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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국적 소녀 Mar 19. 2019

영어와 요가의 상관관계

쉽사리 늘지 않아 슬픈 것들




요즘 다시 토플 공부를 시작했다. 어렸을 적 잠시 미국에서 살았던 경험을 계기로, 영어에 어느정도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한번도 '이 정도면 됐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다. 영어가 편해지기엔 너무 짧은 시간을 있었고, 한국에서 살아온 시간이 삶의 90%를 차지하기에 항상 영어 네이티브 스피커가 부러웠다. 업무도 영어로 하는 글로벌 업무이다보니 영어로 회의를 하는 일이 잦았는데, 그때마다 자유자재로 내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거나 상대방이 하는 말을 100% 이해하지 못하는 일도 빈번했다. 왜 나의 영어 실력은 이다지도 어중간할까, 하고 스스로 부끄러웠던 적이 정말 많았다. 


어찌됐든 영어라는 것은 지금 글로벌 시대에 필수적인 능력이 되어 버렸다. 어딜가나 영어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어드밴티지가 되곤 하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영어를 늘 마주할 때마다 어딘가 불편했다. 이미 성인이 되어 한국어 네이티브가 되어버린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영어에 노출된 네이티브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공부를 해도 해도 모르는 단어는 계속 나왔고, 들리지 않는 문장은 늘어만 갔고, 해석되지 않는 구문은 늘어가는 것 같았다. 토익 만점을 받거나 토플 점수가 조금 더 올라가도, 오히려 더 실력이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정말 쉽사리 늘지 않았고 영어 실력을 늘린다는 건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오늘은 요가 학원에서 스트레칭을 하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요가를 처음 시작할 무렵에는 몸을 구부려도 발에 손이 닿지 않을만큼 뻣뻣했다. 무슨 자세를 하나씩 할 때마다 쉽게 되는 자세는 없었다. 오늘 발을 맞대고 양쪽 무릎을 땅에 닿게하는, 허벅지 안쪽 근육을 이완하는 스트레칭을 하다가 정말 너무 괴로웠다. 허벅지 안쪽 근육이 너무, 너무,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다들 어떻게 저렇게 스트레칭을 잘 하는지 왜 나만 이렇게 뻣뻣한지 답답했다. 


문득, 그순간 영어와 요가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비슷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아무리 해보려 해도 단기간엔 그 성과가 보이질 않는다. 몇년을 해도, 자세를 할 때 조금 덜 아파진다는 것 뿐이지 그렇게 잘 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힘들면 그냥 포기해버리면 될텐데 또 그럴 수는 없는 것들이다. 이걸 버티고 버티고 버텨야 한다는 걸 나는 지난 세월을 통해 알게 된 거다.


힘들다해서, 잘 늘지 않는다해서 그냥 다른 쪽으로 돌려버리게 되면 나는 팔 수 있는 우물이 남아나질 않는다. 어찌됐든 나의 영어를 늘리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고, 나의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 조금 더 꾸준히 다리를 찢어볼 것이다. 옆에 있는 그사람이 아무리 다리를 잘 찢건, 세계의 몇억명의 네이티브 스피커가 있건. 결국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보다 조금 더 영어를 잘하고 조금 더 유연성이 높아진 다면 난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잘 늘지는 않지만, 거북이처럼 조금씩 나아가야하는 것들. 그리고 그 길을 갔을 때 뒤를 돌아보면 '아 이만큼 왔구나' 하고 잠시 땀을 닦을 수 있는 것들. 그런 걸 하루하루 해나가는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어차피 하루아침에 일궈지는 로마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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