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거의 기억이 또렷하지 못하다. 어쩌면 기억하기 싫은 것들은 추억의 서랍 속에 꾹꾹 밀어 넣어놨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돌고 돌아 내가 브런치 작가에까지 도전하게 되었다. 과연 이것은 생애 가끔 존재하는 우연일까, 아님 꼭 만나야만 할 필연일까.
기억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아주 오래전 본 영화인데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거보면 꽤나 신선하고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오! 수정’이라는 제목의 영화는 배우 정보석과 이은주, 문성근이 나왔다. 정보석과 이은주가 연인이었다. 두 사람이 겪게 되는 하나의 사건을 오로지 남자의 시선에서, 그리고 오로지 여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내용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함께 겪었던 사건이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어 매우 놀라웠다. 감독이 누군지 정말 기막힌 영화라고 생각했다. (하도 오래전 영화라 찾아보니 홍상수 감독 영화다. 어쩐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양반이 감독이었다!)
지금부터 쓸 이야기는 바로 나와 나를 둘러싼 가족 이야기이다. 올 설 명절에 모인 김에 나는 모두에게 공언했다. 비록 내가 아직 작가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지만 브런치에서 글을 쓰게 되었으니 그대들의 이야기를 쓰겠노라고. 마치 '오! 수정'이라는 영화에서처럼 오로지 내 기억에 기댄 이야기는 당신들의 기억과는 다르게 기억되었을 거라고. 모두가 흐린 기억 속의 그대들일 것이라고. 덧붙여, 이야기는 그대들을 무참히 돌려 깎기 할 수도 있음을 미리 공지해두었다.
내가 처음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싸이월드를 통해서였다. 일상에서 있었던 일이나 영화를 보고 인상 깊은 내용을 기록하는 것을 사랑했다. 싸이월드가 없어져서 다시 살아난다고 하지만 당시 끼적였던 기록들은 다 사라져 버린 지 오래이다.(이 글을 쓰고 몇 달이 지난 지금 싸이월드가 살아나서 그때의 나와 조우했다.) 그러다 십여 년 전에 블로그에 이백 개가 넘는 서평을 쓴 적이 있었다. 누구도 봐주지 않았고 아무런 소통도 없었다. 그저 퇴근하고 늦은 밤 작고 작은 태블릿을 부여잡았다. 수많은 밤, 책의 인용구를 적으며 나의 생각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지금에 와서야 생각하건대, 그 모든 행위들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하였다. 나는 책을 가까이하지도, 독후감을 좋아하지도 않는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어떻게 성인이 되고 나서야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되었는지 때로는 의아할 때가 있다. 어쨌든 지금의 내가 모든 것의 결과이다. 나는 계획하지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지금도 내가 기억하는 과거의 나와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쓴다고 결심만 했을 뿐, 어떻게 글을 쓰게 될지는 잘 모른다. 브런치를 시작하며 써보겠다고 생각을 하니 흐린 기억들이 둥둥 차오르는 느낌이다.
우리 가족 이야기는 대단할 것도, 자랑할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보통 혹은 그 이하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내 흐린 기억 속의 그대들과 얼마나 치열하게 울고 웃고 사랑하고 미워하며 살았는지 기록해보고 싶은 욕구가 차올랐다.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하고 며칠이 지난 지금, 욕구는 내 발끝부터 머리카락의 꼭대기까지 찰랑찰랑 거리고 있다. 과연 내가 어떤 이야기를 써나가게 될지 나 자신도 궁금할 참이다.
나는 한껏 못난이로 집에서 태어났고 아빠가 그날 나를 직접 받았다고 한다. 산부인과도 가지 못할 만큼 가난했던 젊은 시절의 부모 생각에 가슴이 미어진다. 너무 젊었던 아빠는 갓 태어난 애를 보고 너무 못생기고 징그럽다하여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못난이가 되었다.
내 위로 신동이라고 불릴 만큼 똑똑하고 잘 생긴 우리 오빠 기현이가 있었다. 오빠는 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쯤 트럭에 깔려 죽었다. 오빠 나이 네 살 때라고 했다. 나는 오빠를 본 적은 없지만 아빠를 보건대 무척이나 잘 생겼을 것이라 확신한다. 형체도 없이 반이 잘려나간 어린아이를 보고 부모는 미치지 않고 어떻게 삶을 견뎠을까. 식당일에 바쁜 우리 엄마는 그날 오빠를 혼쭐을 내서 내보낸 것을 두고두고 후회한다고 했다.
미친 듯 3년을 보내고 우리 부모는 또 다른 아이를 낳았다. 나도 딸, 둘째 딸, 셋째도 딸. 딸딸딸 집안에서 우리 아빠는 그렇게 아들을 고집했다고 한다. 엄마가 낳지 않으면 다른 여자에게라도 아들을 놓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엄마는 어렵게 막내 남동생 ‘귀남이’를 낳았다. 그렇게 나는 귀하디귀한 막내딸에서 졸지에 K장녀가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일이었다. 그래서 먼저 떠나간 오빠 기현이가 살면서도 늘 그리웠는지 모르겠다.
나의 원가족. 엄마, 아빠, 나, 여동생 1, 여동생 2, 남동생 1. 이렇게 우리의 가족이 탄생했다. 살면서 숱한 날들이 있었지만 엄마가 무당이 된 일이 우리 집에서 가장 파격적인 일이 아닐까 싶다. 나를 어떻게 표현할까.
무속인의 자녀.
만신의 딸.
무당의 딸.
TV에 나오는 무당은 사실 너무 구리다. 요즘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무당이 종종 나오기도 한다. 대체 왜 무당의 자식들에 대해서는 실제 상황같이 그려지는 것이 없을까 늘 궁금했다. 번화가에 가면 수두룩 빽빽한 게 무당집인데 많은 무당의 자식들은 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내가 리얼리티를 살려 무당의 딸로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여기에 써볼 참이다. 우리 엄마는 내가 엄마 얘기도 쓰고 흉도 본다고 했더니 맘껏 하라며 자신이 영험한 무당이라고도 꼭 쓰라고 했다. 법당 홍보고 하고. 못 말리는 양반이다.
나를 고상하게 무속인의 자녀라고 소개하고 싶지만 무당 딸이 좋겠다. 무당도 다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일반인하고 똑같다. 그럼 양파처럼 한 겹 한 겹 까내어 나의 이야기를 이제 시작해보려고 한다.