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그 무거움에 대하여

미친년 글쓰기

by 주부맥가이버

나라가 좁고 인구가 많은 우리나라는, 특히 도시에게 있어서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제가 살았던 고향에서 나고 자라는 20년 동안 아파트에서는 2년 정도 딱 한번 거주해봤고, 서울로 취업한 후 작은집 아파트에서 한 2년 정도 지냈었었지요. 그리곤 오래된 구옥에서 지내다가 결혼을 하고 나서야 진정한 아파트 생활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빌라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고 2년 만에 전세 아파트로 이사를 갔습니다. 이사한 첫날 정신이 없어 아랫집에 인사를 건네지도 못했는데 밑에 집에 사시는 분이 올라오셨더라고요.


너무 시끄러웠다며. 자기 집에 고3 수험생이 있으니 아이가 있네요. 매트는 꼭 깔아주셔야 해요. 끝.


한 번도 경험해보지도 못한 층간소음의 시작은 이러했습니다. 저는 아랫집 입장에서 백번 시끄럽다는 것을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난생처음 보는 이웃에게 처음 건넨 인사치고는 너무 냉정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매트가 두 개나 있었지만 한 개를 더 주문했고 5살 아이에게 늘 뛰지 말라고 소리치는 엄마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그 집에서 2년을 살았고 두어 번 더 아랫집 이웃은 저희 집 문을 두드렸지요. 고3 아이가 공부를 하니 아이를 뛰지 못하도록 해달라고요. 어쨌든 평생에 한번 있는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는 고3 아이에게 방해가 되었다고 하니 적잖이 미안했던 기억이 납니다.


얼마 전 저에게 쓰던 소파를 건네주고 시스템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간 제 동생에게 카톡이 날아왔습니다. 이사한 첫날, 아랫집에서 올라와 발 망치 소리가 너무 심하니 실내화를 꼭 신어 달라는 전갈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6살 딸을 키우는 여동생은 그날로 집에 매트 시공을 했다며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층간소음은 이렇게 우리 삶에 턱 하니 자리 잡고 있는 생활의 일부분입니다.


사실 층간소음문제는 딱 아랫집과 윗집 간의 문제가 아니기도 합니다. 소리의 원인제공자가 대부분 윗집이 아랫집을 향하는 경우가 많지만 반대인 경우도 있고 옆집이 원인제공자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어느 누구도 시시비비를 명확히 따져줄 수 없기에 갈등의 깊이가 결코 얕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 집으로 이사온지 내년 4월이면 꽉 채워 5년이 됩니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 집에 머물러 있습니다. 생애 첫 집이고 인테리어도 죽을 고생 하며 마친 집이기에 저에겐 애착이 크기도 하지요. 인테리어 공사를 할 당시 공사를 맡아주신 사장님이 주민의 동의를 받아 공사를 시작했지만 저희 집 공사 소음에 이웃들이 많이 불편할 것 같아 공사 시작 전에 가장 소음이 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윗집과 윗집의 옆집, 바로 옆집, 아랫집과 아랫집의 옆집에 케이크를 사들고 찾아갔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첫인상이란 것이 참 중요할 수도 있는데 저희 집 바로 윗집의 여성분이 제가 벨을 누르니 전화통화를 하고 계신 모양이었습니다. 문을 열어주시긴 했는데 전화기는 그냥 귀에 댄 채로(물론 중요한 통화였으리라 예상은 하지마는) 눈으로 제게 인사, 고개로 알았다는 듯이 끄떡. 끝. 그리곤 케이크를 받아 들어가셨습니다. 그래서 전 이사 온 이후로부터 지금까지도 그 이웃에 대한 인상이 좋지를 못합니다. 뒤끝 있지요~


그 윗집은 아들만 둘이지만 초등, 중학생이었기에 큰 소음유발은 없었는데 밤에 누군지 모르지만 발 망치를 쓰시며 걸어 다니시더라고요. 하지만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한 번도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다만 첫인상이 좋지 않았기에.저희 앞집은 성격 쾌활한 아이 엄마이신데 계속 일을 하시기 때문에 자주 볼 수는 없는 사이였지만 가끔 맛있는 것도 나눠주시고 아이들끼리 같은 미술학원을 다니기도 해서 아주 잘 지내는 이웃사촌이 되었습니다.


전 이사를 마치고도 또다시 똑같은 이웃분들께 선물을 한 가지씩 했습니다. 그동안 공사를 잘 견뎌주심에 감사한 마음의 표시였지요.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저에게 고맙다며 선물을 들고 오신 분이 계신데, 그분은 바로 저희 아랫집에 사시는 분이셨습니다.


공사 전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그 집에 신생아가 있더라고요. 이렇게 작고 어린아이가 있는데 어찌나 미안하던지요. 공사를 시작하고 2~3일간은 정말 소음이 심할 텐데 아기를 데리고 어디를 갈 수도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셨을 텐데, 그리고 가장 시끄러웠을 바로 아랫집이었는데 제가 보낸 선물을 받으시고 고맙다면서 제게 답례를 해주신 것이었지요. 이렇게 제가 다섯 집에 두 번 작은 선물을 드렸는데 감사함의 표시를 해주신 건 딱 저희 아랫집 한분이셨습니다. 가장 힘들었을 집에서 답례를 해주시니 참 좋은 분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큰 아들은 여기 올 땐 7살 꼬마였지만 지금은 11살이 되었고, 19년에 태어난 둘째 아들은 1년이 채 되지 않아 10개월에 걷는 에너자이져 꼬꼬마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 늘 아랫집에 죄송한 마음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장을 볼 때면 늘 맛있는 간식을 두 개씩 사서 하나는 가져다 드렸고 친정이나 시댁에서 오는 각종 야채와 음식을 나누어 먹었으며, 몇 번 안 되는 여행을 갈 적마다 아랫집 선물은 잊지 않고 사 가지고 왔었습니다.


제가 나눌 것들을 가져갈 때마다 늘 해주시는 말씀, 아이 키우는 집이 다 그렇죠. 괜찮아요. 하나도 불편한 거 없다고 말씀해주시는 아랫집 분들입니다. 그래서 전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고 살살 적당히 말할 수 있는 엄마가 될 수 있었고, 매트 청소가 힘들어 아직도 방방 뛰는 둘째가 있음에도 매트를 일찌감치 치워버릴 수 있는 주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집에서 줄넘기를 한다거나 늦은 시간까지 떠드는 만행을 저지르지는 않지요. 제가 뭘 하다 갖다 드리면 두 가지를 저에게 가져다주시는 아랫집입니다. 어찌 지내다 보니 저희 친정엄마와 연배가 비슷한 것 같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저에게 그렇게 맛있는 반찬을 많이 가져다주셨습니다. 음식 솜씨도 좋으셔서 맛있는 것 많이 얻어먹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공동주택에 사는 이상 결코 층간소음에서 자유로울 날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건 서로에게 먼저 건네는 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요즘 같은 세상엔 이웃을 잘 만나야지요.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 이사를 가기도 하고 유명 연예인의 경우는 갈등이 기사화되기까지 하여 곤욕을 치우는 경우도 봤습니다.


저는 지금 너무나도 좋은 이웃분들을 만나서 주택에 사는 것처럼 아이들을 자유로이 키울 순 없겠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아이들답게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층간소음, 그 무거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조금은 가볍게 살 수 있는 방법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

어쩌면 층간소음을 조금은 가볍게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암튼 천사 같은 아랫집을 만난 저란 사람은 아무래도 복 터진 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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