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전쟁을 해본 일이 있는가.
나는 여러 번 있다.
사춘기를 거치며 심지어 결혼을 앞둔 처녀시기에도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른 엄마와 전쟁을 치렀다.
너무 사랑하지만 우리 엄마와는 색다르게 달라도 너무 다른 개똥이 남편과 결혼해서도 전쟁을 치르며 살고 있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허나 승자와 패자는 아직까지 없다. 캬캬캬.
마지막으로 치른 전쟁을 꼽으라 하면 나는 잠과의 전쟁이라 일컫고 싶다.
망할 놈의 잠잠잠! 내 인생에 끼어든 남자 1호, 2호가 내 잠을 오랜 기간 앗아갔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아니다. 절대 안 온다. 나의 빼앗긴 봄. 그것이 나는 억울하다. 그래서 오늘 너희들을 이 엄마는 세차게 고발하련다.
첫째 아이를 밭 매다 낳으러 간 것 마냥 출산을 하고 나서야 출산휴가에 돌입했다. 동네 산후조리원 두어 곳을 가보고 일말의 고민도 없이 제일 비싼 곳으로 예약을 해두었다. 2박 3일간 병원 입원 후 바로 산후조리원으로 들어갔다. 조리원에서는 바로 젖몸살의 고통이 찾아왔다. 바위덩어리처럼 굳어진 젖가슴에 차디찬 양배추를 대고 있었지만 뜨끈뜨끈한 불덩이는 결코 가라앉지 않았다. 특단의 대책. 마사지사가 와서 내 가슴을 쥐어짰다. 자기 것이 아니라고 결코 봐주지 않고 쥐어짠다. 에라이. 이 고통은 산고의 고통과 맞먹는다. 아니면 더하다는데 한 표....... 아니 백만 스물두 표를 주겠다. 도넛방석이 아니면 앉을 수도 없고 변비의 고통으로 수건걸이를 잡고 힘을 주다가 그걸 뽑아버리고 말았다. 조리원에 삼백이 넘는 돈을 냈기에 말하지 않고 비밀로 해두었다. 실은 창피해서 이실직고할 수가 없었다.
조리원에 있는 2주간은 맛있는 밥도 척척 나오고 세탁도 해주고 모든 걸 알아서 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늘 식어빠진 밥을 먹게 되었다. 준비를 아무리 하고 왔어도 업무 공백이 큰 회사에서 툭하면 네이트온으로, 전화로 업무 차 연락이 왔다. 모유수유를 적극적으로 한다고 밝혔기에 수도 없이 방 전화벨이 울려댔다. 야무지게 밤수까지 한다고 했지만 며칠 만에 그건 넣어두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밤에 자지 않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퇴소를 하고 집에 와서가 더 큰 문제였다. 조리원에서 밤새 돌보는 분들이 안아준 것인지, 도통 이유를 알 순 없지만 첫째 아이는 정말 잠을 너무나도 자지 않았다. 낮에도 밤에도. 도대체 이유라도 누가 알려주면 좋으련만 나는 그저 아이를 안아주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쉼 없는 젖 물리기만 끝도 없이 이어졌다.
애가 태어나고 100일간 밤에 제대로 자본 적은 없었다. 진짜 단 하루도 없었다. 친정엄마와 같이 살고 있었지만 낮에 엄마는 일을 해야 했기에, 밤새 아기를 봐준다고 해도 엄마에게 애를 맡길 순 없었다. 슬링에 아이를 껴놓고 울어재끼는 그 녀석을 밤새 달랜 적이 정말 손가락 발가락을 총동원해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낮에도 쉬이 잠들지 못해서 나는 엄마가 차려놓은 밥상이 싸늘해질 때까지 숟가락 들 시간도 없었다. 엄마는 나보고 미련하다고 했지만 나로선 우는 아기를 안아주는 것 외엔 아무런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다.
1년 먼저 둘째를 출산한 동생이 근처에 살아서 종종 왔는데 늘 내게 따듯한 위로를 해주었다. 검은 낯빛에 웃지 않는 내게, 언니 100일이면 잘 잘 꺼야. 좀만 기다려봐. 하지만 100일이 되어도 이 녀석은 자지 않았다. 언니, 6개월만 되면 웬만하면 다 통잠 자. 좀만 더 견뎌봐. 하지만 이 녀석은 잠들지 않았다. 언니!!! 돌은 100프로야. 그냥 자게 돼 있어. 걱정 마. 돌이 되어도 이 녀석은 통잠을 자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지금도 나는 그 답을 알 수 없다. 결국 이 녀석은 1년이 좀 넘게 두어 번씩 깨서 밤수를 하고(나는 매일 출근을 했는데) 나는 그런 와중에 새벽 2~3시까지 이 녀석의 이유식을 만들었다. 30대 중반엔 강철체력을 갖고 있었나 보다. 그러면서 새벽에 일어나 개똥이 남편 아침까지 차려 먹였다. 그러다 잦은 소화 불량으로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수면내시경을 하기로 하며 급작스럽게 돌이 좀 지나 수유를 중단했다. 수면내시경을 하면 약을 주입하기 때문에 하루 이상 아기에게 수유를 하면 안 된다기에 그 길로 젖을 끊어버렸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밤새 내어주던 젖가슴을 주지 않자 첫애는 방 안에서 뒹구르르 구르며 벽에 머리도 처박고 엎어졌다 잦혀졌다를 반복하며 울어재꼈다. 달래다 달래다 나도 아이를 붙잡고 울었다. 참으로 미련한 엄마였다. 큰 아이는 돌 무렵 젖을 끊고도 1년은 밤에 툭하면 울어댔다. 어디가 아픈 것처럼 발악을 하니 응급실에 가려고 차에 몸을 실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차에 타면 울음이 진정되어 다시 집으로 올라오곤 하였다.
그리 잠이 없더니 6살이 되기 전까진 잠을 재우는 것도 곤욕이었다. 이 엄마는 출근도 해야 하니 자야 하고 밖에 쌓인 설거지며 빨래며 집안일이 산더미인데 1시간을 누워있어도 이 녀석은 잠들지 않았다. 소위 호떡 부치기 신공을 지닌 애였다. 엎었다 제쳤다 정말 백번도 넘게 호떡을 부쳐야 잠들곤 했다. 내가 호통을 쳐도 그 호떡 부치기는 멈추지 않았다. 하아. 지금 쓰면서도 분노가 차오른다. 그만큼 큰 녀석은 잠도 없었고 잠들기도 힘든 아이였다.
꿀잠자는 남자 1호
둘째는 다들 순둥이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노산이었지만 집에서 쉬고 있었고 첫째 아이 가졌을 때보다 몸과 마음이 편한 걸로 치면 비교불가였다. 나는 평안한 생활을 하며 임신생활을 즐겼다. 첫째 출산 때부터 여러모로 안 좋은 기억이 있었기에 나는 둘째 때는 뭐든 더 나을 것이고 잘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기분 좋게 출산을 하고 나는 1박 2일 만에 퇴원을 했다. 밤 11시부터 진통을 하여 새벽 6시에 둘째를 낳고 병실로 왔는데 다음 날 11시에 퇴원을 권했다. 자연분만을 했으니 퇴원이 가능하단다. 하루 만에요? 그렇단다. 1인 병실을 쓰겠노라(꽤 비쌌다)했는데 1인 병실이 없다며 vip병실을 1인 병실 값에 해줬는데 하루 더 있으면 몇십만 원(80만 원이라는)이란 돈이 청구될 터였다. 동공지진을 일으키며 하는 수 없이 바로 집으로 왔다. 첫째 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기다리고 있기에 나는 조리원도 갈 수 없었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첫째 때와 정말 하나도 다르지 않게 잠과의 전쟁을 다시 시작하였다. 무슨 녀석들이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서로 잠을 자려고 들지 않는가? 세계 8대 불가사의로 지정을 해야 할 일이었다. 둘째는 첫째와 달리 수면교육을 하겠노라 다짐하였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주지 않았다. 둘째도 내리 1년 10개월을 엄마 젖을 밤에도 찾으며 통잠을 자주지 않았다. 고로 나는 둘째를 낳고 2년이란 시간 동안 단 하루도, 단 한 번도 통잠이란 것을 자본 적은 없다. 이 한을 백두산 천지에 올라가 고함을 치며 풀어야 할 것만 같다. 너희들은 왜 잠을 자지 않는 것이냐.
결국 둘째 단유를 결정했다. 밤에 젖을 달라는 통에 그 녀석도 나도 편안하게 잠을 잘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실은 단유가 너무 겁이 나서 그렇게 긴긴밤 동안 젖을 물렸다. 젖을 빨다 보면 그 녀석도 어쨌든 다시 잠을 자니까 누워서 젖을 먹이며 나도 잤다. 하지만 누워서 수유를 하면 몸이 여기저기 쑤신다. 앉아서 수유를 해도 어깻죽지며 목이 늘 아팠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첫째 아이가 절규하던 것보다 조금 덜하지만 둘째도 많이 울었다. 울어도 다시 가슴을 내어줄 수는 없었다. 결국 한두 달 고생했지만 둘째 아이가 통잠을 자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 녀석의 호떡 부치기도 형과 만만치 않았다. 낮잠을 재우건 밤잠을 재우건 1시간을 뒹굴어야 잠을 잤다. 쓰면서도 한숨이 나온다. 이것은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꿀잠자는 남자 2호
나는 그래서 육아방식이 곱지 못하다. 딱 전투 육아다. 이 녀석들 잠 안좝니꽈아아아!! 빨간 모자 눌러쓴 해군 교관마냥 나를 늘 소리를 지른다. 물론 호통을 친다고 잠이 드는 건 아니다.
그래도 제발, 잠은 좀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