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밥벌이의 세상, 근데 이제 영어를 곁들인
어렸을 때 잠깐 하와이에서 학교를 다닐 기회가 있었다. 삼촌 가족이 마침 하와이에서 거주를 하고 있었고 나도 그 기회에 외국 유학을 해보자 싶어 미국으로 전학(?)을 간 것이다.
이미 중학생이던 나는 그때까지도 영어를 실제로 써본 적이 없었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한국에서 온 아이는 당연히 친구들과 섞이지 못하고 외로운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얼른 한국에 가고 싶어서 안달이었는데, 막상 한국에 돌아오니 역설적으로 하와이에서의 시간이 매우 그리웠다. 무엇보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당당히 표현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문화가 제일 그리웠던 거 같다. 그래서 나는 그후 막연히 한국 밖의 세계를 동경하면서 어른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나는 제일 먼저 교환학생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교내 교환학생 친구들을 도와주는 단체에도 가입해 활동을 했고,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끝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의 6개월은 하와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행복했고, 자유로웠다. 영어도 못하고 이동에도 제한이 있어 늘 엄마가 데려다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15살과는 달리, 성인이 되어 갔던 네덜란드에서는 전세계에서 온 친구들과 대등하게 대화할 수 있었고 내 두발로 자유롭게 유럽 각국가를 여행할 수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꼭 외국에서 일해봐야지'라는 생각을 굳힐 수 있었다. 최소한 한국에 국한된 게 아니라 글로벌한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한국에 돌아와 취업준비를 하면서도 이 일이, 이 업무가 글로벌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일인지를 주로 봤었던 거 같다.
당시 광고 마케팅 공모전에 참여하는 학회에 빠져 n개의 공모전을 경험한 끝에, 나는 광고회사 글로벌 캠페인 팀에 입사할 수 있었다. 광고에도 관심이 많았고 글로벌한 일도 할 수 있으니 모든게 수월하게 풀릴 거라 생각하며 부푼 희망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던 때가 생생하다.
그렇게 시작한 일은 재밌을 때도 있었지만 생각과 다른 부분도 많았다. 광고회사였으나 우리 팀은 광고를 만드는 '제작부서'가 아니라 '기획부서'였기 때문에 크리에이티브함 보다는 관리능력 (예산, 일정 등) 또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광고주와의 모든 의사소통) 이 많이 요구되었다.
그리고 글로벌 팀이지만 아무래도 한국회사이고 한국계 광고주를 맡았기 때문에 '글로벌 업무'라 하기엔 조금 한계가 있었다. 외국인 디렉터들과 일을 하긴 했지만 문화 자체는 그냥 한국회사였다. 무엇보다 스스로 그리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자기객관화가 빠르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문제는 내가 매일매일 8시간 이상씩 회사에 출근해서 앉아있는 것 자체가 감옥처럼 느껴졌다는 것이었다.
한번은 퇴사 후 세계여행을 다니며 향후 진로에 대해 고민하겠다고 마음먹은 후, 그걸 아빠에게 말했다가 된통 혼나버렸다. 별 수 없이 다시 울면서 회사로 향했지만 여전히 고민은 계속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명분 없이 멀쩡한 직장을 관둘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나름 꾀를 낸 것이 미국 석사 유학 (MBA)이었다. 이런 불순한 의도로 MBA를 가는 사람은 나밖에 없지 않을까. 하지만 어찌어찌 필요한 시험 성적들을 만들어 열심히 원서를 썼고 가장 원했던 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다. 시험을 보고, 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합격하기까지, 그리고 그 후에도 정말 많은 고민과 망설임이 있었지만, 결국 나는 가보기로 했다.
어차피 한국에서 계속 이렇게 만족하지 못하며 회사를 다닐 바에는, 어릴 적부터 그렇게 꿈꾸던 '외국 취업'을 해보면 좀 달라질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외국 직장문화는 한국이랑 다르다던데, 마치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기 버거워 하와이에 갔었던 그때처럼, 이번에도 어쩌면 미국 직장이 나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그렇게 나는 코로나가 창궐하던 2021년 미국 MBA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2년 간 모질고도 모진 리크루팅 (취준)의 지옥을 맛 본 끝에, 미국 취업에 성공했다.
2년 간 잠깐이지만 일에서 벗어나 학생신분이 되어 달콤함을 맛보다가, 이제 다시금 '일터' (또는 '전쟁터')로의 복귀였다. MBA라는 길고도 긴 가방끈을 탑재한 중고신입. 근데 이제 영어라는 핸디캡을 곁들인. 그 살떨리는 90일간의 미국 회사 적응기를 연재해 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