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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국적 소녀 Dec 19. 2023

해고, 그 어렵고도 쉬운 이름

미국의 '유연한 고용시장'이 갖는 명과 암



현재 '미국회사 중고신입 고군분투기'를 연재 중인데, 약간 쉬어가는 의미로 번외편을 다뤄볼까 한다. 바로 '해고'에 대한 이야기다. 


2023년 그야말로 엄청난 해였다. 2022년 미국 연준은 금리 인상을 시작하며 환호에 미쳐가는 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시장의 열기는 빠르게 식어갔고 2022년 하반기부터 미국 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대량의 해고 (Layoff)가 이어졌다. 미국 실리콘밸리 은행은 높아진 금리로 인한 채권 가치 하락으로 인해 자금 유동성이 막혀 파산했다. 


매일 매일 링크드인 (커리어 중심 소셜 네트워크, LinkedIn) 에는 해고 소식이 이어졌다. 그 중에는 잘 모르는 사람부터 나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22년 MBA 졸업생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제 막 졸업해서 새롭게 직장에 들어간 22년 여름 졸업생들조차 해고의 대상이라니, 적잖이 놀랐다. 


놀랄틈도 없이 해고의 러쉬는 2023년까지 이어졌다. 당시 나는 잡오퍼를 받아놓은 상태였지만 연이은 해고 뉴스에 오퍼까지 취소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되었다. 아마 나와 같은 MBA Class 친구들도 비슷한 심정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나는 그런 우려를 뒤로하고 23년 8월부터 일을 시작했다. 정신없이 업무를 배우고 온보딩을 하는 사이사이에 동료들과의 여러 대화 등을 통해 회사 내부의 해고(Layoff)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매니저: 혹시 A 소식 알고 있어? 직업은 구한건가?

디렉터: 아니, 아직 못구한거 같아. 아마 미국 말고도 여러 나라 대상으로 리크루팅 하는 걸로 알고 있어.

매니저: 그렇구나. 그 뒤로 연락을 안해봐서.



동기: 혹시 B라는 사람 알아? 내가 작년에 인턴할 때 우리 부서에 있었는데.

나: 아니? 그런 사람이 있었어?

동기: 응. 내가 보스랑 커피챗할 때 물어봤는데 아마 구조조정 (Restructuring) 된 거 같아. 

나: 헉. 몰랐어.

동기: B는 작년 여름에 시작해서 아마 1년도 못채웠을텐데. 근데 그 사람 말고도 몇명 더 안보이는 사람이 있네. 



이런 식의 대화가 이어졌다. 



알고보니 내가 팀에 조인하기 직전에 구조조정이 한차례 휩쓸었던 것이었다. 이제 막 온보딩을 하고 업무에 적응하려고 하는 찰나에 저런 소식을 듣게 되다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렇게 나는 출근한지 1달도 안돼서 미국의 고용시장이 '유연'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정말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1. 쉬워도 너무 쉬운 해고: 회사가 원하면 언제든 해고한다.


미국에서는 고용계약을 해지하는게 정말 쉽다. 국가 노동법상 고용형태가 "at-will employment" 이기 때문이다. 즉 '의지'(Will)에 의한 고용이라는 뜻으로 직역할 수 있는데, 의역하자면 마음대로 고용하고 마음대로 해고한다는 거다. 미드 같은걸 보면 상사와 대화하다가 면전에서 바로 'You are fired!' (넌 해고야!) 라는 말을 듣는 걸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이게 현실에서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고용법상 해고가 이루어지려면 굉장히 복잡하다. 특히 10인 이상의 사업체라면 정당한 해고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소명권 부여', '인사위원회 구성', '출석', '통지', '심의 및 의결' 등이 있다. 


이와 달리 미국은 하루만에도 해고가 가능하다. 심지어 별다른 이유가 크게 없어도 된다. (물론 대부분 회사에선 이유없이 마구잡이로 해고하진 않는다. 직원의 업무 퍼포먼스 저하나 경영 상황 악화 등이 대부분 이유다.) 게다가 해고 후 Severance Package (퇴직 수당) 도 의무가 아니다.


그래서 실제로 2022-2023년에 일어난 대규모 테크회사 해고사태도 보면, "아침에 일어나니 메일 시스템 로그인이 안됐다", "전날 밤에 갑자기 인사팀에서 미팅을 잡더니 30분만에 통보를 했다", "메일로 해고통지가 왔다" 등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회사의 '의지'가 있다면 퇴직 수당도 어느정도 챙겨줄 수도 있고, 심지어 어떤 회사는 비자가 없는 외국인들을 고려하여 다음 취업까지 '비자 스폰서'를 해주는 회사도 있지만 그건 모두 다 회사 마음 (Will) 이다.




2. 사뭇 다른 태도: 해고?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사람들이 해고에 대해 갖는 태도도 사뭇 다르다. 아래는 해고에 대한 인포그래픽 (Infographic)을 가져와봤다.


출처: INTOO


위의 그래픽을 보면 약 48%의 미국인들이 해고에 대한 불안도가 높다. (Layoff Anxiety is High) 그리고 40%의 미국인들은 해고는 흔치 않은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Losing A Job Is Not Uncommon.) 


실제로 미국인 친구들,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태도를 많이 느낄 기회가 있었는데, 인턴십 때 상사가 "나도 첫회사에서 해고를 당했었어" 라고 말하거나, 여러 사람들이 "나도 언제 언제 해고를 당했는데 말이야" 라고 자기 경험을 터놓는 경우를 꽤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미국인 친구 한명은 실제로 올해 초에 해고를 당했는데 "그 직업을 통해 난 돈도 많이 벌고 되게 좋은 기회를 많이 만났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나는 이참에 그냥 쭉 쉬고 있어.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구직활동을 해볼까 해." 라면서 본인이 가진 시간을 약간의 휴가처럼 여기고 있었다.





3. 그래서일까? 누구보다 빠른 고용: 경기가 좋아지면 마구 뽑는다.


아마 이것은 굳이 따지자면 '명'과 '암' 중에는 '명'일 수 있는 부분인데, 그만큼 경기가 좋아지면 고용을 늘리는 반응 속도가 매우 빠르다. 회사들은 시장을 늘 모니터링 하고 있으며 금리 변화나 유가 변동 등에 발맞추어 시장이 살아나거나 소비 심리가 살아나는 낌새를 느끼면 고용을 늘린다. 그래서 경기가 호황일 때는 '고용'이라는 행위가 정말 활발하다. 이때는 '고용 전문가' (Recruiter)를 뽑아서 고용만 전문적으로 빠르게 하는 프로세스를 가속화 해버린다. 그래서 시장이 원할 때 '공급'이 못따라가는 일이 없도록 유연하게 대처한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마냥 '좋은 점'일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회사'에게는 매우 좋다는 것이다. 매출이 줄어들면 이익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할 것 '비용 절감'인데 그중 가장 큰 부분이 '인력비용'이기 때문이다. 이부분을 경감하면 재무제표 상의 숫자가 단숨에 아름다워진다. 바로 즉각적 성형 수술이다. 그리고 경기가 다시 좋아지고 소비가 살아나면 사람을 뽑아서 그만큼의 공급을 늘려주면 되니 그것도 회사 입장에선 참 좋다.


아마도 '부작용'은 그에 따라오는 사람들의 '불안감' 또는 사회의 '정서적 지지감 부족'일 것이다. 미국 사회에 나타나는 수많은 문제들 - 총기사고, 정치/젠더/인종간 갈등, 빈부 격차, 마약 문제 - 등이 모두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번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테크기업들이 밀집한 샌프란시스코만 해도 그 도시가 가히 멸망했다고 볼 정도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이번에 방문했을 때 마약에 취한 사람들이 길거리에 돌아다니고 활기를 찾기는 커녕 안전하다고 느끼기도 어려웠다.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성장은 아직까지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2024년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에 주식 시장은 들썩이고 소비/물가 지수도 바닥을 치기보다는 아직까지도 완연한 하강 곡선을 보이며 생각보다는 잘 버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수많은 부작용을 혹덩이처럼 주렁주렁 달고 전진하는 기관차처럼 달려가는 형국. 이 팍스아메리카나 (Pax Americana)가 얼마나 이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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