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각도기가 존재하듯이 마음에도 각도가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살면서 내가 만나는 수많은 사람에게 나는 똑같은 마음의 각도를 내어준 적이 없었거든요. 하물며 우리 가족들에게, 내 두 아들에게 내어주는 내 마음의 기울기가 다른데 타인들에게 주는 내 마음의 각도가 같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재밌는 것은 내가 내어주는 각도와 상대방이 내게 내어주는 각도 또한 같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내가 90도만큼 주었다고 똑같이 90도만큼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이기도 하지만 조금 안타깝고 슬픈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어릴 적엔, 더 젊을 적엔 내가 이만큼 내어줬는데 상대방은 왜 내게 그만큼 주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이 참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만큼 속상하기도 했었고요.
지금은 나이도 들어가고 나름 살아봤다해서 내가 내어준 것에 대한 나의 기대가 조금 무너져도 많이 슬퍼하진 않습니다. 나는 90도만큼 내어주어도 상대방이 느끼기엔 90도가 아닐 수도 있고 설사 상대방이 90도만큼 받았다고 느꼈어도 나에게 꼭 그만큼을 내어주라는 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오묘한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을 내어주고 그만큼 돌려주지 않는다고 한탄할 필요도 없고, 오히려 그렇게 마음을 내어줬는데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그 관계를 돌아보고 정리해보는 계기로 삼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꼭 자로 잰듯 give & take 를 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사람만이 쏟아내는 마음을 기울기는 건강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또한 상대방에게 마음의 각도를 크게 내어준들 그것을 받은 모두가 나를 받아줄 것이라는 생각도 버리면 좋겠습니다. 내가 선의를 베푸는 모든 이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렇기만 하다면 세상은 너무 아름답겠지만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삶을 좀 살아본 사람들은 다 잘 알고 있습니다. 모르는 이에게 봉사도 하고 기부도 하는데 좀 아는 사람에게 좋은 일했다 셈치면 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될이 또 한가지 있습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누군가 나에게 내어준 큼지막한 각도의 마음의 기울기를 내가 외면한 적은 없었던가, 타인의 선한 행동을 내가 모른척한 적은 없는가에 대한 나의 행동 되돌아보기입니다. 세상살이는 한쪽 방향으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내가 신호를 보내면 상대방은 반응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내가 어떤 이에게 기대한만큼 받지 못했다고 실망하듯 나 또한 타인에게 그러한 실망감을 줄 수 있습니다. 세상살이는 어쩌면 이러한 일들의 무한반복인지도 모릅니다.
나이를 먹어가며 나이값을 한다는 것은 이러한 일들의 도돌이표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 아이는 꽤나 이기적이라(어릴 때만 그럴 수 있는 특권이기에) 똑같이 나눠주지 않은 사탕 하나에도 통곡을 할 수 있지만 나이값을 할 줄 아는 어른은 한발짝 물러나 자신 깊은 속에서 올라오는 우는 아이를 달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지요.
저도 자주 저 어린 아이가 울며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어릴 적 장녀라서, 울보라서 좌절되었던 기억을 현재의 좌절감과 실을 엮듯 연결하곤 합니다. 그러면 다시 제 자신에게 말해줍니다.
그렇게 꼭 사탕을 똑같이 받을 필요는 없다고. 똑같지 않게 받아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내 주위를 감싸는 세상은 전혀 변하지 않을거라고. 내가 내어주는 마음의 기울기와 세상이 내게 전해주는 마음의 기울기는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그 마음의 기울기 차이를 좁혀가고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어른이 되가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