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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Aug 16. 2023

괜찮지 않다

주저흔#12

괜찮지 않다.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는 책을 읽다가 저도 모르게 이 말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도 괜찮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그래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까.


책에 나오는 위 구절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내뱉은 말입니다. 이 글귀는 현재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용기를 주는 문장이었지만 제 마음은 깊게 가라앉았습니다. 저에겐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라고 생각 들었기 때문입니다.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 수만 시간을 들여 노력하고 자신을 희생하며 사회에 일조한 사람들, 저 글귀는 쉴 틈 없이 살아온 그런 사람들에게 주어진 보상이자 권리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누군가 저에게 "이봐요. 정말 괜찮습니까? 정말 이대로도 괜찮은 거 맞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목에 힘을 주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아니요! 전혀 괜찮지 않습니다. 전 변화하고 싶습니다."


당장 일을 해야 했습니다만, 이뤄놓은 것 없이 삼 심대가 되어버린 저를 세상이 어떻게 바라볼지 두려웠습니다. 이력서를 적어 보낸 백여 개의 기업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고 두세 곳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 했지만 날카로운 질문들은 저를 바짝 움츠리게 만들었습니다.

학교는 왜 그만뒀으며, 대학 왜 나오지 않았고, 서른이 될 때까지 일은 왜 하지 않았냐는 질문들. 자격증이나 토익점수는 왜 없는지에 대해 해명만 잔뜩 늘어놓다가 집으로 돌아오기 일쑤였습니다. 지하철 플랫폼에 앉아서 빠르게 걸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봤습니다. 다들 어디를 향해 가길래 저렇게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까요. 정장을 입고 테이크아웃 커피 한잔을 마시며 걸어가는 모습이 왜 이렇게 멋있어 보였던 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던가요. 드디어 한 곳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화훼단지 옆 골목에 위치한 작은 공장. 그곳은 건설현장에서 쓰는 안전용품을 제작하고 설치해 주는 업체였습니다.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참 많이 도망쳤어요. 하지만 이번만큼은 1년은 꼭 넘겨보리라는 각오로 작업복을 입고 공장으로 출근했습니다.


공장은 생각보다 넓었습니다. 녹슨 용접기 옆에 동그란 쇠파이프 수백 개가 피라미드처럼 쌓여있었습니다. 철이나 쇠 따위가 바닥에 부딪혀 시끄러운 소리가 났습니다. 용접헬멧을 쓴 공장장의 머리 옆으로 금색의 불빛이 사정없이 뿌려졌고 그 옆으로 큰 트럭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었습니다. 그때 태국 청년 서너 명이 저를 보며 손을 좌우로 크게 흔들었습니다. 저를 이렇게까지 반겨주는 그들에게 잠깐 고마웠지만, 그 손짓은 저를 반겨주는 것이 아니라 큰 차가 들어오고 있으니 비켜서라는 신호의 손짓이었습니다. 쭈뼛대는 제 모습을 보며 자신을 과장이라고 소개한 남자가 제 손에 삽 하나를 쥐어줬습니다.

"반가워요. 일단 오늘은 간단한 작업만 하고 끝나고 이야기 나눠요."

삽을 건네받은 제 앞에는 자갈이 제 키만큼 쌓여있었습니다. 첫날은 자갈더미를 삽으로 퍼 트럭 뒤에 담는 것이었습니다. 그늘 하나 없는 뙤약볕에 여덟 시간을 같은 행동을 반복하니 명치에서부터 신물이 올라오는 것 같았습니다. 자갈더미 깊숙이 삽을 집어넣을 때마다 흙먼지가 속눈썹에 가득 달라붙을 정도로 흩날렸습니다. 지만 이젠 절대로 뒤로 숨거나 포기하지 않기로 다짐했잖아요. 더 이상 도망칠 곳도, 뒤로 물러날 곳도 없었으니까요. 그 끔찍한 웅덩이로 다시 들어가는다는 건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소외당하고 무시당하고 사람취급받지 못하는 그 기분을 다시 느낀다면 전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았거든요.


일이 끝나면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었습니다. 허리도 아지만 철근을 나르고 못질을 하느라 하루종일 손목이 욱신거렸죠. 그래도 조금씩 일을 배워가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전동 드릴로 벽을 뚫고 줄자를 이용해 중심을 맞췄습니다. 그라인더로 철근을 잘라 틀을 만들 페인트 칠을 입혔고요. 그때 제 목적은 일을 배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씻고 잠드는 행위들, 인간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생활양식을 배워나가는 것이 주목적이었습니다. 그렇게 육 개월이 지나자 십 미터나 되는 큰 간판도 혼자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저기 멍도 들고 튀어나온 철조각에 손바닥이 긁혀 찢어진 적도 있었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육 개월 이상했다는 것에 뿌듯한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태국국적의 년들은 숙소에서 생활하며 일을 습니다. 심시간이 되면 철근을 묶었던 밧줄로 선을 그어 족구를 찼습니다. 그들은 저와 태국의 한 남자가수와 닮았다며 웃으며 맞이해 줬습니다. 도 어설프게 배운 태국 인사말을 건네며 고개습니다. 정을 부양하기 위해 몸으로 타국에  사람들. 그들의 짊어지고 가는 생의 무게는 제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었습니다.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외한 모든 수입을 가족에게 송금하고도 생계를 위해 다시 치열하게 뛰어가는 그들을 보면서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참 많이 배웠습니다. 보다 나이도 어리고 키도 작았지만 부단히 도 살아가는 그 모습 보니 들의 모습이 정말 커 보이더라고요.

며칠은 그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태국요리 특유의 향신료 냄새에 어느덧 저마저 적응해 버렸죠. 한 명이 요리를 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은 기타를 잡았습니다. 그들은 음악을 참 좋아했습니다. 수준급의 기타 반주에 제 어색한 랩을 집어넣으니 우스꽝스러운 합주곡이 탄생했.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기타를 내려놓은 그 남자는 안주머니에서 사진을 한 장 꺼내 저에게 내밀었습니다. 아내와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어요. 참 예쁜 가족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소매를 걷어올리고는 자신의 알통을 보여주더니 "패밀리, 힘내야돼요."라고 얘기했습니다. 족을 부양하기 위한 그 남자의 사투가 마치 원단을 나르시던 아버지를 연상케 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나도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 했습니다.

  

다음날도 마찬가지로 우린 휀스를 만들고 자갈을 퍼 날랐습니다. 잠이 들 때까지 욱신거리던 제 손목도 이제는 자갈의 무게에 적응을 했나 봅니다. 땡볕에 얼굴을 다 그을려 점점 새까매졌습니다. 마치 친구들과 하루종일 뛰놀던 어릴 적 제 얼굴처럼요.

제 나이 서른이지만 저는 이제 막 세상에 발을 내디딘 사회초년생입니다. 어찌 보면 그리 대단하지 않은 하루지만 저에겐 모든 것이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마치 문명과 떨어져 살던 사람이 대도시에 처음 발을 디딘 것처럼요.

그동안 참 비교도 많이 했습니다. 이십 대 때는 대학 캠퍼스 잔디를 밟고 있는 동창의 모습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기업에 취업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식에 들어서는 모습도 부러웠습니다. 이뤄놓은 것 없이 방에만 누워있는 제 모습이 너무나도 초라해서 건강 핑계를 대고 어릴 적 함께 뛰어놀았던 동창의 결혼식을 참석하지 않았던 적도 있습니다. 열등한 제 모습이 싫어서 숨고 도망쳤습니다. 탄광의 맨 끝부분을 막장이라고 부른다죠. 제 인생도 막장에 다다랐던 것입니다.

대학원 선배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학교밖 청소년에서, 은둔형 외톨이의 삶에서 변화를 결심하게 된 어떤 큰 계기가 있었냐고요. 드라마틱한 계기는 없습니다. 현재의 상황이 너무 괴로웠지만 이 모든 걸 한 번에 뒤집을만한 대단한 능력이 제겐 없었거든요. 그저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주 조그씩 고개를 옆으로 돌려도 보고, 발을 앞으로 뻗어보기도 하고, 팔을 이리저리 휘저어보기도 한 것이죠. 


인생을 살다 보면 참 아귀가 맞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지금 이대로를 부정하고 싶을 때도 있고 애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을 때도 있기 마련이죠. 저는 이 험난한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엄청난 포부와 계획이 있어야 되는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저도 엄청난 포부와 계획을 세우느라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저 현재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그것이 아르바이트든지, 공부라던지, 쓰레기 치우 기라던지, 어떤 것도 상관없습니다. 길을 걸어야 길이 보이더라고요. 고개를 움직여야 주변도 보이고요. 멈춰 서서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습니다. 머릿속에 대단한 계획과 포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현재를 부단히 도 살아내는 사람들이 훨씬 더 크고 위대니다.


옳거나 틀린 길은 없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구부정하고 돌고 돌아가는 길이지만, 우리가 선택한 길을 올바른 길로 다듬고 만들면 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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