 돌잔치에 참석했을 때, 그때마다 저는 바짝 움츠렸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경사에 고통받는 위치에 있는다는 건 참 괴로운 일입니다. 


다음날도 그 대학을 찾았습니다. 작업이 어느 정도 끝나고 해가 뉘엿해지면서 세상을 황금빛으로 물들인 시각. 철근과 시멘트벽에 페인트칠만 하면 하루 일과가 마무리겠네요. 직 페인트칠은 손에 익지 않았는지 리카락과 작업복 곳곳에 페인트가 묻었니다. 하지만 얼른 을 마치고 따스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은 생각에 음이 급해집니다. 하늘이 어둑해지고 학생들이 학교 건물에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때  옆을 지나가던 학생들에게 자꾸 눈이 가더라고요. 전공 책을 옆에 끼고, 과잠바를 입고, 캠퍼스 잔디옆을 지나가던 학생들, 누군가는 벤치에 앉아서 도시락을 먹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도서관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전 페인트 롤러질을 멈추고 그들의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봤습니다.


나도 다시 한번, 공부해보고 싶다.


이것도 또 비교하는 제 고질적인 습성이 튀어나온 걸까요? 그 학생들의 걸어가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습니다. 검정고시 학원 책상에 앉아본 것이 뒤돌아보니 벌써 10년도 넘었네요. 쉬는 날 점에 가서 전문서적 코너에 서성이며 책을 뒤적여보던 날들도 있었는데, 아마 제 마음 한편에 해결하지 못한 채 지나온 열망 하나가 고개를 내밀지 못하고 움츠리고 있었나 봅니다. 


페인트 도구들을 럭에 실어 날랐습니다. 저는 차에 올라타 한동안 시동을 걸지 못했어요. 지나간 날들을 떠올리다 보니 눈물이 뚝하고 떨어졌습니다.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불쑥 올라오더라고요. 왜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을까요. 그것도 아마 주변과 비교해서 그런 것이겠지요. 심지어 서른한 살의 나이에 무언가를 도전한다는 것이 애처롭고 처절해 보인다는 어리석은 생각도 가슴속에 스며듭니다. 우아하게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요. 발버둥 치며 숨을 헐떡이며 뛰어가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였을까요.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차피 인생 바닥을 쳤다. 남들보다 10년을 늦든, 20년을 늦든 무슨 상관인가. 삶을 포기하려고도 했던 놈이 남들보다 늦는다는 걸 뭘 그리도 두려워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교를 멈추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남들의 삶과 비교하는 것이 아닌, 제 자신의 과거와 비교하기로 했죠. 모든 걸 포기한 채 방에 누워있던 과거에 비하면 금의 제 모습은 꽤 만족스러웠거든요. 


다시 한번 책가방을 메고 수업을 듣는 제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습니다. 그리고 방법을 찾아 나섰습니다. 살면서 뭐든지 쉽게 되는 일은 없었죠. 군대를 입대하려면 고등학교 졸업장이 필요했었고 고등학교 졸업장은 시험에 통과해야지 주어졌으니까요. 그래도 결국 다 해냈잖아요. 이번에도 분명 길이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보이지 않는 것'에 참 많이 매달렸던 거 같습니다. 저를 괴롭혔던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불안'이었고, 결국 다시 저를 일으켜 세운 것도 만져지지 않는 마음속 '믿음'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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