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서 상담자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슬프게 외로웠다. 소아정신의학과 진료를 마치고 차에 들어앉아 울면서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늦둥이로 나온 둘째는 내게 인생의 쓴맛을 매 순간 상기시켜주고 있었다. 내가 못난 엄마여서일까, 매일 자문하며 뉘엿뉘엿 지는 해를 보았다. 어쩌면 내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사이버대학에서 심리학을 배울 때였다. 정신병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뜨끔했다. 내가 그 속에 숨어있는 것 같았다. 변하고 싶었지만 갑옷같이 단단한 본성을 깨기는 쉽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육아는 내게 ‘업장소멸’을 상기시킨다. 세상을 쉽게 살지 말라고, 만만하게 바라보지 말라고 주어진 숙제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은 날은 없었다.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는 하늘과 땅처럼 달랐다. 모든 통제 가능한 상태에 있기를 바라는 내게, 육아는 고해苦海 그 자체이다. 어쩌면 출발선부터 잘못되었기에 어렵고 뒤처지는지도 몰랐다.
상담자는 둘째를 30분 관찰하고는 자폐스펙트럼에 대한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았다. 정상과 비정상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가 정상이라는 줄이 튕겨져 나가는 순간이었다. 나는 결국 상담자의 복잡한 설명을 듣다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상담자의 말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었다. 소아정신의학과 진료를 위해 대학병원을 알아보았다. 소위 유명하다는 교수의 진료대기시간은 1년을 훌쩍 넘겼다. 예약조차도 쉽지 않았다. 몇 달 사이에도 아이들은 변화를 거듭하는데 긴 시간을 기다려 진료를 봐야 할지 의문스러웠다. 존재하지도 않는 연줄을 갖다 붙여 예약시간을 당기려고 애썼다.
주차장부터 정신없는 대형병원에 도착해서 사람이 바글거리는 본관을 걸었다. 올망졸망 엄마 손을 잡고 의자에 앉아있는 아이들. 엄마보다 키가 훌쩍 커버린 청년 같은 아이들도 있었다. 소아과에 감기로 온 아이들이 미어지듯이 이곳에도 아이들이 소복이 내려앉았다.
예약 시간이 무색하게 약속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진료실에 들어가기도 전에 아이는 집에 가자고 보채기 시작했다. 진료실 앞을 수없이 서성이다가 진료를 시작했지만 아이는 악을 쓰며 울었다. 확성기로 얘기하면 의사의 말이 잘 들렸을까? 서로 귀에 대고 질문을 주고받았다. 내가 생각한 질문은 하나도 하지 못했다. 결국 10분도 채 되지 않아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난관은 그때부터였다. 다음 검사를 위한 예약시간을 잡아야 했고 진료비도 계산해야 했다. 집에 가자고 보채는 아이의 울음소리는 병원 전체를 울릴 듯 거셌다. 병원 밖을 나가야만 상황을 종료시킬 수 있는데 아이의 절규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웅성거렸고 눈살을 찌푸렸다. 다른 진료실에서는 조용히 해달라며 사람이 들락거렸다. 어떤 할머니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불만을 터뜨렸다. 결국 경비에게 이끌려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뉘 집 자식이냐 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종일 떠다녔다.
나는 혼자였다. 고독이 밀려왔다. 철저하게 외로움이 나를 둘러쌌다. 남편이 절실하게 필요했지만 그는 여기 없었다. 나는 철면피가 되었다. 누구에게도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 망할 놈의 진료비를 떼먹고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278번 대기표를 들고 칠흑 같은 시간을 견뎠다.
아이를 무어라 결정짓고 싶지 않았다. 모든 엄마의 마음일 것이다. 엄마가 무당이라는 것은 까발릴 수 있었어도 아이가 어딘가 이상이 있다고 말하기는 꺼려졌다. 내가 우리 아이가 지금 어떤 상태라고 결론지을 자격이 있는 걸까? 앞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열린 아이에게 세상이 건네는 잣대를 들이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화살표가 자꾸 내 아이를 가리키는 것만 같다. 틀 안에 가두려는 듯하다.
나는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차 안에서 한참을 꺼이꺼이 울었다. 울음을 그친 아이는 옆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병원 밖으로 나오자 아이는 울음을 뚝 그쳤다. 아이가 원한 것은 고작 그것 하나였는데, 엄마라는 사람은 들어줄 수가 없었다. 왜 병원에 잠시 머무는 것조차 할 수 없냐며 아이를 타박했다.
엄마 뚝. 머리가 터지게 울고 있는 내게 아이가 말한다. 병원 안에서 그렇게 뚝 그치라고 말해도 꿈쩍도 안 하던 녀석이 내뱉는다. 나는 다시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상담실에서 놓쳤던 줄 한쪽을 다시 야무지게 쥐어본다. 엄마라면, 힘겨운 줄다리기를 평생 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있는 힘껏 줄을 당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