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국적 소녀 Feb 05. 2024

낯선 나라에서 일한다는 것의 무게

어느 미국 외노자의 고충

어느새 미국에서 일한지도 6개월이 지났다. 어렸을 때 막연히 가졌던 환상 때문이었을까. 나는 MBA를 거쳐 미국에 취업을 했고 왜인지 모르게 꿈꿨던 그 '파랑새'를 어느정도 충족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삶의 모든 것은 트레이드 오프 (Trade-off)라고 했던가.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해외 이직을 한 경우, 많은 사람들이 이런 트레이드 오프를 경험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오늘은 외노자의, 외노자를 위한, 외노자에 의한, 그런 글을 한번 써볼까 한다. 


필자는 한국에서 5년 반 동안 대기업 근무를 한 뒤 MBA에서 2년 공부하고 미국에서 취업을 한 케이스다. 그래서 한국회사에 비해 미국회사가 좋은 이유도 당연히 나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따라오는 어느정도의 고충이 있을 수 밖에 없는 법.

아래 세 가지로 요약해봤다.



1. 외롭다.


미국에 건너온 이후에 가끔 한국을 방문해서 가족 친지들과 친구들을 만나면, 미국생활이 '외로울 거 같다'는 반응을 정말 많이 들었다. 사실이다. 일단 이유로는 가족과 친구들의 부재가 있을 수 있겠다. 나의 삶의 대다수를 한국에서 보내며 그곳에서 쌓아왔던 관계들이 점차 옅어지고 멀어지고 희미해져가는 것을 보는 것은 은근한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의 성격도 외향성 (E)에서 내향성 (I)으로 바뀌었다. 


새롭게 쌓이는 관계가 있지 않느냐고 한다면, 나에게는 생각보다 그 부분이 어려웠다. 일단 문화적 언어적 차이가 있지만, 사실 그걸 극복하고 잘 사귀는 사람들도 주변에 보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그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고 그래서 나의 내향성이 더욱 똘똘 뭉쳐져 스스로를 더욱 고립시키게 된 거 같다. 


게다가 해외에서 만난 인연은 어느새 다들 뿔뿔이 흩어지기 쉽다는 것도 알았다. 나와 같이 미국이 모국이 아닌 경우는 많은 경우 본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고, 미국이 모국인 친구들도 미국이란 나라가 워낙 크다보니 졸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삶의 중요한 시기를 거치며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경우가 잦았다. 동부와 서부만 해도 3시간의 시차가 나는 곳이니, 사실상 다른 도시를 가면 이민을 간 정도로 거리가 멀어진다.



2. 영어, 영어, 영어


이곳에서 모든 생활과 일상이 영어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말을 안해도 알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전의 나는 이렇게까지 체감하고 있지 못했던거 같다. 이민 또는 유학에 있어서 영어 (또는 현지어)는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관계의 시작이 영어고 끝이 영어다. 


본인은 한국에 살 적에는 영어를 못하는 편은 아니었고 어릴 때 잠시나마 유학경험도 있어서인지 영어에 크게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었다. 조금이나마 객관적으로 소통하기 위해서 굳이 점수를 말해보자면 토익은 만점, 토플은 110점 이상의 성적을 받았었다. 하지만 직접 원어민들과 소통하기 시작하면 이런 점수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왜냐면 저런 점수의 기준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국어 능력시험 만점자인 외국인이 있다고 해보자. 그 사람의 한국어 수준을 측정하기 위해 그 어떤 점수를 가져와도 부족할 것이다. 왜냐면 '한국어를 잘한다는 것'은 그냥 통제된 환경에서 '말듣쓰'를 잘한다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대화하며 그 속에 담긴 문화, 정서, 유머 코드 등을 정확하고 빠르게 이해하고 알맞게 반응하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에 와서 제일 어려운 대화는 이들의 최대 관심사인 '풋볼' (미식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거나 본인들이 응원하는 스포츠 팀에 대한 이야기, 또는 미국 셀러브리티에 관한 이야기, 어렸을 때 봤던 추억의 디즈니 영화에 대한 이야기 등이었다. 모르는 이름과 모르는 영화 제목 (디즈니 영화는 뮬란, 인어공주, 신데렐라 등만 알았지 이렇게까지 다양한 몇백개의 영화가 있는줄 몰랐다), 모르는 연고지 팀 등의 단어가 쏟아질 때 그냥 맥락을 파악하기에 모든 정신 에너지를 다 쏟고 나면, 금방 집에 가고 싶어지기 일쑤였다.


일을 할 때도 처음엔 무척 긴장을 많이 했었다. 일단 각종 억양이 섞인 사람들이 정말 많았고 (남부 억양, 인도 억양, 흑인 억양...) 신경을 곤두세우고 이해하는 데만 진이 빠졌다. 게다가 나도 모든 회의에서 적극적으로 말을 하고 참여하지 않으면 '기여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가치 (Value) 를 주지 못하기 때문에, 밥값을 하기 위해서 무슨 말이든  브로큰 잉글리시 (Broken-English)로 라도 의사표현을 해야 했다. 


지금은 그래도 눈칫밥도 많이 늘고, 업무 관련 영어는 그래도 그 토픽에 대한 이해도가 있으면 잘 들리는 편이라서 리스닝에 대한 부담감은 많이 내려놓았지만 그래도 관심 없는 주제나 잘 모르는 주제가 나오면 여전히 멍때리고 하나도 안 들리는 스스로를 보면 놀라곤 한다. 근데 이건 한국어로도 비슷할 수 있겠다. 우리도 한국어이지만 관심 없거나 모르는 주제 나오면 통째로 놓치는 거랑 비슷하다. 영어는 근데 그게 더 심하다.


더 좌절스러운 것은 내가 미국에 몇십년을 산다 하더라도 절대 원어민 같은 수준의 영어까지는 도달하지 못할거 같다는 생각이다. 내가 과연 그들이 여기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문화코드, 센스 등을 완벽하게 익힐 수 있을까? 차라리 업무에서는 엑셀/PPT 쓰고 챗GPT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논리적으로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지만, 제일 어려운 자리는 팀디너 같은 곳이다. 그중에서도 예를 들면 팀디너 마치고 맥주한잔 더 하러가는 '2차' 자리 같은게 최고난이도이다. 위에 얘기한 스포츠, 대중문화 등 가볍고 재밌는 얘기가 나오는 자리일 수록 어렵다. 


진짜 미국에 한발 더 녹아들었다고 느끼는 순간은, 아마 저런 자리에서도 편하게 내 생각을 소리높여 이야기하고 그들이 말하는 연예인 이름이나 스포츠 스타 이름을 한방에 알아듣고 함께 깔깔 거리며 웃는 순간이지 않을까 싶다. 




3. 불안정하다.


신분이 해결된채로 오는 사람들에겐 해당이 안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즉, 시민권 또는 영주권을 이미 가진 채로 오는 경우라면 이런 걱정은 덜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 학생비자 (F-1)로 대학원에 왔다. MBA의 경우는 졸업 후 3년까지 일할 수 있는 STEM OPT에 분류되어, 3년까지 추가 신분처리 없이 일할 수 있고, 그 3년 동안 로터리에 응모하여 추첨으로 H1-B 즉 워킹비자를 얻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하지만 그것도 H1-B 스폰을 해주는 고용주를 만났을 때의 이야기다.


워킹비자를 얻는다 해도 6년까지 일을 더 할수 있는 자격이기 때문에, 그 사이에 또 영주권 등을 얻어 신분을 해결해야 한다.


학생비자 또는 워킹비자로 체류하는 동안 고용주가 없어지면 (즉 해고되면) 60일 이내로 다른 고용주를 찾거나 미국을 떠야 한다. 이런 상황이 모든 유학생들을 피말리게 하는게 아닐까 싶다.


학교를 졸업하고 최소 4-5년 동안은 스폰해주는 고용주 밑에서 계속 신분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혼 등을 통해 신분을 해결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 외의 경우 안 그래도 낯선 환경, 낯선 언어로 일을 하는데 신분마저 불안정하면 부담감이 어깨를 짖누를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 외노자의 고충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

물론 좋은 점이 많기에 그런 고충을 견디며 이 길을 선택한 것이지만,

그래도 앞으로 이 길을 걸을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