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를 아십니까?'도 아니고 뜬금없이 '다독(多讀)을 아십니까?'라고 묻고 싶어 졌습니다. 다독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많이 읽음이라고 나오는군요. 많이 읽는다 하면 보통 책을 생각하지요. 설명서라던지, 잡지, 길가의 간판을 읽는다는 말은 아니겠지요. 근데 전 그런 거 읽는 것도 참 좋아합니다만.
저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여태까지 읽은 책의 권수를 따져도 정말 책을 사랑하는 분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권수일 겁니다. 그런데 제가 수년 전 독서토론을 다닐 적에 어떤 책에서 읽은 내용이 인상 깊어 다독에 대한 저의 생각이 좀 바뀌었었지요.
다독이라고 하면 많이 읽은 것이고 그것의 양적인 면을 강조하는 말처럼 저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즉 몇 권의 책을 읽었느냐가 다독의 기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그 책에서의 다독은 여러 권의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아니라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는 다독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전 그때 책은 도끼다라는 책에서 나온 표현처럼 머리를 도끼로 한대 꽝! 하고 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독의 의미를 그렇게 생각하니 여태까지 제가 읽은 책들은 어쩌면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서평으로도 남겨놓았지만 책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책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난 왜 한 번도 읽었던 책이 그렇게 좋다고 쓰고 말했으면서 한번 더 혹은 여러 번 읽어볼 생각을 안 했던 걸까?'
저희 남편은 책과는 좀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그런데 영화나 드라마, 혹은 만화에 꽂히면 그것을 수십 번이고 보고 또 보고 하는 것을 보고 좀 놀랐습니다. 본 것이고 내용도 알 텐데 왜 그것을 또 보는 거지? 하고 의문을 갖기도 했었죠. 그런데 남편의 그러한 행위를 같이 살다 보니 동참할 수밖에 없는 때들이 찾아오게 되었는데, 예전에 했던 대하드라마를 남편 덕에 다시 재감 상할 수밖에 없는 그때가 찾아오게 된 것이지요. 허준, 대장금, 상도 그 50~60회가 넘는 드라마들을 아주 집중하며 예전 기억을 더듬어가며 참 재밌게 감상을 하였습니다.
그 전엔 사실 그 드라마들의 매력을 몰랐어요. 하지만 '니 어머니는 사실 저 가정부였어!'따위의 충격 전 반전 하나 없이 내용도 너무 알차고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도 아주 건전하며 역사공부도 되고 쫄깃쫄깃한 긴장감과 유머와 재치까지 모두 섭렵하면서 볼 수 있는 멋진 드라마들이었다는 겁니다. 20여 년이 지난 드라마들이지만 다시 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들이었다는 것이지요.
하물며 드라마도 이럴진대 책은 어떨까요? 책에 담긴 그 무궁무진한 세계를 단 한 번만 읽고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과 편견이겠죠. 하지만 전 여태 그런 자세로 책을 읽고 있었다는 것을 깊게 깨닫게 되는 계기가 있었던 겁니다. 어떻게 보면 무엇을 배우는 열정은 많은데 그것을 다지고 씹어 삼키는 기회를 제 스스로가 박탈하며 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새로운 것만 갈구하며 살았거든요.
그래서 최근에는 새로운 책을 읽기보다는 예전에 읽었던 기억에 남는 책을 다시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말 처음 읽었을 때 제 마음을 세차게 때리는 책들을 많이 만났었거든요. 하지만 한 번만 읽고 늘 덮어두고만 있었는데 다시 한 권씩 한 권씩 꺼내보고 있습니다.
이제 앞으론 가상의 세계가 실제인 것처럼, 그런 세상이 온다고 합니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그렇게 빠른 속도만큼 살기의 힘듦도 가속페달을 밟는 것처럼 세지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혼란한 시대에 우리 부모님의 자식 교육만으로 전 늘 배움에 대한 허기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30대 어느 날부터 3년간 치열한 책 읽기를 하였고 어느 정도 지적 허영심은 채워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은, 힘들었던 과거에서 때때로 행복했던 순간들을 지나, 지금까지도 저에겐 또 하나의 부모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정말 힘들 때 많은 위로가 되었고 재미있는 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제게 주었습니다.
그렇게 소중한 책들을 단 한 번만 보고 책장에 수년 째 꽂아두고 있는 제 자신을 반성하며.
자, 이제부터 다독(多讀)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